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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엄마를 만나다
[상상사전] '가족'
2018년 02월 10일 (토) 15:34:53 박희영 기자 hyg91418@naver.com
   
▲ 빅희영 기자

추운 겨울,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푸른 새벽이었다. 길모퉁이에는 잠이 덜 깬 6살짜리 아이가 엄마의 품속에 파묻혀 스쿨버스를 기다린다. 멀리서 보면 배불뚝이가 이따금씩 배를 꿀렁이며 서 있는 모습일 게다. 엄마는 외투 안에서 칭얼대는 아이의 작은 두 손을 살며시 잡아끌며 천천히 세 번, 꾸욱 누른다. 그리고 입김을 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사. 랑. 해.”

엄마를 떠올릴 때 나는 어김없이 그 춥고 졸린 새벽을 기억한다. 미국에 유학 온 아빠를 따라와 낯선 타국에서 억지로 학교에 가야 하는 현실. 힘겨워하는 나를 달래고 어르며 챙겨주는 엄마. 20년이 지난 요즘, 엄마가 낯설다. ‘I have a dream.’ 마틴 루터킹 목사도 아니고, 스웨덴 출신 혼성그룹 아바도 아니고, 우리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서 발견한 문구다. 50대에 들어서면서 엄마는 눈물이 많아졌다. 부쩍 갑작스럽고 과하게 짜증을 낸다. 술을 마시면 가족을 원망한다. “사고 싶은 것도 안 사고 아끼면서,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골자다. 세 남매는 슬금슬금 각자 방으로 피하고, 곁에 남은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엄마를 토닥인다. 우리는 엄마의 욕구가 낯설다.

   
▲ 영화 <버진 스노우> 중 딸 캣(셰일린 우들리)의 꿈속에서 엄마 이브(에바 그린)가 눈 속에 누워있는 장면.어느날 엄마가 사라졌다. 결혼 후 이브라는 ‘개인’은 희미해지고,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만 또렷해지면서 엄마의 영혼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딸이 열일곱 살이 됐을 때 기어이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 영화 <버진 스노우>

아빠가 회사에서 퇴직한 뒤에도 엄마는 학원을 운영하든, 중식당을 운영하든 비교적 풍족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엄마의 소비생활에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다. 엄마는 철저히 가격 논리에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였으며, 웬만한 사치재는 ‘쓸데없다’고 말하는 매우 검소한 소비 습관을 지녔다. 엄마가 원하는 건 뭘까? 사실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희생에 기댄 삶이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는 내 꿈을 향해 나아간다. 취업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뻔뻔한 요청을 한다. 엄마가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경제적 기반이 불안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암묵적인 신호다. 내가 자식을 낳기 싫은 건, 나 같은 이기적인 자식을 만날까 봐 두려워서일까?

“오늘은 집에 오니?” “집에 과일 사놨다.” “밥 잘 챙겨 먹니?” “입금했다.” 매번 똑같은 엄마의 메시지는 오로지 나를 위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런 걸 우리 사회는 흔히 ‘모성애’라고 한다. 나는 왜 타인의 삶에 빌어먹으면서도 그토록 뻔뻔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가? 내 꿈은 한순간도 유예하지 않으면서, 남의 꿈은 미뤄두라고 당당히 요구할까? 내 안에는 엄마에 관해 ‘훌륭한 어머니’라는 상(相)이 맺혀있다. 엄마는 아빠와 달리 자식들에게 희생적이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아빠는 자기 입에 넣은 다음에야 자식을 떠올린다. 엄마는 자식 입에 먼저 넣어주고도 자신은 먹지 않았다. 나는 20여 년을 살면서 엄마의 욕구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바가 거의 없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서야 유일하게 엄마의 기호에 관해 얻은 정보는 식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중식당에 작은 식물을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불교의 가르침 중 ‘상을 짓지 말라’는 말은 자신의 고정된 틀로 세상과 관계하지 말라는 경고다. 세상은 복잡다단하며 유동적인데, 내 작은 틀에 세상을 욱여넣으려다 보면 진실과 만날 수 없게 된다. 세상의 진실이 아니라 내가 정해 놓은 진실을 강요하는 꼴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나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사랑했던 게 아닐까? 엄마가 낯선 것은 비로소 진실한 엄마의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시 엄마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엄마’를.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선희 기자

[박희영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환경부 박희영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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