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사실의 기록’ vs. ‘누군가의 주장’ 잘 구분해야

‘김만배 녹취록’ 보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와 <뉴스타파>를 인용 보도했던 방송사들에 대한 무더기 중징계까지, 당국의 대응은 무척 거칠다. 등록 취소 운운하는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언사도 마찬가지다. 보도에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상궤를 한참 벗어난다.

하지만 당국의 대응 문제만을 따질 일은 아니다. 문제의 출발점이었던 보도 자체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도 필요하다. 지금의 광풍이야 어떻게든 지나가겠지만 언론은 앞으로도 보도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8일 오전 '대장동 일당'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8일 오전 '대장동 일당'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녹취록에는 사람을 현혹하는 힘이 있다. 언론은 물론 소비자도 ‘녹취록’이라는 말에서 뭔가 내밀한 대화를 엿듣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녹취록은 크게 사실이나 상황을 담은 것과 의견이나 주장을 담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부 회의나 범행 모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것, 성희롱처럼 실제 행위가 기록된 것은 전자에 해당한다. 이런 녹취록은 당사자의 반론은 받아야겠지만 일단은 사실의 기록이다.

어떤 상황에 대한 특정인의 설명이나 주장이 녹음된 것은 다르다. 녹취록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원칙적으로 누군가의 일방적인 말이다. 발언 경위나 사실 여부를 따로 확인해야 한다. 당사자들의 자연스러운 대화에도 과장이나 속임수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기록과는 다르다. 어떤 사건의 공모자들 사이에서 녹음된 것이라도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것은 아닌지, 정말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인지 등을 검증해야 한다.

김만배 씨와 신학림 당시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은 어디에 해당할까? 어떤 사실의 기록이 아님은 분명하다. 내부자끼리의 대화도 아니다. 대화 시점은 이미 여러 언론이 김 씨를 ‘언론인 김모 씨’ 등으로 불렀고, 실명 보도가 이뤄지기 며칠 전이었다. 대선판 최대 쟁점의 핵심 인물로 등장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뉴스타파> 전문위원을 만나 진실만을 말했을 것이라고 믿으라 할 수는 없다.

전문위원의 취재물로 보이는 것을 왜 ‘제보’라고 했는지 궁금하지만, <뉴스타파>도 녹취록이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사실 확인을 해야 보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 측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을 시인으로 해석했고, 보도에 필요한 요건은 충족됐다고 주장한다. 법조 취재는 원래 그렇게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법조기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탐사전문 언론의 사실검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보도 관계자들의 주장처럼 <뉴스타파>가 아니었어도 그런 녹취록을 입수했다면 보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전문을 검토하지도 못한 방송사들도 줄줄이 녹취록의 음성을 보도했다. 무리한 검찰 수사나 정치권 등의 황당한 공세에 대응하는 것과는 별도로, 당시 한국 언론이 ‘녹취록’을 제대로 다뤘는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앞으로 또 어떤 녹취록이 또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현혹할지 모른다. <뉴스타파>의 자체 진상조사가 정말 중요하다.

*이 글은 <기자협회보> 10월 11일자 ‘언론 다시보기’ 코너에 실린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을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