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교전 중인 이스라엘에서는 요즘 ‘로켓 얼러트’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앱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와이어드>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사일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알려주는 앱을 앞다퉈 깔고 있다. 정부 공식 앱만 해도 사용자가 60만 명에서 200만 명으로 늘었고, 민간 앱도 사용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스라엘 인구는 약 900만 명이다. 공공 사이렌보다 한발 앞서 앱에 경보가 뜨면, 해당 지역 주민은 분초를 다투며 지하 방공호 등으로 대피한다고 한다. 반면 공중과 지상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는 가자지구 사람들은 미사일 경보도, 대피할 방공호도 없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게 외신의 전언이다.

이스라엘은 사이버보안, 자율주행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젊은 개발자들이 대거 징집되면서, 이스라엘 테크기업들이 인력난에 허덕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부 중동, 남미 국가는 가자지구 난민촌 공습을 비난하면서 이스라엘과 단교하거나 교역 중단을 선언했다. 투자자들이 이스라엘 주식과 돈을 팔아치우는 바람에 주가와 화폐가치는 급락했다. 이웃과 전쟁을 벌이면, 기술 있고 돈 많은 나라도 국민의 안전과 경제적 안정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똑똑하기로 손꼽히는 이스라엘 국민이 스마트폰 앱을 보며 미사일을 피해 다니고, 코딩하다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정책과 일방통행 정치에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극우 성향인 네타냐후 총리는 요르단강 서안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늘리고 가자지구를 봉쇄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존권을 짓밟았다. 하마스의 잔인한 도발은 결코 합리화할 수 없지만,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은 국내외 여론을 무시하고 ‘이념 전쟁’을 밀어붙인 네타냐후의 고집과 오판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한겨레> 칼럼에서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가 만든 분열이 하마스가 준동할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반대 의견을 묵살하는 극우 정치의 불통과 일방주의 탓에 모사드 등 여러 정보기관 사이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침공에 이스라엘은 반격을 가했고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주택지. 출처 연합뉴스
지난 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침공에 이스라엘은 반격을 가했고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주택지. 출처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에 이어 미국을 곤혹스럽게 할 ‘세 번째 전선’으로 대만과 함께 한반도가 거론되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과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남한 사이에서 전쟁은 곧 공멸이니,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북한은 도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우발적 상황’을 걱정한다. 지금처럼 남북, 북미 사이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서는 사소한 사고가 오판을 거쳐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중국인 100만 명가량이 사는 남한 내륙을 피해 해상에서 도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거 천안함·연평도 사태에서 경험했듯, 소규모 군사 충돌도 참담한 인명 희생과 함께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경제 피해를 낳는다. 그래도 윤석열 정부는 ‘이념’을 앞세우고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칠 뿐 북한과 대화하려는 생각이 없으니,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이념 과잉으로 흐르고 호전적인 구호가 난무할 때, 언론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살길이라는 것을, 무력 충돌은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 이스라엘 언론은 이 역할에 실패했고, 한국 언론도 걱정스러운 형편이다. 한겨레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매체로서, 어떤 언론보다 적극적으로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보도를 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평화를 위한 실질적 대안’을 따져 묻는 역할은 부족하다. 남한의 연간 군사비 지출이 북한 국내총생산(GDP)을 훨씬 웃도는 상황에서, ‘힘에 의한 평화’란 과연 무엇인지 치열하게 따져야 한다. 북한의 오판을 막고 우발적 확전을 차단할 소통 채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물어야 한다. 이스라엘처럼 ‘미사일 앱’을 깔아야 하는 일상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아니,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미사일 앱을 쓸 겨를조차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한겨레> 11월 9일 자 [시민편집인의 눈]을 신문사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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