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찬 칼럼] 당신 때문에 죽은 게 아닌가요

1997년 8월 31일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사망 직후, 스티브 코즈는 미국 CNN의 뉴스 토크쇼에 출연했다. 코즈는 미국의 대표적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선임 편집자였다. 진행자가 코즈에게 물었다. 당신들 같은 타블로이드 때문에 파파라치가 설치고, 그런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다이애나가 죽은 게 아닌가요.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는 새 연인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쫓아오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던 운전사가 교통사고를 냈고, 다이애나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그 책임을 묻는 주류 언론을 향해 가십 언론의 편집자는 반박했다. “유명인을 관찰하는 것과 사냥하는 것은 다르죠.” 다른 타블로이드와 자신의 매체를 구분한 코즈는 ‘유명인을 사냥하는 기자들’을 비난했다. “그들은 스토킹하는 파파라치입니다.” 코즈는 여러 방송에 출연해 이 표현을 반복했다. 이후, 한 사람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Stalk) 온갖 일을 파헤쳐 가십을 보도하는(Paparazzi) 기자를 일컫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스토카라치’(Stalkarazzi)다.

당시 미국 언론계 내부의 이런 논란을 다룬 해외 연구논문이 있다. 미국 드렉셀대학 언론학 교수인 로날드 비숍은 다이애나 사망 이후 주류 언론이 가십 언론과 차별화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어느 직업집단이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찾고 다듬는 ‘경계 작업’(Boundary work)을 연구의 핵심 개념으로 적용했다.

미 언론의 경계 작업은 복합적이었다. 주류 언론은 가십 언론인을 일부러 인터뷰하여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점을 대중에게 보여줬다. 가십 언론 내부에서도 자신을 다른 타블로이드와 구분하는 시도가 나타났다. 관련 보도의 후반기에 이르러, 주류 언론은 유명인을 다뤄온 관행을 성찰하는 보도와 논평을 내놓았다. 남을 비난하는 단계에서 스스로 반성하는 단계로 옮겨 간 것이다.

지난해 10월 28일, 배우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를 조사 받기 위해 인천논현경찰서에 출석했다. KBS
지난해 10월 28일, 배우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를 조사 받기 위해 인천논현경찰서에 출석했다. KBS

비숍 교수는 이를 ‘갱생과 개선을 약속하는 주류 언론의 의례적(ritual) 작업’이라고 비평했지만, 이런 의례를 통해 영미 유력 언론이 오늘의 평판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계 작업의 핵심은 ‘그들은 하지 않는데 우리가 하는 일’과 ‘그들은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규정하여 안팎에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유명인이 죽었다. ‘길티 플레저’를 누리던 세상에 탄식만 남았다. 이 지경이 됐는데, ‘왜 이런 보도로 죽음에 이르게 했느냐’고 가십 언론을 불러 따지는 전통 언론은 거의 없다. 공영방송조차 가십과 공익을 분간하지 못했으니, 경계를 그을 주역이 누구인지, 어떻게 경계를 그을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흔한 오해와 달리, 연예인을 다뤄서 타블로이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타블로이드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을 동격으로 다룬다. 그런 점에서, 기사의 소재에서 정론과 타블로이드의 차이는 없다. 두 매체의 경계는 방법에 있다. 타블로이드는 취재한 모든 것을 보도하고, 전통 언론은 공적 가치가 있는 정보만 솎아내어 검증하여 보도한다.

그동안 한국 전통 언론은 이름있는 이들을 다룰 때마다 종종 스토카라치의 방식을 택했다. 세간의 시선이 주목되기만 하면, 공사 구분 없이, 정보 검증 생략하고, 알게 된 모든 것을 시시콜콜 보도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을 뿐이다. 물론, 해외의 스토카라치는 동류로 취급받아 기분 나쁠 것이다. 그들은 끈질기게 기다리고 추적한다. 그저 돈 벌자는 짓이라는 걸 자인한다. 한국의 스토카라치는 그런 정보조차 검찰이나 경찰에서 받아온다. 그걸 공익 보도라고 우긴다.

현장 기자 스스로 가십 보도와 공익 보도를 분간하는 방법이 있다. 개인의 구체적인 말글, 행위, 사건이 구조, 체계, 제도와 연결되는가. 그 연결 고리를 기사에 보여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곧장 명쾌하게 답할 수 없으면 가십이다. 개인의 잘잘못을 입증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일까지 취재할 필요는 없다. 예기치 않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면, 조용히 돌아 나올 일이다. 문 열고 서 있으면 환자고, 본 것을 주변에 알리면 범죄자다. 그러니, 스토카라치가 되고 싶지 않다면, 부디 그 문을 열지 말라.

*이 글은 <미디어오늘> 1월13일 자 ‘사실과 의견’ 코너에 실렸던 것을 신문사의 허락을 얻어 일부 수정해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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