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아이폰’으로 유명한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우주선 모양의 새 사옥 ‘애플 파크’를 지어 2017년 입주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반지처럼 생긴 이 사옥에는 1만 2천여 명이 일하는데, 지붕 전체가 파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건물 전기수요의 75% 이상을 태양광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바이오연료 등을 활용해, 녹색에너지 비중이 100%에 가깝다고 한다. 채광과 통풍 설계도 잘돼 있어, 1년 중 아홉 달은 건물 냉난방이 필요 없다고 애플은 자랑한다. ‘사용 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RE100)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애플이 기후위기 대응에 얼마나 진심인가를 보여준다.

애플, 구글, 볼보 등 알이(RE)100에 참여하고 있는 400여 세계적 대기업은 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목표를 협력기업에도 요구한다. 특히 애플은 최근 공급망을 구성하는 기업들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기로 생산한 제품만 납품하라’고 통보했다. 메모리칩 등을 애플에 공급하는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한국 대기업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재 이들 기업의 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은 30%가량에 그치는데, 애플의 요구에 맞추지 못하면 거래가 끊길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조 단위가 걸린 문제”라며 “사내에서는 ‘삼성전자가 그린피스보다 더 급하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보다 삼성전자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더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는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파크의 모습. 옥상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파크의 모습. 옥상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그런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이런 산업 현장의 수요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쓰고 싶어도 공급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태양광·풍력 지원정책을 폐지하거나 관련 예산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전환포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꼴찌 수준이다. OECD 평균은 26%, 덴마크는 83%나 된다. 이런 형편에서 정부는 지난 7월 소형태양광 우대제도(한국형 FIT)를 폐지했고,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기금 예산안에서 재생에너지 예산을 전년 대비 42% 줄였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송배전망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제주, 전남 등에서는 태양광·풍력 발전기 출력제한도 자주 일어난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부족한데, 있는 설비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녹색전환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발전설비 신규 설치량은 2021년 4.2기가와트(GW)에서 2022년 3.0GW로 줄었고, 2023년은 2.5GW에 그칠 전망이다.

정부는 대신 ‘무탄소 100%’(CF100)를 밀고 있다. 재생에너지 외에 원자력발전 등을 포함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자는 구상이다. 국내 대기업들을 모아 무탄소연합(CFA)을 구성하고, 유엔 등 해외 무대에서도 각국 정부와 기업의 참여를 설득하고 있다. 문제는 RE100 위원회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영국의 비영리기구 ‘클라이밋그룹’ 주도 아래 각국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RE100이, 한국 정부 제안에 따라 원전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수정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의 RE100 이행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수출계약을 포기한 자동차 부품기업 등 국내 피해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국내외 언론은 지난주부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 소식을 크게 다루고 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등 결의안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총회를 계기로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올바른지, 한국 기업들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종합 평가하는 국내 보도는 드물다. <한겨레>는 기후정책의 문제점 등을 잘 짚어 왔지만, 역주행하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태양광·풍력 투자업체와 RE100 추진 기업 등 산업 현장에 안기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조명하는 보도는 충분하지 않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생산·운송 과정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등 선진국 무역정책이 한국 기업에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환경단체보다 기업이 더 절박해진 현실에서, 언론 보도도 더 날카롭고 집요해져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한겨레> 12월 5일 자 [시민편집인의 눈]을 신문사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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