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고 있다. 4·10 국회의원 총선거를 향한 기후정치의 바람과 물결이다. 녹색전환연구소와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이 결성한 기후정치바람은 전국의 만 18살 이상 1만 7천 명 대상 설문조사를 근거로 지난 1월 “기후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라고 발표했다. 기후유권자는 기후 의제를 잘 알고, 이를 고려해 투표하려는 시민이다. 선거 당락을 좌우할 만큼 기후유권자가 두텁게 존재하니, 후보들이 기후 공약을 제대로 내놓으라는 주문이었다.

지난 14일에는 각계 전문가가 모인 기후정치시민물결이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선포식’을 열었다. 시민물결은 후보들에게 실현 가능한 기후 공약을 제시하라고, 유권자에게는 정당과 정파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 의지가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하자고 촉구했다. 지난 24일에는 기후위기포천시민행동이 ‘나는 기후유권자입니다’ 캠페인에 나서는 등, 바람과 물결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43일 앞둔 2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청사 외벽에 투표 참여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시민이 일으킨 바람과 물결이 과연 4·10 선거를 기후총선으로 만들고, ‘2050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정치의 문을 열 수 있을까. 언론이 필요한 역할을 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를 통해 ‘파국을 막을 기한’으로 제시한 2030년을 엄중히 여긴다. 그래서 2028년까지인 22대 국회 임기가 기후 대응 성패를 좌우할 ‘골든타임’이라고 본다. 반면 거대 양당의 공천과 공약을 보면 긴장감이 전혀 없다. 기후 전문가 영입을 홍보하고 있으나 ‘구색 맞추기’ 정도다. 정부·여당과 여권 자치단체장 등은 오히려 ‘그린벨트를 풀겠다’ ‘100층 빌딩을 올리겠다’ 등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토건·개발 공약을 쏟아낸다. 제1야당도 신공항 건설에 가세하고 있다. 땅값 올릴 공약만 내놓으면 표를 줄 것이라 여기는 걸까.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이렇게 얕잡아 보는 데는 언론이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기자들 사이에 ‘정치인은 본인 부고만 빼고 뭐든 언론에 이름이 나면 좋아한다’는 농담이 있다. 대중의 관심에 목을 맨다는 의미다. 그런 정치인에게 언론이 무엇을 묻는지는 중요한 동기부여 요소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기후위기가 핵심 쟁점이 되지 않는 것은 언론의 문제 제기가 부족한 탓이 크다. 기자회견에서, 토론회에서, 대담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으로, 집요하게 질문하면 어떻게 될까. 2022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한국 내각에 왜 여성이 적은지’ 물은 뒤,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 장관을 여럿 임명한 일이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정치공학적 대립과 이합집산을 미주알고주알 중계해 정쟁을 키우고, 시청률과 클릭 수를 올리는 보도는 이번 총선에서 좀 줄이면 어떨까. ‘기후위기는 여러 정치사회 의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안전·식량·건강·주거 등 인간의 기본권에 광범위한 피해를 끼치는 재난의 문제이며, 안정적인 삶의 기반과 사회제도 일체, 문명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 위기’라는 시민물결의 선언은 과장이 아니다. 정당과 후보들에게 구체적으로 묻자. 이런 위기를 막기 위해 에너지와 산업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건축·교통은 어떻게 저탄소로 만들 것인지, 식량안보는 어떻게 지킬 것인지, 홍수·산불·태풍·폭염 등 재난에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반지하와 지하도 침수, 산사태 등이 우려되는 지역이라면 더 촘촘하게 따지자. 누가 준비됐고 누가 맹탕인지 드러내, 정당과 후보들이 사생결단하고 정책 경쟁을 하게 만들자. 이런 역할은 기후 담당 기자만이 아니라 정치부, 사회부, 지역부 등 총선을 취재하는 모든 언론인이 맡아야 할 것이다.

경남 함양의 농부 마용운씨는 지난 21일 기후정치바람 주최 집담회에서 정부를 원망했다. 이상기후로 사과 작황이 나빠 가격이 올랐는데, 정부는 미국산 등의 수입만 거론했다고 한다. 그는 “탄소배출을 어떻게 줄이고 농민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살지 대안을 마련할 생각은 없이 냉큼 수입하겠다는 것을 보고,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아쉽지만, 정치인은 수입할 수 없다. 잘 뽑아서 쓸 수밖에. 시민이 일으킨 바람과 물결이 기후정치의 문을 힘차게 열도록, 언론이 맹활약해주길 기대한다.

*이 글은 <한겨레> 2월 27일 자 [시민편집인의 눈]을 신문사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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