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악 할머니는 열여섯 살의 나이에 일본 위안부로 끌려갔다. 동네 아저씨를 따라 대구의 실 푸는 공장에 취직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는 공장이 아니라 대구의 한 소개소로 넘겨졌다. 업자들은 화장을 시키고 옷을 해 입혀서 그녀를 일본군에 팔아넘겼다. 다음 행선지는 중국의 내몽고 장가구였다. 그곳에서 1년 넘게 일본군을 상대했다. 일본군의 패전 소식이 들렸다. 그곳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작정 화물열차를 얻어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 한국 광복군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사정했다. 수수를 물에 갈아 먹으며 겨우 조선 땅으로 돌아왔다
“혹시 군 단위 출신 학생 있나요?”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는 지난 5월 6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지역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관한 두 번째 주제 강연을 질문으로 시작했다. 세 학생이 손을 들며 ‘여주’ ‘진안’ ‘서천’ 각 출신지를 밝혔다.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서천이라고 이야기합니까?” 학생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대전 옆에 있는 동네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황 이사는 고향을 묻는 대화 속에 지역의 현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와 지역 사이 위계가 우리
9만여 관중이 운집한 캄프 누(FC 바르셀로나 홈구장),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가 리오넬 메시의 정강이를 거칠게 걷어찬다. 주심은 급하게 경기를 중단하고 퇴장을 선언한다. 메시의 동료 선수들이 모여들어 라모스에게 항의하지만,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카를레스 푸욜의 뺨을 가격하고 만다.2010년 11월 29일 라리가 13라운드에서 벌어진 이 초유의 사건은 ‘엘 클라시코'(전통의 경기)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뺨을 맞은 푸욜은 스페인 대표팀의 부주장으로 라모스에게는 고참 격 선수다. 엘 클라시코가 뿜어내는 열기와
사회관계망(SNS)에서 ‘#용기내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음식 포장으로 발생하는 일회용품을 줄여 환경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음식점 방문 때 직접 포장할 냄비나 용기를 가져가서 음식을 담고, 그 후기를 SNS에 게시한다. 올바른 소비를 통해 자기 가치관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챌린지가 꾸준히 이어진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있던 나도 캠페인에 동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시청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는 환상을 무참히 깨버렸다.그 다큐에 따르면 일부 환경단체 주도로 시작되는 이런 캠페인은 환경
올해 2월 26일부터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많은 생명과 일상생활을 앗아간 전염병에 가하는 반격이다. 코로나19 종식에 온 국민의 기대감이 고조됐지만, 불안의 목소리도 못지않다. 백신의 안전성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 때문이다. 불안한 시선은 단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쏠렸다. 지난 2월 아스트라 백신이 혈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65세 이상 고령층 접종 보류 결정을 내렸다. 언론은 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속보 경쟁을 시작했다.2월 22일 스코틀랜드 공중보건국은 "아스트라 백신 접종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이 화제다. 종편·보도전문 채널 '등록제'를 검토할 시기가 됐다는 내용이다. '허가제'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당장 추진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방통위는 지상파를 비롯한 종편·보도전문 채널 등 방송사 허가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방송의 공적 책임을 훼손하는 방송사에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방송 허가제는 방송사의 이탈을 견제하는 강력한 규제 수단이다.2009년 7월 방송법·신문법·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등 미디어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소유
유혈참극을 블랙 코미디로 비튼 영화1969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천재 감독 로만 폴란스키 집에 침입한다. 폴란스키는 영화 일로 런던 여행 중이라 화를 면하지만, 아내이자 26세의 배우인 샤론 테이트와 뱃속의 아기는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2019년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을 재조명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작년 아카데미 상 유력 후보였지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밀리고 만
이대로 극장 영화 시대의 종말이 오고야 마는 걸까? 약 240억 원 제작비로 기대를 모았던 영화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직행한다. 앞서 공개된 <사냥의 시간>과 <콜>에 이어 세 번째다. 제작사는 배급계약으로 310억 원을 받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손익분기점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70억 원 수익을 낸 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3월 <사냥의 시간>을 공개할 때 찬반 여론이 들끓던 것과는 정반대 풍경이다. 외국계 OTT 사업자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게임에서 배운 자리싸움 기술초등학교 5학년 때 <메이플스토리> 게임이 인기가 있었다. 조작법이 쉬웠고 화려한 액션, 귀여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가 있었다. <메이플스토리>는 지금은 한물간 횡스크롤 액션 롤플레이 게임이다. 2D 그래픽 화면에서 캐릭터를 좌우로만 조작할 수 있다. 캐릭터가 앞으로 달리면서 누가 더 빨리 많은 몬스터를 제압하는지 다투는 게임이다. 몬스터가 많이 출몰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플레이어는 상대방에게서 돈을 받고 자신이 사냥하던 자리를 내주기도 하고, 아예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함
편안한 분위기의 칵테일바에 한 남자가 들어선다. 최근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에서 교관으로 활약하며 인기를 얻은 이근 대위다. 자리에 앉아있던 김이나 작사가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카카오톡 메신저로 소통한다. 9월 1일 카카오티브이가 선보인 웹 예능 토크쇼 <톡이나 할까?>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토크쇼는 말이 아닌 카카오톡 메신저로 소통한다.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특유의 긴장감과 쾌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출연
독일 사람들은 사회적 유대를 ‘비타민 B’라고 부른다. 관계를 뜻하는 독일어 ‘Beziehungen’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인간에게 사회적 유대는 필수적이다.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닌 단 한 사람은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뭉쳐야 살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이를 지탱하는 힘은 ‘외로움’이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고립됐을 때 외롭다고 느끼고 이를 ‘위험’으로 인지한다. 외로움은 개인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설계된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외로움은 통증에 가깝다. 통증은 물리
2017년 7월 20일, 린킨파크(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밴드 보컬의 자살 소식에 전세계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3년, 밴드 멤버들은 각자 위치에서 삶을 이어갔다. 밴드의 리더 격인 마이크 시노다는 오랜 벗의 죽음을 잊기 위해 2018년 발매한 앨범 을 시작으로 솔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턴테이블을 담당하는 조셉 한은 작년 JTBC <슈퍼밴드>에 출연해 고국의 팬들에게 얼굴을 비췄다.다가올 10월에 이
“제가 자라면서 보고 좋아했던 것을 작품화하는 것이 팝아트라고 생각해요.”깜찍한 웃음이 매력적인 ‘해피하트’ 캐릭터로 여러 기업과 40여 차례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하는 등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팝 아티스트(대중예술가) 찰스 장(45·본명 장춘수). 그는 자신의 작업이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오랜 전 페이스페인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들 얼굴에 미키마우스 등을 그려주던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의 작품 세계로 들어섰다는 장 작가를 지난 5월 9일 서울 도곡동 작업실에서 만나고 지난 15일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지시 5호로 4대강 6개 보를 상시 개방하도록 했다. 보가 개방되자 유속이 올라 물 흐름이 개선되고 수변생태계도 활기를 되찾았다. 강변에는 모래톱이 생겨나고 물떼새들이 알을 낳아 터전을 일궜다. 유속이 빠른 곳에서 서식하는 유수성 어류도 늘어나고 오염에 강한 오염내성종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00m 미인’으로 불리던 강이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4대강 전체 16개 보 가운데 11개만이 개방됐을 뿐이다. 수자원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아직 개방되지 않은 보가 많
“요즘 근황이 어떻습니까?” 인터뷰에서 근황을 묻는 것은 진부하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근황이라고 해봤자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근황만 묻는 특별한 인터뷰가 있다. 일 년 새 31만 구독자를 모으며 급성장한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 이야기다. 사람들 기억 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왕년의 스타를 재조명한다. 유명인사의 지인을 찾아주던 KBS의 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확장된 모양새다. 한때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며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던 이
“그게 아니고… 배고파서 온 거야”갑자기 고향에는 왜 왔냐고 묻는 친구 은숙(진기주 분),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배고파서 왔다고 답한다. 웬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지만 혜원은 정말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어찌 보면 시시한 이야기다. 도시 생활의 염세적인 기억은 종종 혜원을 괴롭혔지만, 서사에서 갈등을 찾기는 어렵다. 그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음식만 영상에 담긴다. 영화든 소설이든 갈등이 있어야 서사가 진행된다. 갈등과 역경을 이겨내거나 처절하게 패배하는 과정에 사건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은 늘 흥미로운 장치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외국인의 시선을 거치면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최근 외국인이 출연하는 예능이 단순한 스튜디오 토크쇼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포맷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명절 때 일회성으로 소비하던 단계를 지나 다양한 포맷과 소재를 자랑한다. ‘낯설게 바라보기’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tvN <노랫말싸미>는 그 교훈을 보여주고 단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K팝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겠다던 색다른 포맷의 프로그램 <노랫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