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 3]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① 여성의 노동

엔데믹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새 정권도 탄생했다. 3년 만에 찾아온 일상, 새로운 출발에도 오히려 가슴이 답답하다. 코로나 창궐 초기 봇물이었던 지구와 생명 회복, 부와 노동의 불평등 해소, 사람공동체 구축 담론들은 다 어디 갔는가. 공정과 정의를 앞세웠던 집권자의 공약은 왜 벌써 절망인가. 초심으로 청년 기자들이 다시 세상을 시선한다. 첫 주제는 ‘여성’으로, 구체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으로 정했다. (편집자)

 

공장에 엄마의 밥상은 없다

2015년 군대를 전역하고 엄마가 일하는 베어링 공장에 단기로 입사했다. 종업원이 1400여 명이나 되는 공장에는 나처럼 학비를 벌러 온 대학생이 많았다. 나는 주물이 끝난 소재를 가공하는 CNC 선반 라인에 배치됐다. 가공공정의 첫 단계 과정이었다. 엄마는 가공과 조립을 거쳐 완성된 제품을 검사하는 PDI 라인에서 일했다. 초등학교 운동장 6배 넓이 공장에서 우리는 정반대 자리에서 일했다. 구내식당은 PDI 라인 너머에 있어서 점심을 먹으려면 엄마를 지나쳐야 한다. 모두가 식당으로 갔지만, 엄마는 늘 텅 빈 라인을 홀로 지켰다. 엄마는 공장에서 전혀 밥을 먹지 않았다.

공장을 지배하는 것은 형들이었다. 구내식당 역시 그들의 세상이었다. 대여섯 명이 어깨를 맞대고 모여 앉아 적당히 큰 목소리로 사장을 욕하고 사내 복지가 형편없다고 떠들었다.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혈기 왕성한 형들과 달리 공장의 여성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라인에 고작 몇 명 배치된 탓에 굳이 시간 맞춰 모여서 식사할 생각도 못 했다. 이들은 모이지 못하고 흩어져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나는 무섭도록 고요한 이들의 식사를 관찰하곤 했다. “어휴, 아줌마들은 진짜.” 형들은 아줌마들이 집에서 반찬을 챙겨온다며 비아냥댔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줌마에는 엄마도 포함됐다. 엄마는 남자들의 혐오 섞인 시선이, 수군덕거리는 소음이 싫었다. 차라리 주린 배를 붙잡고 내내 참았다. 공장에는 엄마의 밥상이 없다. 엄마는 지금도 끼니를 거르고 공장에서 일한다.

2009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사진.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일을 막 시작한 당시만 해도 엄마는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느끼며 늘 밝은 표정으로 일했다. ⓒ 연합뉴스
2009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사진.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일을 막 시작한 당시만 해도 엄마는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느끼며 늘 밝은 표정으로 일했다. ⓒ 연합뉴스

“아줌마는 치다꺼리나 해요”

엄마는 저녁 8시에 퇴근한다. 종일 굶은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곧바로 식탁에 앉는다. “오늘 꺼벙이가...” 꺼벙이는 기계에 서툰 엄마를 매일 나무라는 남자 동료다. 자기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익힌 작업을 엄마가 잘하지 못해 답답하다며 늘 구박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밥 한술을 뜨고 욕 세 마디를 뱉는다. 탄력이 붙으면 들고 있던 밥숟갈마저 놓고 욕을 이어간다. 공장에서는 속만 끓이던 엄마의 입이 집에 와서야 봇물이 터지는 것이다. 꺼벙이는 불량이 생기면 기계를 배운 적 없는 엄마에게 책임을 넘긴다. 그러면서도 기계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계를 다루기 시작하면 자신과 동등해지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그저 고되고 귀찮은 치다꺼리를 시키기 위해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여성 노동자가 훨씬 편하다.

공장 여성들의 노동은 대개 단순 반복 작업이다. 가공하기 전 소재를 기계에 투입하거나 완성된 제품을 박스에 담는 일이다. 단순 반복 노동은 육체적 피로도가 높다. 여성들이 맡은 하루 1000여 개의 베어링을 들고 내리는 일은 남자인 내게도 고된 노동이었다. 대부분 노동자는 경력을 쌓아서 기계 설비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 매일 쇳덩이와 씨름하는 것보다는 낫다. 엄마도 기계를 다루고 싶어 했다. 그러나 꺼벙이는 이번에도 10년 차 베테랑인 엄마를 건너뛰고, 입사 한 달째인 남자 신입사원에게 장비 교육을 시작했다. 장비는 당연히 남성의 영역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엄마는 다시 기계에서 멀어졌다. 공장은 기계 직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관행을 묵인한다. 여성이 기계를 배우고 차례차례 진급하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 여성들이 기계를 다루며 남자에게 치다꺼리시키는 풍경을 상상조차 하기 싫어한다.

지난 3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금속노조 여성 노동자의 작업장 경험: 자동차업종 사례’라는 이슈페이퍼를 발간했다. 자동차 업종 47명 여성 노동자를 면접 조사한 보고서는 “직무 배정 초기부터 여성에게는 기계 설비 업무를 주지 않고 관련 업무를 배울 교육 훈련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당연히 진급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동화가 이뤄질 때는 가장 먼저 해고됐다. 한 여성 도장 스프레이 숙련자는 새로 입사한 공장에서 “절대로 여성은 뺑끼(도장 스프레이)를 칠 수 없다”며 직무에서 배제됐고 결국 퇴사했다. 단순 작업도 철저히 통제됐다. 한 여성 노동자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반장이 “참아”라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사 결과는 다수의 여성 노동자가 화장실 가는 일이 무서워서 물을 마시지 않고 방광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적었다. 엄마가 끼니를 거르는 것처럼 인간의 기본 생리 욕구를 억누르는 일마저 벌어진다.

지난 3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금속노조 여성 노동자의 작업장 경험: 자동차 업종 사례’ 보고서. 이슈페이퍼는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성차별 실태를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지난 3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금속노조 여성 노동자의 작업장 경험: 자동차 업종 사례’ 보고서. 이슈페이퍼는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성차별 실태를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여성이 기계에 약하다는 편견이 낳은 악순환

여성의 기술 직무 배제는 설비가 자동화하고 있는 스마트공장 시대에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엄마가 일하는 베어링 공장도 자동화 바람이 불었다. 산업용 로봇을 배치하면서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4명이 작업하던 한 라인의 인력이 2명으로 줄었다. 기계를 다루지 못하는 여성은 스마트공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남성 노동자는 새 장비가 들어오면 “저 장비는 내 거다, 찜”이라고 말한다. 장비를 택할 권리가 없는 여성은 비자동화 라인으로 밀려난다. 기계를 다루지 못하는 엄마는 자동화 바람 속에서 불면 날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가 됐다. 엄마가 버티는 방법은 더 열심히 몸을 혹사하는 것이다. 양쪽 라인의 치다꺼리 잡무는 3개 라인으로 늘어났다. 요즘 엄마는 집에 들어오면 퉁퉁 부은 손가락으로 밥숟갈을 든다.

자동화로 인해 개선되는 노동 환경은 대개 남성 친화적이다.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스마트공장을 구축하고 있는 자동차용 너트 공장은 불량품 수가 절반으로 줄고, 고용도 평균 2.2명 늘었다. 늘어난 인력은 설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관리직이다. 자동화 시대, 기계를 다루는 이에게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게 해결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모두 남성의 자리다. 설 자리를 잃은 여성이 장비를 가르쳐달라 요구하지만, 대답은 냉랭하다. 한 여성 노동자는 장비 교육을 부탁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남성이 자신과 대화조차 하지 않아 난감했다고 고백했다.

첨단 IT 기술과 센서, 로봇 등으로 공정이 이뤄지는 스마트 공장이 늘고 있지만 여성 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는 자동화 기계의 속도에 맞춰 손이 더 빨라져야 하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탓에 휴게 시간도 줄어들었다. 오래 쉴수록 돌아와서 작업해야 할 물량만 쌓일 뿐이다. ⓒ KBS
첨단 IT 기술과 센서, 로봇 등으로 공정이 이뤄지는 스마트 공장이 늘고 있지만 여성 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는 자동화 기계의 속도에 맞춰 손이 더 빨라져야 하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탓에 휴게 시간도 줄어들었다. 오래 쉴수록 돌아와서 작업해야 할 물량만 쌓일 뿐이다. ⓒ KBS

공장에서 일하기 전, 나도 현장의 여느 남성처럼 편견에 빠져 있었다. 중년 여성이 기계에 서툴다는 편견은 그 해 깨졌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인 40대 중반 여성 노동자와 교대로 일했다. 그는 선반 장비 8대로 이뤄진 라인 전체를 책임졌다. 아무 문제 없이 제품 치수를 확인해 입력값을 보정하고 쇠를 깎는 팁과 드릴을 교체했다. 무거운 소재가 잔뜩 담긴 대차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거뜬히 이동시켰다. 근무일지는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근무를 교대할 때면 장비 내부를 말끔히 청소하고 특이사항을 빠짐없이 인수인계했다. 그의 근무를 이어받으면 한결 일이 수월했다.

여성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곳은 일손이 모자란 작업장이다. 선삭 가공 라인은 상대적으로 일손이 귀한 편이다. 기름이 많이 튀는 데다 절삭 과정에서 쇳가루와 악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신입사원이 들락거린다. 일손이 모자란 작업장은 여성을 적극적으로 고용한다. 남성의 영역이라 선 긋는 기계를 기꺼이 여성에게 맡긴다. 여성이 장비 사용법만 익히면 자기 역할을 오롯이 해낸다. 중년의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다는 걸 내가 경험하고 두 눈으로 확인했다.

엄마가 기계치라는 꺼벙이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엄마는 지난해 내가 일했던 라인에서 잠깐 순환 근무를 했다. 당시 엄마는 양쪽 라인을 종횡무진 헤치며 기계를 다뤘다. 선삭 반장은 엄마에게 계속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꺼벙이가 엄마를 붙잡았다. 치다꺼리해주는 엄마가 없으니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이다. 마음이 약한 엄마는 꺼벙이의 전화를 받고 그곳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돌아오자 꺼벙이의 태도는 바뀌었다. 꺼벙이는 당연한 치다꺼리를 누리기 위해 엄마에게 기계를 알려줄 생각이 없다. 엄마가 기계치이기 때문이 아니다.

엄마도 녹색 조끼를 입고 싶다

공장 현장에서 조끼는 권력이다. 공장에 처음 입사하면 노란색 조끼를 받는다. 대개 등에는 현장실습이라는 글이 쓰여있다. 아직 신입 딱지를 떼지 못한 이들에게 ‘병아리’라는 별칭이 따른다. 신입사원들은 노란색 조끼를 벗고 병아리에서 닭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신입 딱지를 떼면 조끼를 벗고 일한다. 구분 없이 모두 같은 ‘작업자 1, 2, 3’이다. 관리자인 조장과 반장이 되면 남색 조끼를 입는다. 양쪽 가슴에는 위풍당당 ‘작업 관리’라는 글이 쓰여있다. 공장의 모든 기계 설비를 다루고 인력까지 관리하는 이들에게 채워주는 완장이다.

당시 베어링 공장은 생산직 간부에게 생산공정 일부를 책임지게 하는 도급 소사장 제도로 운영됐다. 공장을 설립한 모기업은 공장 내 십수 개 사업장 설비를 갖추고 소사장에게 맡긴다. 소사장은 설비를 기반으로 사업체를 만들고 생산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력 충원과 관리, 판매 등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여러 사업체에 위험부담을 분산해 불황에 대응하는 경영기법이다. 작업자로 입사해 생산 현장에서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소사장이다. 소사장은 녹색 조끼를 입는다. 공장의 모든 노동자는 소사장을 꿈꾸며 고된 노동을 견딘다. 그러나 사업장 십수 개가 있는 그 공장에서 녹색 조끼를 입은 여성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엄마도 경력 10년의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작업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 장비를 다룰 줄 모르는 여성은 진급 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장비와 진급은 긴밀하게 엮여 있다.

공장 여성들이 노란색 조끼를 벗고 나면 다시 조끼를 입을 일은 거의 없다. 반장은커녕 조장으로 올라갈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은 평범한 작업복에 토시와 앞치마를 착용한다.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공장 여성들이 노란색 조끼를 벗고 나면 다시 조끼를 입을 일은 거의 없다. 반장은커녕 조장으로 올라갈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은 평범한 작업복에 토시와 앞치마를 착용한다. ⓒ 디지털제천문화대전

임금노동과 돌봄노동,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

여성 노동자가 진급에서 배제되는 또 다른 이유는 가사 노동이다. 앞서 인용한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관리직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는가’란 질문에 긍정으로 답한 여성이 소수에 불과했다. 주된 원인은 기계 설비 취급의 어려움과 가사 노동이었다. 노동하는 여성은 임금 노동과 돌봄 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2.5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교육과 육아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은 2016년 53.8%에서 지난해 17.4%로 줄었다. 현실이 인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남성들은 여성이 독박으로 가사 노동을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 불만만 토로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이후 여성의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이 법제화됐다. 이제 공장 내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여성이 휴직을 신청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법이 보장한 모성권과 돌봄권은 노동조합 존재 여부에 따라 제약이 달라진다. 노조가 설립되고 자리 잡은 사업장만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노조가 자리 잡지 못한 사업장에서 한 여성 노동자는 임신한 몸으로 잔업과 특근을 강요받았다. 그는 퇴사를 각오하고 사업장을 신고했다. 그날 이후로 사업장은 임신한 노동자에게 잔업을 강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현장에서 여성이 휴직하려면 퇴사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생리휴가에 “이게 그렇게 힘드냐?”며 냉담하고, 아이가 아파서 잠시 조퇴해도 “그럴 거면 회사 그만둬, 그냥 퇴사해”라며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여성이 일터와 가정에서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지만, 공장의 남성들 인식은 다르다. 그들은 더는 여성만이 독박으로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남녀 똑같이 일하는데 왜 여성만 힘들어하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옆 라인에 초등학교 고학년을 둔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명문대 국문학과를 꿈꾸는 아들 학업 때문에 결근이 잦았다. 작업장 남성 동료들은 뒤에서, “생리 휴가 아니야?” “남편은 뭐하고 매일 결근이야?” “자식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하고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그는 견디다 못해 공장을 떠났다. 그녀는 떳떳한 가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요즘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다시 공장에 출근한다. 비정규직으로 사업장 이곳저곳을 전전하지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통계청은 지난해 6월 ‘2019년 가계 생산 위성 계정’에서 61개 가사 노동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발표했다. 2019년 기준 1년에 490조 9천억 원, 한 사람당 평균 949만 원이다. 성별로 구분하면 남성이 한 달 46만 원, 여성이 115만 원이다. 일하는 여성은 가사 노동만으로도 70여만 원의 금전적 차이를 감수하는 셈이다. 남성은 여성의 가사 노동을 모르는 체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여성 노동자가 이국의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쫓겨난 일은 단 한 명의 여성에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여성들은 임금 노동과 돌봄 노동의 이중고로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가장인 여성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이 사회로 확산하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여성은 남성보다 3배 넘게 가사 노동에 시간을 들인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아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린다. ⓒ KBS
여성은 남성보다 3배 넘게 가사 노동에 시간을 들인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아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린다. ⓒ KBS

노동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자를 ‘장인’이라고 부른다. 헌신한 기간을 따져 조장과 반장, 그리고 사장 등 직급을 주어 대우했다. 계급에 따라 달라진 조끼 색은 성취감이었고 자랑이었다. 대우 대상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여성에게는 조끼를 입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남성 사회는 여성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남녀 노동의 임금 격차는 당연하다 강변한다. 사실이 아니다. 설비를 다룰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것이다. 가사 노동의 현실이 평등해진 것이 아니라 평등해졌다고 합리화한 것이다. 여성 노동의 차별은 공장 형들이 가진 남성의 편견과 사회의 여성 차별 인식이 낳은 결과물일 뿐이다.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남성중심주의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과 혐오는 뿌리 깊은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었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17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에 부계 중심 관행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예가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경조사 지원에 차별을 두는 관행이다. 한 사업장은 조부모상을 당하면 휴가 5일에 경조금 10만 원을 지원하지만, 외조부모상 경조금과 휴가는 지원하지 않는다. 경조 휴가로 조부모상은 4일, 외조부모상은 2일로 차등 지원하는 사업장도 있다. 부계 중심의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 문화는 사내 복지까지 흘러들어 여성 착취 구조를 만든다.

여성에 대한 성인식도 문제다. 잘못된 성인식은 혐오로 발전한다. 남성의 휴가에는 이유가 있지만 여성의 휴가는 꾀병이라거나 거짓이라 생각한다. 2016년 전남 순천시의 한 청소용역 업체는 생리휴가를 신청한 여성 직원 두 명에게 폐경 유무를 증명하라는 공문을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을 정도다. 생리 현상을 겪지 않는 중년의 여성에게 생리 휴가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조 측은 여성 노동자에게 폐경 유무를 증명하라는 요구는 인권유린이라고 맞서야 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신체적, 생리적 특징 같은 조건을 고려하는 성인지적 관점의 산업안전보건이 미비하기 그지없다.

2016년 전남 순천시의 한 청소용역 업체가 생리휴가를 신청한 여성 직원 두 명에게 폐경 유무를 증명하라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과 혐오는 심각하다. ⓒ SBS
2016년 전남 순천시의 한 청소용역 업체가 생리휴가를 신청한 여성 직원 두 명에게 폐경 유무를 증명하라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과 혐오는 심각하다. ⓒ SBS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전 미국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로부터 110년이 훌쩍 흐른 지금, 한국은 여성들의 차별 수준을 지표화한 ‘유리천장지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남녀 임금 격차, 기업 내 임원 비율 등 10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다. 차별 정도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2020년 기준 59.1%로 OECD 전체 37개국 중 33위고, 남녀 임금 격차는 일본보다 10% 높은 32.5%로 26년 연속으로 가장 낮았다. 주요 상장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역시 8.7%로 가장 낮았다.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은 15.6%로 36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로 3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 113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미투’ 연대와 ‘성평등 사회 여성대회’ 등 집회가 이어졌다. 집회는 여전히 열악한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다. ⓒ KBS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 113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미투’ 연대와 ‘성평등 사회 여성대회’ 등 집회가 이어졌다. 집회는 여전히 열악한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다. ⓒ KBS

내 시선을 끈 건 금속산업 분야였다. 여성 고용률과 관리자 비율이 가장 낮았다. 엄마가 겪은 차별과 유리천장은 지표로도 확인됐다. 엄마의 욕지거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엄마는 오로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의 노동자가 됐다. 자식들 대학 보내고 작은 집 한 칸 마련하려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엄마의 삶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가 숨죽이고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했던 공장에서 당했던 모욕이, 부조리가 부당했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엄마처럼 공장 여성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한 명씩의 꺼벙이가 있을 것이다. 더는 공장 여성의 응어리 진 한을 방치해선 안 된다.

엄마는 당당한 가장이자 노동자다

엄마는 14년 전 가정 사정으로 하루아침에 노동자가 됐다. 평생 가족을 위해 노동자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식당에서 서빙을 했다. 막내아들 급식비 걱정이 등록금 걱정으로 옮겨가자 엄마의 노동은 점차 혹독해져 갔다. 사립학교 급식실로, 냉동식품 회사로, 그리고 마침내 남자들이 득실대는 베어링 공장에 뿌리를 내렸다. 엄마는 그곳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두 아들을 위해 견뎠다. 엄마는 아직도 남편은 뭐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누구도 엄마가 가장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가장이라는 거룩한 이름은 오직 남성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었고 여자는 빠지라고 했다. 여자란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름을 획득하지 못했고, 한 사람의 건강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노동 현장에서 차별당해 왔다.

공장 여성들의 소박한 꿈은 동등한 노동자로서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기계 근처에 얼씬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 진급의 기회에서도 배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가 공장에서 만난 수많은 이모는 모두 가족을 위해 일했다. 이모들도 엄마처럼 손가락 뼈마디가 굵게 튀어나왔고, 종일 서 있느라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말려있었다. 엄마와 이모의 고된 삶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당당한 가장이다. 한 사람의 건강한 노동자다. 엄마의 아픈 사연이나 숭고한 희생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엄마도 그저 밥 벌어 먹고사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노동자다. 남성이라서, 여성이라서 노동의 무게가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의 노동이 인정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 여동생의 미래는 없다. 아니 세상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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