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EBS 자연 다큐멘터리 ‘이것이 야생이다’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김종술 기자가 외쳤다. 그때, 우리는 몰랐다. 2년 전, 나는 동료 PD와 함께 금강에서 자연 다큐멘터리 <물떼새, 날다>를 촬영하고 있었다. 현장 안내와 생태 자문은 금강 취재에 10여 년 세월을 바친 김종술 시민기자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모래톱에서 꼬마물떼새의 둥지를 발견하고, 꼬박 20여 일을 기다렸다. 그날, 마침내 새끼가 부화했다. 새끼들을 촬영할 골든타임은 깃털을 말리고 몸을 숨기기 전까지 단 몇 시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무식하게 전진했다. 어미 물떼새가 경계음을 냈다. 그러다가 한쪽 날개가 부러진 듯 처절하게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천적의 시선을 끌어 새끼를 보호하는 ‘의태 행동’이었다.

우리는 횡재라도 한 것처럼 녀석의 영역을 침범했다. 현장감을 살리려면 피사체에 더 다가가라는 촬영 원칙을 그대로 따랐다. 물떼새 가족이 느꼈을 위협감은 생각지도 못했다. 김종술 기자의 호통이 없었다면 꼬마물떼새 새끼는 살아남지 못했다. 의태 행동은 시간을 버는 용도일 뿐, 도저히 위협에서 벗어날 대책이 서지 않으면 물떼새는 새끼를 버리고 달아난다. 우리의 과욕이 졸지에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 뻔했다. 우리는 모래톱에 액션캠 세 대를 설치하고 자리를 떴다. 사람이 빠지니, 물떼새 가족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몸집이 작은 꼬마물떼새는 천적으로부터 알이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위장 전술을 펼친다. 날개가 다친 척 퍼덕거리거나 늘어뜨리며 자기에게로 천적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물떼새는 카메라를 들고 다가오는 우리를 천적으로 인식했다. 촬영이 길어졌다면 위협을 느끼고 달아날 수도 있었다. ⓒ 오동욱
몸집이 작은 꼬마물떼새는 천적으로부터 알이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위장 전술을 펼친다. 날개가 다친 척 퍼덕거리거나 늘어뜨리며 자기에게로 천적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물떼새는 카메라를 들고 다가오는 우리를 천적으로 인식했다. 촬영이 길어졌다면 위협을 느끼고 달아날 수도 있었다. ⓒ 오동욱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이치였다. 우리는 집에서 벌레 한 마리만 마주쳐도 기겁한다. 다른 생명 종이 내 공간에 침범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자연의 생명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들도 자신의 영역을 사수하기 위해 분투한다. 다른 생명 종의 생태를 존중하고, 가능한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 건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다. EBS 자연 다큐멘터리 <이것이 야생이다>는 이 원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야생’을 지향하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정신과 원칙에 충실한지 의문이 든다.

쇠가마우지가 소청도 절벽에 알을 낳는 이유

4년 만에 돌아온 EBS <이것이 야생이다>는 새 시즌의 부제를 ‘3%의 세상’으로 정했다. 한때 지구의 99%를 차지했던 야생동물들은 이제 약 3%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은 인간이 훼손한 야생 환경의 현장을 다룬다. 끊임없이 파괴되는 자연을 더 이상 관망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프로그램의 큰 흐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인간이 훼손한 자연이고, 둘째는 그 자연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경이로운 생명들이다.

EBS 자연 다큐멘터리 '이것이 야생이다'의 한 장면이다. 소청도 절벽은 쇠가마우지의 든든한 기착지다. 판판한 면에 알을 낳고 암수가 번갈아 가며 포란한다. ⓒ EBS
EBS 자연 다큐멘터리 '이것이 야생이다'의 한 장면이다. 소청도 절벽은 쇠가마우지의 든든한 기착지다. 판판한 면에 알을 낳고 암수가 번갈아 가며 포란한다. ⓒ EBS

프롤로그인 ‘절벽 끝 야생’ 편은 두 흐름을 역순으로 나열한다. 소청도의 절벽은 쇠가마우지를 비롯해 수많은 새들이 머물다 가는 기착지다. 쇠가마우지의 생태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전형이다. 깎아지르는 절벽에 알을 낳고 꿈틀대는 생명력은 자연의 ‘경이’다. 이 경이로운 생명들은 소청도 절벽처럼 척박한 곳에서 피어날 수밖에 없다. 새들이 편안하게 머물던 공간은 이미 인간이 점령했다. 전 세계 새들의 멸종 원인 1위는 고양이, 2위는 유리창 충돌이다. 육지에는 고양이가 새들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해안 도로에는 방음벽이 줄줄이 서 있다. 방음벽 유리창에 충돌 방지용 스티커만 붙이더라도 숱한 새들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다. 인간은 이마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 외로운 섬의 척박한 절벽이 오히려 새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됐다.

조류충돌방지협회는 전국 20여 개의 방음벽에서 새들의 사체를 수거해 추모했다. 약 200여 개의 개체는 멧비둘기와 물까치, 새매, 참매, 소쩍새, 부엉이 등으로 다양했다. ⓒ EBS
조류충돌방지협회는 전국 20여 개의 방음벽에서 새들의 사체를 수거해 추모했다. 약 200여 개의 개체는 멧비둘기와 물까치, 새매, 참매, 소쩍새, 부엉이 등으로 다양했다. ⓒ EBS

자연 다큐 제작의 기본과 예의

금강 고마나루를 처음 방문한 날, 우리는 반쯤 물에 잠긴 물떼새 둥지를 발견했다. 물에 잠긴 알은 다시 포란을 해도 살리기 어렵다. 서서히 썩기 시작해 결국 어미는 알을 버리고 떠난다. 안타까운 마음에 알을 집어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의 체취는 강물보다 더 위험하다. 알에 체취가 묻는 순간부터 어미 새는 포란을 포기한다. 자연에서 인간의 흔적은 이토록 치명적이다. 인간이 자연에 접근하려면 투명 인간이 되어야 한다. 생명의 생태계를 위협해서도, 훼손해서도 안 된다. 그 시작이 위장막 설치다.

'물떼새, 날다' 제작진이 현장에 설치한 위장막.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는 기획 단계에서 위장의 중요성을 공부했다. 카메라 렌즈만 빼꼼히 내밀어 모래톱 위 생명들을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 유희태
'물떼새, 날다' 제작진이 현장에 설치한 위장막.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는 기획 단계에서 위장의 중요성을 공부했다. 카메라 렌즈만 빼꼼히 내밀어 모래톱 위 생명들을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 유희태

<이것이 야생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도시의 야생 최강자들’ 편은 위장 텐트 설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야행성 동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명을 최소화하고, 초고감도 카메라로 어둠을 밀어낸다. 야외에는 열감지 진동 센서를 설치해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한다. 조용한 기다림은 결국 빛을 발했다. 오산천의 살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쾡이는 레이더를 돌리듯 귀를 사방으로 펼쳐 보였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청력으로 위험을 감지한다. 제작진은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살쾡이는 인간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까지도 거슬리는 듯했다. 텐트 안에서 숨죽인 채 기다린 인내심이 도심 속의 야생을 오롯이 담아낸다.

야생 환경에 들어간 인간은 생명의 생태계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거나 위장막을 설치해 자신의 존재를 감춰야 한다. ⓒ EBS
야생 환경에 들어간 인간은 생명의 생태계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거나 위장막을 설치해 자신의 존재를 감춰야 한다. ⓒ EBS

우리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 현상의 경외를 느낀다.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은 자연을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일종의 소비 행위다. 자연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다큐멘터리로 엮는 일련의 제작 과정은 결국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다. 자연의 허락조차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작 과정에서 자연 생태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어떤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는 건 손님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이것이 야생이다>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에는 충실했다.

살쾡이의 야생 발톱 보여주기

<물떼새, 날다>에서 우리는 생명의 경이를 보여주는 장면을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구성안은 거창했다. 천적인 뱀에 맞서 새끼를 지키는 어미 새, 암수가 번갈아 가며 포란하는 지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물떼새 등 수많은 장면을 계획했다.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물떼새의 천적인 뱀을 단 한 커트도 촬영하지 못했다. 금강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뱀을 물떼새 생태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지도 교수가 편집본을 보고 단번에 지적했다. 구성안대로 서사를 맞추기 위해 생태계 사실을 왜곡했던 것이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찍힌 영상을 기초로 새로 구성안을 만들었다. 영상은 부족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이야기를 풀어가니 훨씬 설득력 있는 서사가 짜였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내 상상을 이야기하는 장르가 아니다. 영상이 기록한 사실만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영상으로 기록하지 못하면 이야기도 없다.

<이것이 야생이다> ‘도시의 야생 최강자들’ 편은 이 원칙을 위배했다. 기록하지 못한 사실을 연출로 재현해냈다. 생태 자문을 한 최현명 전문가는 스케치북에 살쾡이의 발톱을 그려 보였다. 이어서 고양잇과 동물들은 사냥할 때 발톱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뒤이어 살쾡이 사냥 영상을 삽입했다. 살쾡이가 날아가는 새를 낚아채는 장면이었다. 살쾡이의 표정과 발톱을 정면에서 포착한 결정적 장면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새가 시원스럽게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했다. 새의 발목에는 가는 줄이 묶여 있었다. 제작진이 살쾡이의 사냥 장면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현장을 연출한 것이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연출한 장면은 정직하게 자막으로 재현했음을 알려야 한다. 방송에선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야생동물의 사냥 장면을 포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야생의 생태와 습성을 파악하고 사냥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되는 곳에 카메라를 두고 기다리는 게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의 정석이다.

새의 발목에 가는 줄이 묶여있다. 방영 후 논란이 일자 EBS는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을 일부 편집했다. 살쾡이의 발톱만 보여주고 새가 달아나는 장면을 삭제했다. 이 사진은 윤순태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이 따로 기록해둔 것이다. 사회관계망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다큐 감독들에게 사과했다고 전해질 뿐, EBS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 윤순태 감독 페이스북 갈무리
새의 발목에 가는 줄이 묶여있다. 방영 후 논란이 일자 EBS는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을 일부 편집했다. 살쾡이의 발톱만 보여주고 새가 달아나는 장면을 삭제했다. 이 사진은 윤순태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이 따로 기록해둔 것이다. 사회관계망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다큐 감독들에게 사과했다고 전해질 뿐, EBS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 윤순태 감독 페이스북 갈무리

우리나라 방송의 제작환경은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비해 턱없이 열악하다. 담당 PD 한 명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제작 여건과 부족한 제작 기간 등 고질적인 구조가 발목을 잡는다.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 떠도는 말이 있다. <BBC>는 산 전체를 세팅하지만, 우린 겨우 계곡 하나 세팅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BBC>는 압도적인 생명의 경이를 포착한다. 한국의 제작자는 시간과 비용에 쫓겨 열악한 장비로 필요한 장면을 그려내지 못했다. 그동안 발생한 한국 자연 다큐멘터리의 연출 조작 문제는 대부분 이런 구조적인 요인에서 출발했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건 1998년 방영한 KBS <수달> 조작 파문이었다. 제작진은 강원도 인제 내린천에서 촬영하던 암컷 수달이 통발에 걸려 죽자, 경북의 한 동물병원에서 보호받던 수달 한 쌍을 데려와 죽은 수달의 새끼인 것처럼 꾸며서 방송했다. 어미 없이 살아가는 수달 남매의 애틋한 ‘가족애’가 조작됐다는 사실에 시청자는 분노했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자연 다큐멘터리 조작 사건 이후 방송사는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제작기준을 준수하겠다 했다. 그러나 연출 욕심으로 인한 조작 문제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기본은 기록 정신이다. 진실의 추구도 기록이 있어야 가능하다. 나도 천적인 뱀과 싸우며 새끼를 지키는 물떼새의 ‘모성애’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해 물떼새는 운이 좋게도 천적인 뱀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 역시 하나의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에서 살쾡이는 처절한 패배자다. 확률적으로 살쾡이가 사냥에 성공하는 횟수보다, 실패하는 횟수가 더 많다. 자연 다큐멘터리가 생태계의 진실을 추구한다면 사냥에 실패한 살쾡이도 주인공으로 인정해야 한다. 아니면 카메라를 켜고 이 장면을 찍을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이 실천이 진정한 자연 다큐멘터리의 기록 정신이다. <EBS>는 생명을 경시한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송사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것이 공영방송의 책무다.

오산천 수달의 두 가지 운명

<이것이 야생이다>의 두 번째 문제는 지명을 혼용해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도시의 야생 최강자들’ 편은 오산천 수달의 생태를 담았다. 오산천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기흥 저수지에서 출발한다. 화성의 동탄 신도시를 거쳐 오산과 평택까지 약 15km를 흐르는 도심하천이다. 15년 전, 오산천의 수질은 폐수에 가까운 5등급 판정을 받았다. 물고기는 폐사하고 사람은 피부병을 앓았다. 2010년부터 오산시는 85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실시했다. 이제는 수영이나 목욕을 해도 무방한 2등급 수질을 인정받는다. 오산시는 12년의 성과를 수달로 말한다. 뉴스 보도를 통해 ‘1등급 수질에서 서식하는 수달이 돌아왔다’고 홍보한다. 도심 속 수달은 뉴스거리가 된다.

오산시는 수달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내세워 오산천 생태 복원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2010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마침내 오산천에 수달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 오산시
오산시는 수달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내세워 오산천 생태 복원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2010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마침내 오산천에 수달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 오산시

이 방영분은 오산천의 상류 지역인 동탄 구간에서 촬영됐다. 최수종 배우와 최현명 전문가가 수달을 만난 곳도 반송교 다리 밑, 즉 동탄 신도시 한 가운데다. 그런데 정작 지명은 ‘오산시’로 표기됐다. 행정구역상 동탄은 화성시에 속한다. 적확한 표기는 오산천 ‘동탄 구간’이다. 지명의 혼용으로 인해 동탄의 도심하천이 오산의 수변 환경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문제는 수달을 바라보는 오산시와 화성시의 시선이 서로 상이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야생이다' ‘도시의 야생 최강자들’ 편(위)에서 ‘경기도 오산시 오산천’으로 표기한 장소를 항공뷰(아래)로 확인해봤다. 해당 지역은 동탄 여울공원이 위치한 곳으로, 동탄 신도시의 한 가운데다. ⓒ EBS, 네이버 항공뷰
'이것이 야생이다' ‘도시의 야생 최강자들’ 편(위)에서 ‘경기도 오산시 오산천’으로 표기한 장소를 항공뷰(아래)로 확인해봤다. 해당 지역은 동탄 여울공원이 위치한 곳으로, 동탄 신도시의 한 가운데다. ⓒ EBS, 네이버 항공뷰

화성시는 작년 5월부터 오산천 상류의 약 3.85km 구간에서 친수하천조성사업을 벌였다. 하천의 밑바닥 토사를 긁어내 수변에 쌓으면 강을 따라 양쪽에 판판한 길이 생긴다. 그 위에 인간이 편히 쉴 수 있는 각종 여가 시설을 만드는 사업이다. 달리 표현하면 수달이 뛰노는 자연 생태 공간을 인간의 휴식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화성시 입장에서 수달은 달갑지 않은 존재다. 오산시가 수달을 앞세워 오산천 수질 홍보에 열중하는 반면, 지난 6개월간 화성시의 수달 관련 보도는 전무하다. 같은 오산천이지만 동탄의 수달은 환영받지 못한다. 인간의 개발 논리 앞에서 수달은 두 도시의 정치적 상황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됐다. 공영방송 <EBS>는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다른 매체가 보도자료를 그대로 내는 것처럼 수달을 이용해 오산시 사업을 칭찬할 뿐이었다.

<이것이 야생이다> 팀이 굳이 지명을 혼용하면서 동탄을 촬영장소로 선택한 효과는 영상에서 드러났다. 다큐가 보여준 동탄 도심의 야경과 오산천 자연 생태계의 대비 몽타주는 더 극적인 효과를 냈다. 몽타주는 서로 다른 장면을 순서대로 나열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창조하는 영화적 기법이다. 이 프로그램은 어둠을 밝히는 동탄의 고층빌딩을 5초간 보여주고, 다시 텐트로 돌아와 수달이 노는 모습을 5초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상을 교차 편집했다. 두 영상이 충돌하면서 생성되는 메시지는 ‘오산천은 도심 속의 건강한 생태계’라는 인식이다.

왼쪽에 배치된 사진은 휘황찬란한 도심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배치된 사진은 야간의 오산천에서 고라니와 살쾡이가 활동하는 모습이다. 두 공간이 영상으로 나란히 배치되면 ‘도심의 건강한 하천 생태계’라는 새로운 메시지가 만들어진다. ⓒ EBS
왼쪽에 배치된 사진은 휘황찬란한 도심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배치된 사진은 야간의 오산천에서 고라니와 살쾡이가 활동하는 모습이다. 두 공간이 영상으로 나란히 배치되면 ‘도심의 건강한 하천 생태계’라는 새로운 메시지가 만들어진다. ⓒ EBS

<이것이 야생이다>는 오산시의 생태계 복원의 성과를 홍보하는 미담에 그쳤다. 최현명 전문가는 “꾸준한 생태계 복원 노력으로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가 됐다”면서 오산시의 성과를 치하했다. 제작진은 생명을 위한 생태계 복원 노력과 수달의 공간을 빼앗는 인간을 규탄하는 여론 사이를 자연 다큐의 정신과 시선에서 바라봐야 했다. 그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한 결과, 피해는 그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수달을 비롯한 생명들의 몫이 됐다. 오산천 동탄 구간에서 서식하는 생명들은 강을 따라 하류로 밀려나 치열한 영역 다툼을 벌이며 살아갈 것이다. <EBS>는 그 점을 간과했다.

BBC가 보여준 ‘인간애’의 개입

<물떼새, 날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금강과 유구천이 만나는 합수부를 자주 찾았다. 금강의 제1지류가 서로 만나는 구간이니 모래톱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 의지해 살아가는 생명들도 많았다. 우리는 그곳에서도 꼬마물떼새 둥지를 발견했다. 모래톱 한 가운데에 조그만 알 네 개가 오밀조밀 놓여있었다. 장소를 기억하고 떠나려는데, 한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모래톱에서 사륜 오토바이를 즐기는 이들이었다. 두꺼운 바퀴로 모래톱을 긁어지나 가는데 물떼새 둥지를 아슬하게 피해 갔다. 애가 탔다. 분통이 터졌지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물떼새를 위해 그들과 싸울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생태계는 무너지고, 생명은 점점 더 나락으로 몰리고 있다.

금강 모래톱에서 오토바이를 즐기는 이들. 합수부 모래톱은 안전상의 이유로 레저 스포츠 활동이 금지된 구역이다. 이들은 철조망을 무단으로 열어젖히고 오토바이를 들여왔다. 금강을 지키는 김종술 기자가 공주시에 민원을 넣어봤지만,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 오동욱
금강 모래톱에서 오토바이를 즐기는 이들. 합수부 모래톱은 안전상의 이유로 레저 스포츠 활동이 금지된 구역이다. 이들은 철조망을 무단으로 열어젖히고 오토바이를 들여왔다. 금강을 지키는 김종술 기자가 공주시에 민원을 넣어봤지만,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 오동욱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보여준 인간애는 원칙에만 매몰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BBC> 제작진은 두 가지 원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첫째는 자연의 생명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만든 조건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자연 다큐멘터리 ‘다이너스티’(Dynasty) 제작진은 이례적으로 그 원칙을 깨뜨렸다. 황제펭귄 무리가 협곡에 갇혀 죽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 제작진은 촬영을 중단하고 삽으로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었다. 펭귄 수십 마리가 인간이 만든 경사로를 따라 탈출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두 번째 원칙을 깨뜨렸다. 황제펭귄의 천적인 바다표범이 멀리서 입맛을 다시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자연 생태계 불개입 원칙을 무너뜨린 가치의 중심에는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애’가 있었다.

BBC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수십 마리의 펭귄을 위해 카메라 대신 삽을 들었다. 펭귄이 이동하기 쉽게 급격한 경사로를 완만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 BBC
BBC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수십 마리의 펭귄을 위해 카메라 대신 삽을 들었다. 펭귄이 이동하기 쉽게 급격한 경사로를 완만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 BBC

세상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계된다. 자연과 야생의 생명들은 쉽게 배제된다. 영문도 모른 채 바뀐 생태에서 야생의 생명들은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책무와 의무는 이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아니, 공존을 넘어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 자연 다큐멘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우리가 자연 다큐멘터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개입조차 생명을 향해야 한다. <이것이 야생이다>는 기획 의도에서 생명의 위기를 맞은 ‘3%의 세상’을 기록하겠다 적었다. 초심은 잊혔고, 그 결과는 인간을 위한 방송으로 이어졌다. 시청자에게 더 극적인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장면을 연출했고, 오산시의 성과를 칭찬하기 위해 수달을 이용했다. 초심이었던 3%의 세계를 봐야 한다. 인간이 아니라 야생을 우선순위에 두고 인간이 훼손한 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경이로운 생명을 보여줄 때, 시청자는 <이것이 야생이다>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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