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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호스트’는 다 어디로 갔을까
[미디어비평] ‘토크쇼’의 부활을 꿈꾸며
2020년 10월 02일 (금) 21:40:37 유희태 PD yoohee43@naver.com

편안한 분위기의 칵테일바에 한 남자가 들어선다. 최근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에서 교관으로 활약하며 인기를 얻은 이근 대위다. 자리에 앉아있던 김이나 작사가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카카오톡 메신저로 소통한다. 9월 1일 카카오티브이가 선보인 웹 예능 토크쇼 <톡이나 할까?>의 오프닝 장면이다.

   
▲ 카카오티브이의 웹 예능 <톡이나 할까?>는 말이 아닌 카카오톡 메신저로 소통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토크쇼다. ⓒ 카카오티브이

이 토크쇼는 말이 아닌 카카오톡 메신저로 소통한다.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때 생기는 특유의 긴장감과 쾌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출연자들은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에 한껏 웃어 보이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한다. 고민 끝에 답장을 보내고는 입술을 질끈 깨무는 모습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새롭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적응한 토크쇼의 현주소다.

호스트의 개성과 역량에 의존하는 정통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은 1982년부터 무려 33년 동안 미국 심야 토크쇼의 제왕 자리를 지켰다. 그가 은퇴하던 2015년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고마워요 데이브(#ThanksDave)’ 해시태그 운동이 펼쳐질 만큼 영향력 있는 진행자였다. 이 토크쇼의 제왕은 은퇴 3년 만에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복귀 소식을 알렸다. 프로그램 이름은 <오늘의 게스트 -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

   
▲ 미국 심야 토크쇼의 제왕 데이비드 레터맨이 은퇴 3년 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데이비드 레터맨 쇼>로 복귀했다. ⓒ 넷플릭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인이 사랑하는 토크쇼의 전형을 보여준다. 스튜디오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호스트와 게스트, 그리고 관객뿐이다. 어두운 분위기에 강렬한 핀 조명을 쏘아 인물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호스트와 게스트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서 발끝이 닿기 직전이다.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토크쇼의 속성을 잘 살린 무대 구성이다.

토크쇼는 낯선 이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으려면 게스트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기 진심을 이야기해야 한다. 레터맨은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인 스튜디오 인터뷰 전에 집이나 일터 등 게스트가 살아가는 현장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눈다. 방송에도 이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다. 단순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시청자들은 한 인물의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그의 독보적인 역량은 농담과 여유 속에서도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는 노련함이다. 게스트에게 가혹할 수 있는 질문도 그의 세심한 인터뷰 스타일을 거치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커밍아웃을 이야기하는 엘런 디제너러스, 자신이 앓고 있는 조울증과 가족 등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카니예 웨스트. 그들이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인터뷰 스타일이 매우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토크쇼의 천국이다. 다양한 심야 토크쇼의 호스트들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뽐낸다. 이처럼 수많은 정통 토크쇼는 호스트의 개성과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매력을 보여준다.

   
▲ 세계적인 랩퍼이자 작곡가인 카니예 웨스트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 넷플릭스

이야기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정통 토크쇼는 큰 사랑을 받아왔다. 1989년 KBS <자니윤 쇼>가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방송사에서도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러나 정통 토크쇼의 핵심은 확고한 호스트의 개성과 역량이었고, 한 사람이 장기간 토크쇼를 이끌어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방송계는 한 사람의 호스트에 기대지 않고, 한 프로그램에 다양한 호스트를 두기 시작했다. KBS <해피투게더>, MBC <세바퀴>, SBS <강심장>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색다른 설정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했다. tvN <인생술집>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독특한 설정을 도입했다. 딱딱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아늑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게스트는 속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았다. 순전히 호스트의 역량으로 여겨지던 문제가 술로 해결된 것이다. 비지상파 심야에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 정도만 가능하다는 음주방송 심의규제는 지켰다.

   
▲ tvN <인생술집>은 취중 토크쇼를 표방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 신선함을 줬다. ⓒ tvN

채널A <아이콘택트>는 말을 하지 않고 눈을 마주 본다는 설정이다. 특별한 사연을 가진 두 게스트는 ‘눈 맞춤’을 통해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다.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아도 해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드라마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프로그램 역시 눈 맞춤이라는 설정이 호스트의 역량을 보완한다.

   
▲ 채널A <아이콘택트> 게스트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해묵은 감정을 해소한다. ⓒ 채널A

토크쇼는 호스트 한 사람의 역량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변용을 시도해왔다. 풍성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호스트의 수를 늘리거나, 독특한 설정으로 호스트의 역량을 대체했다. 그리고 모든 노력이 향한 곳은 하나였다. 이야기에 진정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토크쇼의 현주소는?

최근 방송계는 디지털미디어에 적응하는 훈련이 한창이다. 짧은 클립 영상으로 화제가 되기 위해 소위 ‘아이캐처’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1% 미만의 시청률을 보이지만, 화제성 면에서는 다른 지상파 프로그램 이상의 성과를 보인다. 스낵 콘텐츠가 대세인 트렌드에 특화한 구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스낵컬쳐형 콘텐츠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큰 화제가 됐지만, 거짓 사연 등 논란도 일고 있다. ⓒ KBS

사실 이 프로그램은 MBC <무릎팍 도사>의 콘셉트를 그대로 모방했다. 존댓말이 아닌 반말투로 갑(무속인)과 을(의뢰인)의 구도를 구축해 속 시원한 토크쇼를 만들어간다. 시시콜콜한 사연을 다루는 각 에피소드는 10분 내외로 짧게 다룬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볍게 소비하기 좋다. 주로 영상보다는 오디오로 내용이 전달되니 라디오처럼 소비할 수도 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SBS 모비딕에서 제작한 웹예능 <양세형의 숏터뷰>는 아예 디지털미디어에 편성한 토크쇼다. <숏터뷰>는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이 빠진 ‘결’만 존재한다. 만남과 동시에 본격적인 인터뷰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독특한 지점은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콩트를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을 인터뷰한다면 그가 유명세를 떨친 국정감사 상황극을 재연하는 식이다. 불필요한 장면을 과감히 배제하고 핵심만 다루는 것이 이 콘텐츠의 전략이다.

   
▲ SBS 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는 빠른 전개와 독특한 캐릭터로 화제를 모았다. ⓒ SBS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호스트는 어떤 유형일까?

당시 떠오르던 예능인 양세형을 등에 업고 <숏터뷰>는 승승장구했다. 양세형은 이 콘텐츠를 통해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남자 예능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 뒤 <숏터뷰>는 폐지됐다. 호스트 양세형의 깐죽거리는 캐릭터는 처음에야 신선했지만 토크쇼를 장기간 끌고 가는 매력은 되지 못했다. 호스트의 캐릭터는 점점 식상한 것이 되고 그에 따라 콘텐츠의 수명도 짧아진 것이다.

그리고 올해 6월 <제시의 쇼터뷰>가 새롭게 막을 열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인물을 만나 ‘돌직구’ 질문을 던진다는 콘텐츠다. 제시도 양세형만큼 개성이 확고한 인물이다. 인터뷰는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야 하지만, 제시는 자기 방식대로 핵심과 동떨어진 질문을 던진다. 재미있는 점은 시청자들이 제시의 막 나가는 캐릭터를 신선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숏터뷰>와 마찬가지로 호스트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모습이다.

   
▲ <숏터뷰>의 후속으로 시작한 <쇼터뷰>에서는 가수 제시의 독특한 캐릭터가 양세형 역할을 대신한다. ⓒ SBS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늘 궁금해한다. 그래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롭다. 토크쇼를 보는 것은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호스트와 게스트, 그리고 시청자는 함께 호흡하며 서로 삶을 공유한다. 그런데 요즘 토크쇼에는 가장 중요한 호스트가 빠져있다. 그나마 있는 이들은 독특한 캐릭터와 재치로 잠깐 회자할 뿐이다. 농익은 화술로 사람들을 밤잠 설치게 하던 토크쇼의 호스트들은 이 시대에 존재할 수 없는 걸까?


편집: 박두호 기자

[유희태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시사현안팀 유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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