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독일 사람들은 사회적 유대를 ‘비타민 B’라고 부른다. 관계를 뜻하는 독일어 ‘Beziehungen’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인간에게 사회적 유대는 비타민 B처럼 필수적이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최고치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삶도 바뀌고 있다. 지난해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코로나 확산 이전인 2019년(27.7%)에 비해 6.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만 19세 이상 성인 중 몸이 아플 때 도움을 청하거나 말동무가 돼 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가족도 지인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회용 도시락을 앞에 두고 TV 예능 프로그램과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 지나가는 이웃에게 말을 붙이고 싶어 복도에서 매일 담배를 피우는 사람. 그들은 우리 주변에는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 ㈜더쿱

지금도 누군가는 혼자 외로움을 끌어안고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제22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에 오른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1인 가구가 익숙한 시대에 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미덕을 가르쳐준다. 혼자인 게 불편한 사람들, 혼자가 죽을 만큼 괴로운 사람들, 저마다 가진 1인분의 외로움을 우리 사회가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외로움 성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

혼자 사는 진아(공승연 분)는 카드사 상담원이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고충을 상대한다. 카드 사용 내역을 읊어달라는 고객의 요청을 무미건조하게 수행할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숫자는 곧 돈이다. 콜 수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개인의 능력을 입증한다. 그녀는 매 순간 소통이 아닌 과업을 수행한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고객을 대하기에 외려 능력을 인정받는다.

“전 콜 받는 게 더 편한데요.”

그녀는 과거 아버지와 불화로 인해 집을 나왔고 세상과 벽을 쌓았다. 외로움은 일상이 됐다. 견고하던 그녀의 일상은 신입사원 교육을 맡으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관계가 불편해서 스스로 고립을 택한 그녀에게 교육만큼 성가신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을 교육하는 과정은 깊은 관심과 애정을 요구한다. 신입사원 수진(정다은 분)은 지나치게 수더분하다.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재잘대고, 점심을 같이 먹자며 따라나선다. 진아가 혼자인 게 편한 사람이라면, 수진은 관계에 능숙한 사람이다.

▲ 라멘집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혼자다. 각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라멘을 삼킨다. 늦게 온 수진이 신호를 보내지만 진아는 라멘만 먹을 뿐이다. ⓒ 영화 장면 갈무리

늘 혼자이던 라멘집, 그녀는 자신을 뒤따라온 수진을 철저히 외면한다. 식당은 그저 음식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일 뿐이다. 음식을 주문할 때 사용하는 키오스크는 디지털 시대의 편의와 개인의 소외가 불편하게 공존한다. 식당 안 풍경도 철저히 개인적이다. 일렬로 늘어선 식탁은 서로 마주 볼 기회조차 없다. 진아는 소통 없이 편리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잊고 산 지 오래다.

수진은 외로움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다. 진수성찬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고, 기분 좋은 일이 있어도 혼자 걸으면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격언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 관계가 불편해서 스스로 고립을 택한 진아. 영화는 그녀의 철옹성 주변부에 심심한 자극을 심어둔다. 외부세계는 그녀의 견고한 내부세계를 끊임없이 두드린다. 진아의 껍데기를 깨고 들어가려는 사람들. 그녀는 자기만의 견고한 성을 지킬 수 있을까?

외로움, 그 쓰라린 치유의 과정

진아의 상담자 목록에는 ‘정신이상자’라고 메모된 남자가 있다. 그는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 2002년으로 시간여행을 해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다. 한국 사회에서 2002년은 상징적이다. 영화는 당시를 개인이 외롭지 않았던 마지막 낭만의 시대로 서술한다. 출신도 세대도 다른 불특정 다수가 한데 모여 붉은 악마라는 집단이 되고 함께 응원의 함성을 지르던 시절. 집단이 공유하는 기억은 중요하다. 무수한 점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소속된 개인은 ‘나’를 규정하는 척도가 된다. 대한민국의 국민 유희태, <단비뉴스>의 PD 유희태, 사랑하는 어머니의 아들 유희태. 집단 속의 개인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확실한 방법이다.

▲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응원전이 펼쳐졌던 서울시청 앞 광장. 사람들은 축구를 통해 하나의 집단을 형성했다. ⓒ 연합뉴스

모든 것이 버튼으로 통용되는 요즘, 우리의 관계는 사람이 아닌 네트워크망으로 이어져 있다. 음식을 주문하려면 배달 앱을 켜고, 여행을 떠나려면 숙박 앱을 켜고, 그것이 어려우면 전화를 걸어 상담사를 연결한다. 진아는 변화한 업무시스템 한가운데 있다. AI처럼 고객의 유형을 분류해 메모하고 동료 상담원들과 공유한다. 효율을 위해 극도로 체계화한 업무시스템은 개인화를 부추긴다. 진아는 홀로지만 일 속에서 외로울 새가 없다. 하지만 진아의 깊은 내면에는 외로움이 꿈틀거린다.

진아에게도 외로움은 있다. 단지 그 외로움을 애써 외면할 뿐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 안은 TV 소리로 공허하고, 식사 중에도 스마트폰이 그녀의 시선을 빼앗는다.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볼거리는 외로움을 외면하는 현명한 도피처나 다름없다. 서툰 신입사원 수진은 돌발행동을 벌이며 외로운 진아의 내부세계로 진군한다. 진아라면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겠어요”라는 말로 시작해 적당히 매뉴얼에 따라 대응할 텐데 수진은 달랐다. 시간여행을 꿈꾸는 정신이상자의 물음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월드컵이 그렇게 재밌었어요?” 수진의 상담은 시시콜콜한 개인 이야기로 빠지고 만다.

▲ 수진은 상담을 고객과 나누는 대화로 생각한다. 고객의 말 한 마디에 공감하고 반응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 ㈜더쿱

수진은 상담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관계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정신이상자가 사실은 외로워서 전화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2002년이 그리운 이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상담이 그저 시스템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할 수 없다. 수진은 시스템으로부터 탈락되고 만다. 신입사원 수진이 떠나자 진아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일상처럼 욱여넣던 라멘도, 카드 사용내역을 읽어달라는 고객의 요청도 생소하기만 하다. 그녀가 굳이 마주치지 않으려 외면했던 외로움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고립됐을 때 외롭다고 느끼고 이를 ‘위험’으로 인지한다. 외로움은 개인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설계된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외로움은 통증에 가깝다. 통증은 물리적 위험을 감지해 우리의 신체를 보호한다. 끓는 물 속에 손을 넣으면 반사적으로 빼는 것과 같다. 진아는 외롭다.

▲ 외로움과 마주하면서 진아는 일상처럼 먹던 라멘을 넘기지 못한다. 자기가 갇혀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우치자 라멘은 진아의 속을 메스껍게 만든다. ⓒ 영화 장면 갈무리

인간소외를 역행하는 자

영화는 공간 단위로 개인을 구분하고, 그녀가 경험하는 관계 또한 등장인물이 나누어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팀장과 직원들은 자신들의 공간 안에서 이해타산을 따지기 바쁘다. 옆집 청년은 진아가 퇴근할 때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백수다. 그의 공간은 조그만 복도식 아파트 한 채다. 그는 마치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시간 맞춰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는 말 한 마디가 고픈 사람이다.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면 연기가 다른 거 아세요?”

청년이 말을 건네고, 진아는 늘 그래온 것처럼 적정한 공간과 거리를 유지한다. 청년은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담배 연기가 다르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언론은 그를 방 안에 수많은 포르노 DVD에 깔려 죽은 남자로 보도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아픔을 안고 살았는지 관심 두지 않는다. 빈집은 재빠르게 새로운 남자의 집으로 대체된다. 새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 분)은 소위 인싸. 관계가 많은 사람이다. 이사를 돕는 친구들의 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는 척도다.

▲ 옆집에 이사 온 성훈의 집 앞이 이사를 돕는 친구들로 문전성시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훈은 진아의 일상에 특별한 선물을 건네줄 것만 같다. ⓒ 영화 장면 갈무리

그는 인간소외라는 시대의 틀을 시원하게 역행한다. 현실에도 얽힌 사람들이 많을 텐데 죽은 사람까지도 집으로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그는 외로이 죽어간 영혼을 위해 소소한 추모식을 준비한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나약하고 이기적이다. 그런 인간을 생존케 하는 것은 협력과 연대 뿐이다. 인간은 마음의 통증인 ‘외로움’을 통해 집단의 힘을 믿게 되고, 이를 통해 사회는 더 단단해진다. 주거 공간이 물질 가치로 치환되는 시대. 수평과 수직으로 구분 짓기 바쁜 시대, 바로 오늘의 아파트에서 우리가 잊었던 연대의 기억이 꿈틀댄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결돼 있다

빗장으로 잠겨있던 진아의 성벽은 청년의 추모식에서 무너진다. 영화는 세대도 성별도 종교도 다른 이들이 한데 모여 누군가를 추모하는 그리운 풍경을 그려낸다. 이미 고독사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만큼 사회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그만큼 타인의 외로움에 인색했다. 이웃들의 진지한 추모는 그녀가 외로움을 딛고 다시 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레짐작하고 애써 외면했던 외부세계는 어쩌면 꽤 괜찮은 사람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한다. 영화는 여기에 그친다.

“진짜 다르긴 하더라고요”

성훈이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며 말을 건넨다. 여전히 진아의 입속에는 불편한 죄책감이 씹힌다. 청년이 느낀 외로움이 나와 같았다면, 그가 건넸던 말 한 마디는 구원을 갈구하는 기도일지도 모른다. 진아는 작별 인사의 무게를 이제야 깨닫는다. 곧바로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잘 가요”라며 작별 인사를 남긴다.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기에 외롭게 떠나간 사람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회한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자신과 연결된 이들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가 ‘전화’로 관계를 매듭 짓는다는 것이다.

▲ 진아의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무언가를 보는 것뿐 아니라 소통마저도 스마트폰으로 이뤄진다. ⓒ ㈜더쿱

진아의 특별한 소통은 가족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진아가 자신의 내부세계에 고립된 계기는 엄마의 죽음이었다. 어린 시절 사라졌던 아버지(박정학 분)는 보험금이라는 잿밥이 생기자 부리나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피해 집을 뛰쳐나온 진아는 홈 카메라로 아버지의 행태를 지켜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엄마의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쏟던 아버지는 금세 웃는 얼굴로 돌변하며 자신이 초대한 지인들을 맞는다. 그리고 옆자리 낯선 여인이 건네주는 오이소박이를 날름 받아먹으며 “아내가 해주던 것보다 맛있는데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 아버지는 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 집 나갔던 진아를 불러들인다. 무심한 표정으로 도장을 찍은 진아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집에 설치된 홈 카메라로 그의 일상을 지켜본다. ⓒ ㈜더쿱

영화는 각성한 진아가 아버지와 해후하며 눈물을 쏟는 뻔한 클리셰로 인도하지 않는다. 홈 카메라와 전화는 아버지와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미적 거리’는 상대와 얽힌 이해관계를 거두고 무관심의 상태에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거리를 뜻한다. 진아는 기술의 힘을 빌려 아버지와 ‘미적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아버지의 경멸스러운 일상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저 길든 일상의 안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진아의 외로움 탈출 경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살을 부대끼며 정을 느끼던 그 시절의 뻔한 가족 관계를 강요하지 않는다. 굳이 대면으로 이뤄진 인간관계를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시키지도, 전화나 홈 카메라라는 기술의 효용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수진은 수진 대로,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옆집 청년은 옆집 청년 대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외로움과 싸울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가 연결돼 있다고 이야기한다. 방법이 어떻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더 이상 외로운 이들이 혼잣말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가져다 대고 우리 함께 들어야 한다.

▲ 지난해 5월 7일 KBS1TV는 <시사직격>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 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를 방영했다. 청년 고독사 실태를 취재한 이유심 PD는 고독사 못지 않게 ‘고독생’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고독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 KBS

그녀는 몸서리치게 외로운 순간에도 인간 군상 속으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미 타인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아버지와 미적 거리두기를 시도한 이유는 더는 그가 외로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외로움에 몸서리칠 때 그녀는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다. 스스로 고립을 택했지만 누군가를 위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영화는 낭만적인 교류가 끊어진 암울한 이 사회에서 진정 이타적인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편집: 유희태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