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옷장에는 유독 노란 옷이 많다. 입대 전 동생은 180cm 넘는 키에 60kg을 겨우 넘는 깡마른 체형이었다. 동생은 직감적으로 자기 체형을 보완할 색을 찾았다. 실제로 따뜻한 색 계열의 노랑은 팽창색이라 실제 체형보다 크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어쩐지 병아리의 노란 털이 복실복실 복스럽고, 노랗게 익은 벼 이삭은 바라만 봐도 찐덥지게 정이 가더라니.노랑은 팽창의 심상을 갖고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에서 노란색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란색의 아름다운 기름은 응축된 빛, 팽창되기를 바라는 응축된 빛이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저녁은 하나의 은유다. 직장을 벗어나 원하는 활동을 할 체력과 환경만 주어진다면, 그 시간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저녁이 있는 삶의 핵심은 직장과 휴식의 구분이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을 거래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낮과 저녁의 경계를 자발적으로 허무는 사람들이다. 2019년 기준 한국고용정보원이 추정한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자는 50만 명에 이른다.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에게 플랫폼은 대안 노동시장이다. 전업주부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배우자에
“많은 정치인이 사람들을 덩어리로 봐요. 지역이나 성별, 세대 등의 덩어리요. 이토록 다원화한 사회를 한 사람의 개인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어질 거라 생각해요. 평등이란 건 어찌 보면 어마어마하게 어이없는 개념이죠. 모두가 다르니까요.”정의당 장혜영 의원 말처럼, 덩어리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공정을 화두로 던진 ‘청년’도 그렇다. 청년은 생물학적으로 20-30세 전후 젊은이를 말한다. 20대 680만명, 30대 700만명을 합친 1,380만이라는 수는 우리나라 인구 5분의 1을 넘는 큰 덩어리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소수와 함께하기 위해, 다수 앞에 홀로 선 사람.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다. 그는 보수색 짙은 법원에서 송곳처럼 튀어나와 반대 의견을 던졌다. 1993년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 뒤 남녀 임금 차별, 남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군사학교의 학칙 변경, 여군의 주택수당 미지급 문제 등을 다룬 재판에서 여성과 소수자 인권을 대변해왔다. 그런 긴즈버그가 췌장암 재발로 지난달 18일 87년의 생을 마감했다.5년 전 긴즈버그가 우리 대법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법
빼앗긴 땅이 돌아왔다. 누구나 마음대로 누리는 공원으로.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부산‘시민’공원일까? 부산광역시 진구 부전동(옛 범전리) 일대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1910년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가, 광복 후에는 미군 부대에 수용됐다. 뺏긴 땅은 100년만인 2010년 1월 시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2014년 5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시민’ 두 글자를 이름에 새겨 넣은 것은 다시는 이 땅을 남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다. 부산 지하철
수습기자 면접장에 들어와 있는 당신, ‘기사의 완성도와 타이밍 중에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시대인 만큼 ‘완성도’를 꼽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자신 있게 ‘타이밍’이라 답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의혹을 추적하는 기사가 처음부터 100% 맞춰진 퍼즐과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본인이 수집한 조각으로 전체 그림을 그리고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기사를 시의적절하게 내보내는 것이야말로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이라고 했다. 그는 <경향신문> 강진구 노동탐사전문기자다. “기업에
‘똥’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본다. 한 음절 안에 똥이 만들어지고 배설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치경 파열음 ‘ㄸ’과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발음하는 ‘ㅗ’. 연구개에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해 만드는 받침 ‘ㅇ’까지. 입의 가장 앞부분에서 이(齒) 사이를 경쾌하게 때리고, 동그란 동굴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가장 여린 부분에서 파열하는 모습이 꼭 똥이 생겨나고 배출되는 것만 같다. 스스로를 ‘기똥차게’ 나타내는 똥은 그야말로 똥 취급을 받는다. 똥차, 똥개, 똥물, 똥걸레…. 똥이 접두사로 붙으면 그 단어는 놀림말이 되거나, 낮잡아 이르거나,
소맷단이 풍성한 흰 셔츠에 요즘 유행하는 ‘따옴표’ 머리로 멋을 낸 청년 농부. 햇살이 제법 따가웠던 지난 5월 17일, 경남 거창군 고제면 책애농원에서 열매솎기(적과)에 한창인 정수영(29) 대표를 만났다. “올해는 이상 저온으로 냉해 우려가 큰데,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어려워져 일손도 부족하네요.”냉해와 ‘코로나19 인력난’ 딛고 사과농장에서 구슬땀 정 대표에 따르면 그의 사과농장은 5400평 규모로, 연간 1억 7천만 원가량 수익을 낸다. 그는 지난해 4월 유튜브 채널 ‘뚜영사과농부!’를 열고 초보 농부들에게
희망 한 겹, 절망 한 겹. 50년 세월을 겹겹이 쌓아온 형제가 있다. 거리에 잠시 누워있었다는 이유로, 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국가 수용시설에 갇힌 사람들이다. 5년 전 취재차 형제 중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시설에서 하루라도 두들겨맞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일은 탈출할 수 있을까, 부푼 마음은 시설직원의 모진 발길질에 소리 없이 꺼져갔다. 그로부터 3년 뒤 ‘뚜벅뚜벅’이라는 이름의 지자체 지원센터 개소식 현장에서 또 형제를 만났다. 진상규명을 위해 간신히 한 발을 뗀 날이었지만 곧 악에 받친 형제의
지난해 12월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비례의원 선출에 중점을 둔 법안이다. 승자가 의석을 독점하는 지역구의원 비율을 줄이고, 비례의원 선출에 정당지지율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도록 바꾼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이를 역이용해 비례의원 선출만을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눈 뜨고 코 베일 위기에 처한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인사들 역시 위성정당들을 만들었다. 3개월 전만 해도 선거법 개정은 죽은 표를 살려 민의를 반영할 비책인 양 취급되었지만, 현실은 달랐다.사표는 버려진 표인 동시에 ‘버린 표’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각 정당이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