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책애농원’ ‘뚜영사과농장’ 정수영 대표

소맷단이 풍성한 흰 셔츠에 요즘 유행하는 ‘따옴표’ 머리로 멋을 낸 청년 농부. 햇살이 제법 따가웠던 지난 5월 17일, 경남 거창군 고제면 책애농원에서 열매솎기(적과)에 한창인 정수영(29) 대표를 만났다. 

“올해는 이상 저온으로 냉해 우려가 큰데,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어려워져 일손도 부족하네요.”

냉해와 ‘코로나19 인력난’ 딛고 사과농장에서 구슬땀 

▲ 6년째 사과농장 책애농원을 운영 중인 정수영 씨. 지난 5월 따가운 햇살 아래 열매솎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신지인

정 대표에 따르면 그의 사과농장은 5400평 규모로, 연간 1억 7천만 원가량 수익을 낸다. 그는 지난해 4월 유튜브 채널 ‘뚜영사과농부!’를 열고 초보 농부들에게 농사법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구독자는 아직 100명이 채 안 되지만, 과수원 상태와 작업 상황을 고스란히 담은 그의 영상은 좋은 참고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 20여 명을 고용했었다는 그는 이날 일손을 도우러 나온 아주머니 7명이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사과즙과 얼음물을 챙겨준 후 기자와 마주 앉았다. 아직 만 서른이 안 된 이 청년, 어떻게 사과농장 주인이 됐을까. 

“학생 때는 책가방을 메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하루는 방학이 끝난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놀다 집에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서류 하나를 건네더라고요. 학교에서 저 대신 받아온 자퇴신청서였어요.”

책애농원은 ‘책을 사랑(愛)하라’는 뜻에서 그의 부모가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경남 창원에서 보낸 그의 학창시절은 책이나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내내 방황했고, 시험 기간엔 엎드려 자기 일쑤였다. ‘밥 먹으러 학교 간다’고 우스개를 할 정도였다. 자퇴 후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일을 도왔다. 1년 후에는 가게 일을 혼자 맡을 정도로 수완을 인정받았다. 

정 대표가 23살이 된 2014년, 아버지가 그에게 ‘농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한때 게임을 하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1인 미디어 진행자(BJ)가 되려다 부모의 반대에 부닥쳤던 그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었다. 농촌에 산 적도 없고, 가족 중 농업인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의식을 불어넣어 준 것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얘기가 나온 지 7일 만에 짐을 챙겨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농촌인 거창군으로 왔다. 농토와 집은 부모님 식당에서 모은 자금으로 마련했다. 

묻고 또 묻고, 농업마이스터대학서도 ‘열공’  

도시에서 식당일을 하던 청년이 사과 농사를 알 리 없었다. 그는 멘토를 찾아 나섰다. 사과 농사만 30년 넘게 지은 ‘베테랑 농부’ 신홍범(57) 씨를 배드민턴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후 그에게 매달렸다. 신 씨가 “농사 그 힘든 거 말라(뭐하러) 지으러 왔노”라고 하자 오기가 생겼다. 신 씨의 농장에 거의 매일 찾아갔다. 열 가지를 질문하면 돌아오는 답은 많아야 세 개.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겨 농업에 대한 열의가 커졌다고 한다.

정 대표는 전문 농업인 교육에도 적극 참여했다. 농사 시작 후 7개월쯤 됐을 때 거창군 산하 농업기술센터 농업인대학 사과 과정에 들어갔다. 조금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 올해 초엔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에 입학했다. 함께 입학한 학생들은 이미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쟁쟁한 ‘농사꾼’이었고, 강의에서는 생소한 농업용어와 원소 기호들을 가르쳤다. 그는 “마이스터대학의 존재 이유는 ‘배워서 남 주기’”라며 “농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한 주변 분들에게 알려드리려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땡볕 아래 작업하다 열사병으로 쓰러지기도 

“친구들에게 농촌에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니, 제게 이틀 만에 포기하고 돌아올 거라 호언장담을 했죠. 그나마 마음이 맞는 친구들인데도 그랬어요. 도시에서 취직한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저 스스로도 만족하고요. 딱 한 가지,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점만 빼고요.”

사과농장 일이 늘 순조롭진 않았다. 공판장에 사과를 내놓는 시기를 잘못 맞춰 물량이 과도하게 공급됐고, 제값을 받지 못해 1000만 원가량 손해를 본 적도 있다. 일손을 구할 여력이 없었을 때는 정 대표를 포함 서너 명이 쉬는 시간 없이 농장 일에 매달리다 건강을 해치기도 했다. 2017년 여름엔 땡볕 아래 오랜 시간 적과 작업을 하다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젊어서 다행이라며, 더 무리하면 안 된다고 그를 혼냈다.

정 대표는 지난 6년 농사를 짓는 동안 농촌 생활 커뮤니티인 사에이치(4H) 클럽에서 활동하며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4H는 해마다 활동 우수회원에게 사업자금을 지원하고 해외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그는 연수 일정으로 2016년 7월 독일, 스위스 등 유럽 농촌을 방문했다. 유럽에선 농가마다 개인 브랜드샵을 두고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우리나라도 개인 농업인들이 수익구조를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된 노동보다 외로움 때문에 농장 생활이 더 힘들었다는 그는 “외로움을 달래려 혼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고 털어놓았다. 반려견 혜리는 그런 그에게 큰 위로를 주는 존재다. 혜리는 자유롭게 사과밭을 뛰놀다가, 그가 밭에 오면 제일 먼저 반겨준다. 

▲ 책애농장 사과나무 사이에서 반려견 혜리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수영 대표. Ⓒ 신지인

새내기 ‘농튜버’, 농촌 문화인프라 확충 희망 

유튜브를 하는 농부, 즉 ‘농튜버’인 그는 영상 속에 장난스러운 20대 청년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 반려견 혜리와 농장에서 뒹굴고, 과수원 옆 길가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4월 6일자 영상에서는 이웃 농장에서 일을 도와주며 “(농사법은) 농부 한 사람 한 사람의 패션과 같다”고 말한다. 농부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농사법이 있다는 말이다. 다른 농사 방식을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드러난다. 

▲ 정수영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뚜영사과농장!’의 한 장면. Ⓒ 유튜브

아직 최고 조회수가 600건 대인 초보 유튜버지만, 요즘은 농업에 관심 있는 시청자들의 질문도 꽤 들어온다고 한다. 그는 가급적 농업에 관한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따끔하게 답변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겪은 대로, 봐온 대로 전해야만 제대로 농업을 시작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농사법 등을 설명하는 영상에 최대한 내용을 자세히 담으려 노력한다. 앞으로는 해외 농튜버들과 협업해서 상대국 농산물을 서로 생산하는 경쟁을 하고 이를 영상에 담아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언어 문제는 번역기를 이용하거나 통역사를 구하면 된다”고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그는 자신처럼 농사를 짓는 청년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도, “귀촌을 현실 회피수단으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충분히 고민하고 결심했다면 농촌의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농촌 진흥’을 내세워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인구 유입을 위해 문화시설이나 지역축제를 보강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편집: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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