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삶의 공동체’

▲ 신지인 기자

샐러맨더 씨는 16년이 지나도 분한가 보다. 평생 살아온 집 앞에 터널이 뚫렸단다. 보통 터널도 아니고 길이로 따지면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터널이다. 폭약과 굴착기 소리 때문에 전쟁터 한가운데 사는 것 같다던 샐러맨더 씨는 토지보상금으로 ‘0’원을 받았다. 주거권, 재산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나라에서 일어난 희한한 일이었다. 당시 그는 작심하고 건설공단을 상대로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3년여 송사 끝에 대법원은 샐러맨더 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아, 그의 본디 이름은 꼬리치레도롱뇽(Korean clawed salamander), 일명 천성산 도롱뇽이다.

부산과 울산을 잇는 천성산 철도 터널은 원효터널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 개통됐다. 내원사 지율스님과 환경단체는 생태파괴를 이유로 공사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도롱뇽이 원고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된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동물의 권리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대법원은 패소 판결을 하며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소송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소송을 벌일 능력이 없으면 사건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인간 역시 자연에 포함된 생명, 자연 그 자체라는 사실은 잊어버렸다.

문제의 근원은 경제적 효율성만 좇는 관습에 있다. 고도성장을 일구어 온 사람들은 경제효과를 낼 수 있다면 다른 가치는 제쳐도 좋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그래서 도시 빈민 10만 명을 쫓아내 광주대단지를 만들었고, 공사 인부 77명이 사망해도 경부고속도로는 개통됐다. 천성산 터널도 마찬가지다. 법적 다툼으로 공사가 며칠 늦어졌는지, 이에 따른 손해액이 얼마인지 따지는 일에는 도롱뇽과 그곳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보호종들이 낄 틈이 없다.

▲ 천성산 터널 관련 법적 다툼에는 그곳에 서식하는 꼬리치레 도롱뇽을 비롯한 멸종위기 보호종들이 낄 틈이 없다. Ⓒ pixabay

빠르고 효율적으로 근대의 터널을 지나 이제는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94년만 해도 출생아 수가 72만8천명이었지만 2019년에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0만명 선이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노동력이 줄면 결국 생산이 줄고, 소비가 줄어 경제규모가 축소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는 2017년 이후 위축 추세였다가 작년에는 성장률이 2%로 낮아졌다. 성장의 한계가 가시화한 상황에서 경제성만 따지는 것은 명분과 설득력이 부족하다.

성장을 대신할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미국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우주는 객체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의 친교”라고 말했다. 그는 우주에 사는 모든 생명은 인간만큼 권리를 똑같이 인정해줘야 한다는 지구법학을 주창했다. 만약 그가 우리나라 헌법 개정안에 참여했다면, 우리나라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중 ‘국민’을 ‘생명체’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지구에 사는 존재들이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 삶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팽창 아닌 공존을 모색해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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