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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묻고 선우정아 답하다
[상상사전] ‘택배노동자’
2020년 11월 18일 (수) 20:59:43 신지인 기자 jeein@naver.com
   
▲ 신지인 기자

새벽 다섯시에 온 문자 메시지 끝은 ‘죄송합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가 싶어 잠 깨어 다시 봤더니, 택배기사가 보낸 메시지였다. 물량이 많아 새벽배송을 할 수밖에 없고, 이른 시각 기숙사 문이 잠겨있어 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죄송할 일인가 싶다가도 이런 일에 성내는 사람이 있으니 죄송하다는 거겠지 생각했다. 전날 신문에서 본 ‘택배노동자 과로사 올해만 10명째’라는 기사가 머리를 스쳤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은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공통의 공포를 나눠 갖고 있으며, 공통의 지식을 기반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갖는다.’ 전 인류가 죽음과 사랑이라는 공유자산을 가진다는 말인데, 나날이 늘어나는 택배노동자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람들은 공유자산을 잊은 채 너무 많이 가지려 하고,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않는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노래는 감히 내가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배 내밀며 말하지 않는다. 인간성을 잃은 소유와 무소유를 뛰어넘는 건 바로 손잡기다. ⓒ 신지인, 선우정아 공식 페이스북

코로나19는 소비자와 택배회사의 소유욕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소비자는 이왕이면 무료 배송, 기왕이면 로켓배송을 선호한다. 택배회사는 인력 충원을 회피하며 이윤을 극대화한다. 올 6월 택배 물동량은 전년과 비교해 36.3% 증가해 한 택배기사가 한 달에 처리해야 할 물량은 평균 5,165건이 됐다. 하루 255개를 날라야 일과를 마칠 수 있다는 뜻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는 언택트 거래가 늘며 더욱 늘어난 소비자와 택배회사의 소유욕이 만들어낸 참극이다. 

택배회사도, 고용노동부도 노동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택배노동자의 산업재해보험 가입은 저조하다. 회사가 아닌 구와 동 단위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하니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탓에 올해 5월 기준 택배노동자 중 산업재해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1만8792명 중 7444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주 5일, 주 52시간 근무제도 적용받지 못한다. 사실상 노동부 방치 아래 10명이 숨졌다.

숨진 택배노동자의 동생 인터뷰 기사를 보던 중, 뜬금없이 가수 선우정아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한나 아렌트가 던진 질문에 모범답안을 제시해 줄 사람이었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노래는 감히 내가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배 내밀며 말하지 않는다. 대신 피아노 단선율 위에서 담담하게 읊조린다.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쓰러진 인간을 일으키는 건 조용히 내민 손이다.

손잡기로 상징되는 연대가 노랫말에만 있는 건 아니다. 택배기사의 과도한 업무환경에 기꺼이 같이 가자고 손 건네는 시민들이 있다.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과 참여연대·민생경제연구소 단체들이다. 이들은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 과로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하도록 만든 건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1만여 시민이었다. 인간성을 잃은 소유와 무소유를 뛰어넘는 건 바로 손잡기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유희태 PD

[신지인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장 신지인입니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아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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