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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한 겹, 절망 한 겹의 50년 세월
[상상사전] ‘형제복지원’
2020년 05월 26일 (화) 09:47:29 신지인 기자 jeein@naver.com
   
▲ 신지인 기자

희망 한 겹, 절망 한 겹. 50년 세월을 겹겹이 쌓아온 형제가 있다. 거리에 잠시 누워있었다는 이유로, 복장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국가 수용시설에 갇힌 사람들이다. 5년 전 취재차 형제 중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시설에서 하루라도 두들겨맞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내일은 탈출할 수 있을까, 부푼 마음은 시설직원의 모진 발길질에 소리 없이 꺼져갔다. 그로부터 3년 뒤 ‘뚜벅뚜벅’이라는 이름의 지자체 지원센터 개소식 현장에서 또 형제를 만났다. 진상규명을 위해 간신히 한 발을 뗀 날이었지만 곧 악에 받친 형제의 절규가 들렸다. 이들을 지원하는 근거 법안 통과가 불발된 것이다. 그들은 부산 형제복지원 불법감금 피해자다.

형제복지원은 88올림픽을 앞두고 ‘부랑인’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기기 위한 시설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3,000명에 이르는 이들의 감금과 강제노역을 합법화하려고 ‘내무부훈령 제410호’를 제정했고, 복지원에 직접 보조금을 제공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2005년 처음 시행된 과거사정리법은 형제복지원을 포함한 인권유린 사건을 조사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출범했지만 짧은 활동기간 탓에 제대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은 과거사위의 활동 재개를 핵심으로 한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20일 국회 본관 앞에서 과거사법 국회 통과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여야 정치인들의 ‘정치적 거래’로 법안의 배상과 관련한 핵심조항이 삭제된 채 통과됐다는 점이다. 당초 과거사정리법 개정안 36조는 ‘피해자 및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배상 등 방안 강구, 위령사업 실시 등 조치’를 명시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이 법안 통과를 반대하자 더불어민주당은 그 조항을 삭제하기로 협의하고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역대 최악의 법안처리율을 기록한 20대 국회가 회기 종료 10여일 앞두고 어떻게든 법안 통과만 시키고자 여야가 이른바 ‘딜’을 한 결과다.

미래통합당이 배상 조항의 삭제를 요구한 이유와 50년 전 형제복지원에 국민을 감금한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통합당은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인권유린 피해자들에게 모두 배상하려면 예산 규모가 4조7000억원으로 예측된다며 재정 부담을 이유로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운영의 효율과 편의를 위해 개인의 인권과 명예는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는 논리다. 국가는 부랑인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편의를 위해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다. 그로부터 50년 뒤 국가재정 부담을 이유로 개인의 명예훼손과 정신적 상처를 또 다시 묻어두려 하고 있다.

국회에서 909일 동안 천막농성을 벌인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 지난 7일 여야 정치인들이 20대 국회에서 과거사정리법 통과를 약속하자 장기 농성을 해제하며 잠시나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국가가 국가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피해자 보상조항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분명한 다짐이다. 형제들은 찰나의 희망과 속절없는 절망이 반복된 인생을 살았다. 국가권력에 희생된 이들의 문제가 정치세력 간 협상의 대가로 소모돼서는 안 된다. 애달픈 형제들의 인생은 오늘도 국회의원들의 침방울에 실려 이리 튀고, 저리 튄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예슬 기자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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