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긴즈버그'

▲ 신지인 기자

소수와 함께하기 위해, 다수 앞에 홀로 선 사람.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다. 그는 보수색 짙은 법원에서 송곳처럼 튀어나와 반대 의견을 던졌다. 1993년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 뒤 남녀 임금 차별, 남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군사학교의 학칙 변경, 여군의 주택수당 미지급 문제 등을 다룬 재판에서 여성과 소수자 인권을 대변해왔다. 그런 긴즈버그가 췌장암 재발로 지난달 18일 87년의 생을 마감했다.

5년 전 긴즈버그가 우리 대법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법원이 진보의 아이콘 긴즈버그를 초대한 것 자체는 파격이었다. 만약 긴즈버그가 다시 방한할 수만 있다면 딱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디지털교도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지난 23일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가 베트남에서 검거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일부 페이지를 차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놓은 지 열흘 만이다. 소수 편에서 변화를 주도해온 그는 어떤 의견을 우리 사회에 던질까? 

▲ 지난달 18일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별세했다. 그는 27년간 대법관으로 일하며 미국 진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 AP

같은 행위라도 판결은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한다. 디지털교도소는 재판부의 판단기준 변화를 요구한다. 디지털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재판부가 인정하는 범죄자 범주에 들지 않거나, 사이트 운영자가 생각하기에 법원이 선고한 형량이 터무니없이 작은 이들이다. 긴즈버그는 1996년 ‘폴 M. 허버트 법학센터’에서 “합헌으로 보이는 것이 동시대 특정한 관점, 또는 과거 입법자들이 예견하지 못한 관점에서 보면 헌법에 반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고 했다. 입법과 판결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법원이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었던 건 활동가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정에서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화두가 된 것은 1993년부터였다. 서울대 ㄱ 조교가 교수의 성적 괴롭힘에 거부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로 조교 재임용 시험에 탈락하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성희롱이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인식이 생기고, 예방하고자 하는 구체적 움직임도 일어났다. 1995년 12월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돼 성희롱 방지를 위한 근무환경 도입을 명문화했고, 4년 뒤 제정된 ‘남녀차별금지법’은 법제상 최초로 ‘성희롱’ 정의 규정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법의 집행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형식에서 벗어난 처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형법에는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사법부의 한계가 분명할지라도 개인의 인신구속, 때로는 생명까지 다루는 것이 형사재판이다. 집행 주체는 공권력이지만 기준은 법이다. 긴즈버그가 여성과 소수자 인권을 주창한 것도 법 토대 위에서였다. 그는 “판사들은 헌법적 질서 속에서 자기들 위치를 유념해야 한다”거나 “관중이 원하는 바에만 이끌린다면 사직서를 내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 2015년 8월 김소영 대법관의 초청으로 긴즈버그 대법관과의 대담회가 열렸다. 이날 대담회에는 법관, 법원 직원 및 사법연수원생, 변호사 등 법조인 600여 명이 참석했다. Ⓒ 대법원

법원의 판결은 사적 처벌과 달리 ‘보복’에 치중하지 않는다. 디지털교도소 소개란에는 ‘표현의 자유가 100% 보장되기에 마음껏 댓글과 게시글을 작성해주시면 됩니다’라고 적혀있다. 구체적 죄목과 신상, 전화번호가 기재돼 있어 열람하는 사람은 누구나 처벌할 수 있다. 사적 처벌에 동참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형벌은 범죄에 대한 응보나 범인 추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법원 판결이 사적 처벌과 다른 이유는 절제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재산과 신체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형벌은 명백히 필요한 경우에 최후 수단으로 활용된다. 만약 법원 판결마저 보복에 치중하고 절제되지 않는다면 힘과 돈 가진 사람만이 처벌권을 갖게 될 것이다. 

“1970년대 10년 동안 젠더 구분을 허무는 소송이 잇달아 제기됐다. 왜 그럴까? 나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움직였고, 법원은 반응하는 기관이었다. 법원은 길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가속할 수는 있다.”

2016년 9월 기업법률고문협회에서 긴즈버그가 한 말이다. 최근 2년간 우리는 부당한 성폭력에 관해 발언하며 연대하는 ‘미투운동’을 확산시켰다. 이는 피해 서사 공유를 넘어 구조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합당하게 처리하라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동했다. 늦었지만 대법원도 첫걸음은 뗐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새롭게 확정해 기준 형량의 두 배 이상 늘린 것이다. 사법제도는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대 흐름을 읽어야 한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긴즈버그의 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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