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 이상룡의 증손자를 제가 잘 알아요. 재산이 아무것도 없어요. 삼천 석 재산을 나라에 낸 집안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 “친일을 비판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은 미친 짓이 된다”'5대 항일운동 가문의 투쟁과 삶'을 주제로 2부 강의를 시작한 정운현 교수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친일파를 엄하게 단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로 우리가 친일 문제를 비판하지 않고 그들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면 항일 투쟁하며 몸과 재산을 바친 선열들을 세상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일본놈들한
대학에 다니던 2012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여행자취업)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1년 동안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이면 시간제 일을 3개씩 하기도 했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고, 꾸미고 싶은 나이였지만 꾹 참았다. 5000원씩 주는 시급을 모아 비행기값과 숙박비 등의 경비 목표액을 마련하기까지, 내 생활은 ‘내핍’과 ‘인내’ 그 자체였다. 2013년 드디어 호주에 갔을 때, 내 신분은 여전히 ‘알바생’이었지만 시급은 1만7000원이었다. 나는 먹고 싶은 거 먹어가며 1년간 돈을 모아 귀국 전에 호주,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경
“다문화를 바라보는 미디어 프레임 자체가 이주여성이 겪는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다뤄서 한국인들이 다문화인에게 측은한 마음 혹은 시선을 갖게 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미디어가 시청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큰데 자꾸 이런 식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문화인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체화할 수 있는 거죠.”경북의 안동문화방송(MBC)에는 다문화 부부 혹은 외국인과 그 친구가 나와서 퀴즈를 푸는 예능프로그램 <깨소금>이 있다. 지난 1월 5주년을 맞은 <깨소금>은 한 회 당 제작비 1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
<맹자>에 좌우봉원(左右逢源)이라는 말이 있다. 좌우, 곧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잘 헤아리면 근원과 만난다는 뜻이다. 가까이 있는 사물이 사유의 원천이 되며 그를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맹자는 “군자가 올바른 도리로 깊이 탐구하는 것은 스스로 그 도리를 얻고자 해서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맹자의 말처럼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을 얻기보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답을 달달 외우는 방식을 오랫동안 취해왔다.우리나라의 주입식·암기식 교육은 정답이 이미 있다고 말한다. 학생은 스스로 답을
지난 5월 7일 <경향신문>은 ‘‘최태원 백팩’ 홈쇼핑 방송서 완판⋯사회적기업 모어댄 생산’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모어댄에서 만든 ‘컨티뉴 백팩’이 SK스토아라는 홈쇼핑 채널 방송을 통해 완판됐다는 내용이다. 이 백팩을 만든 모어댄은 SK이노베이션이 창업자금 1억 원을 지원한 기업이다. 이 기사는 ‘올 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글로벌 지속가능발전 포럼’에서 이 가방을 직접 소개하며 주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기사는 이어 ‘지난 3월에는 김동연 부총리가 ‘SK그룹과의 혁신성장 현장소통 간담
"나는 어리석고 한심하지만 큐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내가 녀석의 마음속 빈 부분을 채워줄 거야." 영화 <괴물의 아이>에서 쿠마테츠가 한 말이다. 영화는 외톨이 소년 큐타와 제멋대로인 괴물 쿠마테츠의 성장을 다룬다. 쿠마테츠는 괴물이 사는 세계 '쥬텐가이'의 수장이 되려고 인간세계에서 만난 큐타를 제자로 삼지만 다른 괴물들은 이를 반대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어둠을 품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큐타 말고도 인간이 또 있었다. 이오젠의 아들 이치로히코다. 쿠마테츠와 수장 자리를 겨루는 이오젠이 인
"평교자를 금했지 걸어 다니지 말란 법은 업잖은가?" 평교자는 사방이 막히지 않은 들것 모양의 가마다. 조선시대 양반 여성은 평교자를 탔지만, 태종은 3품 이상 정실부인의 평교자를 금하고 옥교자를 타게 했다. 평교자를 타면 가마를 부축하는 종들과 옷깃을 스치며 허물없이 가까워진다는 이유였다. 옥교자는 사방이 막혀있고 지붕이 있는 가마다. 이는 여성이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없도록 하는 조처였다. 그러나 이 조처가 내려지자 길거리를 버젓이 활보하는 여성이 늘어 조정을 곤혹스럽게 했다. 조선시대 여성
<레디 플레이어 원>은 지난 3월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영화다. 2045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한 빈민촌이 배경이다. 배경이 하나 더 있다. 가상현실(VR) 게임 ‘오아시스(OASIS)’다. 오아시스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상상하는 것도 뭐든 할 수 있다.영화는 ‘시궁창’ 같은 현실과 ‘낙원’ 같은 가상세계 오아시스를 오가며 진행된다. 2027년생으로 18살인 주인공 웨이드 와츠(타이 셰리든)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이모와 함께 빈민촌의 컨테이너 타워에 산다. 와츠의 유일한 낙은 오아
지난달 17일 국가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삼성전자가 신청한 보고서 공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보고서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로 공장 구조와 공정 배치, 화학제품 이름, 화학물질 월 사용량 등을 포함한다. 발표 다음 날인 18일 <조선일보>는 1면에 '반도체공장 정보 공개 보류⋯ 한숨 돌린 삼성전자'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을 다뤘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정보 공개를 보류한 산업통상자원부의 판단이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조선>은 같은 날 사회면 ‘보고서 공개는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외부와 아파트단지를 막아서는 건 까마득히 높은 콘크리트 옹벽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 아파트는 일반도로와 아파트단지를 잇는 입구에 주차 차단기 5개를 설치하고 통행료 2천원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아파트 입주민과 인근 지역주민이 갈등을 빚었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차단기를 둘러싼 주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한신-한진 아파트는 4천여 가구가 사는 거대 단지로 최고 21층 아파트 31개 동이 들어서 있
나는 방관자였다. 남자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같은 반 학생들이 여선생님 수업 시간에 맞춰 교실 앞 대형 TV 모니터에 ‘야동’을 틀어놓았을 때 ‘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같은 과 남자 선배들이 지나가던 여학우의 얼굴과 몸매를 노골적으로 품평할 때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 침묵과 방관이 은밀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확산시키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행동하지 못했던 ‘비겁한 나’를 돌아봤다.
춘호와 아내. 빚쟁이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하지만, 살아갈 방도가 마땅찮다. 춘호는 애꿎은 아내에게 돈을 구해오라며 손찌검해 내쫓는다. 아내는 돈 많은 이 주사와 눈이 맞아 팔자 고친 쇠돌 어멈 집으로 향한다. 마침 소낙비가 한줄금 쏟아지고. 이 주사를 따라 쇠돌 어멈 집으로 들어간 아내는 2원에 몸을 맡긴다. 남편이란 권력 앞에 자기학대로 무너지는 아내…. 다음 날 춘호는 아내를 꽃단장시켜 이 주사에게 돈 받아 오라고 보낸다. 향토색 짙은 소설 ‘봄봄’ ‘동백꽃’의 김유정이 1935년 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써 1등 작에 뽑힌 ‘소낙
국민 절반은 제주4·3에 관심도 없어제주4·3평화재단이 발표한 '제주4·3 인지도 및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68.1%가 '4·3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5·18광주민주화운동(99%), 노근리양민학살사건(75.7%)보다 낮은 수치다. 그러나 응답자 중 50.2%가 제주4·3에 '관심 없다'고 했다. 이는 '관심 있다'고 응답한 16.2%보다 3배 더 높았다.제주4·3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가 51.4%로 가장 높았으며 ‘학교 수업’이 12.8%로 뒤를 이었다. 이는 제주4·3
봄이 온 제주는 동백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러 끔찍한 현대사의 현장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복지회관에서 만난 생존자 홍춘호(81·여)씨는 70년 전 11살 때 기억을 어제 일처럼 되살려냈다.평화로웠던 무등이왓, 불바다 된 사연“하늘이 벌겅했어(붉었어). 밤에도 하늘이 벌겅했어(붉었어). 토벌대가 불태우는 집들 때문에 제주 하늘이 전부 벌겅했어(붉었어). 우리 아버지가 마을에 가서 보니까 어린아이가 죽은 엄마 젖을 먹고 있는 거야. 아이 엄마는 숨어 있다가 연기
“죽음으로 삶을 지탱할 수는 없습니다.”영화 <남한산성>에서 이조판서 최명길은 청나라 군대와 끝까지 싸우자는 예조판서 김상헌에게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백성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없으니 목숨을 걸고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전을 지켜보던 임금은 “그만하라”고 분을 터뜨릴 뿐,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조선 인조 14년,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까지 피신했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린 백성들을
2017년에 한샘, 현대카드, 씨티은행, 하나투어 등에서 성추행 파문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꽃뱀’, ‘무고죄’, ‘무혐의’라는 단어를 붙여 가해자 시각에서 보도하거나 성범죄자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일명 ‘꽃뱀 몰이’다.<동아일보>는 ‘한샘 이어 현대카드도 사내 성폭행 논란…“너가 침대에서 잔 게 문제”’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런 보도는 가해자인 남성을 억울한 피해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신고 후 증거불충분 등으로 검찰에 기소되지 않는 것을 말하며, 경찰의 치밀하지 못한 수사와 부
"생태로 생각하지 말고 사진예술로 생각하면 될 텐데…" 2012년 김탑수 작가는 사진전 <새의 눈물>로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였지만 뻔뻔했다. 그는 어린 새를 둥지에서 꺼내 나뭇가지에 앉히고, 둥지를 가린 나뭇가지를 꺾은 뒤 촬영했다. 사진작가는 사진전을 열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했지만, 새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였다. 2016년에는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시화호 인근에서 수리부엉이를 찍다 단속에 걸렸다. 수리부엉이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수리부엉이 새끼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둥지를 감싼 나뭇가지는 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