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가짜'

▲ 고하늘 PD

‘옹 생원이 가짜 허수아비와 싸웠다는, 맹랑한 이야기 맹랑촌에 퍼졌네, 부처님 영험 실린 부적 아니었다면, 진짜 가짜를 그 누가 알아냈으리.’

판소리 열두 마당 중 <옹고집타령>이다. 지금은 창을 잃어버려 기록본만 남은 <옹고집전>은 부자지만 성정이 불량한 옹고집을 혼내기 위해 도술에 능통한 도승이 지푸라기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보내 진짜 옹고집을 벌주는 내용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 짓는 일은 문학이나 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소재로 쓰이며 보고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대역으로 쓰기 위해 찾은 가짜 광해군이 진짜를 대신해 왕이 된다는 내용으로 큰 인기를 얻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광해군 8년에 역모의 소문이 흉흉하자 '닮은 자를 구하라'는 <광해군일기>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하는 가짜는 그리 달갑지 않다.

▲ 가짜로 보이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까운 진짜일 수도 있다. ⓒ 네이버 영화

우리는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짜와 거짓말로 둘러싸인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며 진실이 무엇인지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짜뉴스', '가짜상품' 등 가짜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모든 가짜가 그런 건 아니다. ‘세련된’이라는 뜻을 가진 '클래시(Classy)'와 가짜를 의미하는 '페이크(Fake)'가 합쳐진 신조어 ‘클래시 페이크’는 진짜보다 가치 있는 가짜를 소비하는 현상이다. 비싼 가격에 팔리는 동물가죽과 모피로 만든 제품 대신 인조모피나 인조가죽이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을 사례로 들 수 있다.

'가짜가 병이라'는 속담처럼 한국 사회에서 가짜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피나 가죽처럼 가짜보다 해로운 진짜도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 가짜뉴스로 비난받던 보도가 진실로 판명 나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진짜는 좋고 가짜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옳지 않다. 진짜와 가짜를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인식의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 얼핏 가짜로 보이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까운 진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조현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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