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 ② 빗나간 제주4·3 보도

지난 2월 18일 <효리네민박2>에서 이효리는 제주에 살면서도 제주4·3에 관해 “알아야 될 걸 모르고 살았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제주4·3은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군정의 탄압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민중항쟁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과거사 문제 해결을 꼽았다. 보수 정권 9년간 제주4·3이 ‘폭동’과 ‘폭도’로 폄훼된 것에 견주면 4·3 해결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념 투쟁의 소재로 삼는 4·3 흔들기는 끝나지 않았고 빗나간 보도 행태를 보이는 언론도 있다. <단비뉴스>는 한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4·3으로 찢긴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보고, 언론 보도의 문제점도 짚어보는 기사를 두 차례 싣는다. (편집자)

국민 절반은 제주4·3에 관심도 없어

제주4·3평화재단이 발표한 '제주4·3 인지도 및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68.1%가 '4·3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5·18광주민주화운동(99%), 노근리양민학살사건(75.7%)보다 낮은 수치다. 그러나 응답자 중 50.2%가 제주4·3에 '관심 없다'고 했다. 이는 '관심 있다'고 응답한 16.2%보다 3배 더 높았다.

제주4·3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가 51.4%로 가장 높았으며 ‘학교 수업’이 12.8%로 뒤를 이었다. 이는 제주4·3을 알리는 데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제주4·3을 두고 빗나간 보도 행태를 보인다.

▲ 제주4·3평화공원에는 행방불명인 표지석이 놓여있다. 유가족들은 생사 여부는 물론 행방마저 묘연해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한 고인에게 국화를 놓으며 추념한다. © 고하늘

2017년 3월 31일부터 2018년 3월 31일까지 <조선일보>와 <한겨레> 누리집에서 '제주4·3을'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에서 제주4·3을 직접 다루거나 전문가 인터뷰 또는 4·3 관련 발언을 인용한 보도만 추렸다. <조선>이 15건, <한겨레>가 112건. <한겨레>가 제주 4·3을 다룬 보도는 <조선>의 7배 이상이었다.

<한겨레>가 제주4·3 70주년 기획기사로 '동백에 묻다' 5편을 내고 '4·3수형인 재심' 과정을 1년에 걸쳐 6편을 보도한 것과 달리 <조선>은 15건 중 제19대 대선에서 대선후보들이 4·3을 언급한 내용이 5건으로, 전체 4·3 보도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조선>이 제주4·3 앞에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영철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지금 4·3논의가 진보 논리이기 때문에 보수매체인 <조선>이 쓰면 독자들이 비난할까 우려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 사과도 했고 규명도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이 신문이 더 이상 4·3을 논할 뉴스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다루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진영과 일부 보수언론에서 제주4·3을 이념논쟁으로 키우며 4·3흔들기를 하는 동안 무고한 희생자와 유가족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더뎌졌다.

제주4·3을 폄하하는 보도

<조선>은 2017년 12월 4일 ’抗日운동 개신교 목사들, 대한민국 수립 앞장서다’라는 보도에서 조남수 목사의 책 <4·3 진상>을 인용해 제주4·3을 '반란'이라고 폄하했다. 조 목사는 책에서 4·3사건을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막기 위해 일으킨 반란으로 규정했다.

▲ <조선>은 제주4·3을 '반란'으로 규정한 사료를 기사에 인용했다. © <조선일보> 누리집

제주4·3 폄훼는 계속됐다. <조선>은 12월 19일 '이편저편 벗어나… 소수의 진실 전하려 애썼다'라는 기사에서 '4·3사건의 본질은 남로당이 5·10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일으킨 반란'이며 '처음부터 4·3은 정당한 민중 봉기인데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무력으로 탄압한 것이란 프레임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자료들을 수집했다'는 현길언 前 한양대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조선>은 현길언 씨 말을 빌려 노무현 정부에서 발표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가 진상 규명보다 명예 회복에 무게를 뒀기 때문에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반(反)인권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자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낳게 됐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보도에서 전문가 인터뷰나 사료를 들며 제주4·3을 '반란'으로 폄하하는 내용을 반복해, 공권력이 제주를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어 양민 3만 명을 학살한 4·3의 진실을 왜곡했다.

▲ <조선>은 제주4·3의 본질이 '반란'이라는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 주장을 그대로 기사에 인용했다. © <조선일보> 누리집

제주4·3에 들이대는 색깔론

<조선>은 2017년 11월 3일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인사를 들며 대한민국사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고 했다. <조선>은 주 관장이 "4·3사건처럼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역사가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았다. <조선>은 사설에서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 되면 박물관이 그려내는 대한민국 상(像)이 어떻게 될지 분명하다’며 ‘온갖 사진과 유물·문헌 자료를 동원해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을 깎아내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 <조선>은 사설 '좌편향 교과서로 모자라 '좌편향 박물관' 만들려나'를 통해 이념논쟁을 부추겼다. © <조선일보> 누리집

제주4·3을 제대로 보자는 것이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을 깎아내리는 것일까? 2018년 2월 7일 '새 시안대로라면… 역사 교과서, 좌파 史觀으로 싹 바뀐다'라는 보도는 4·3을 학습 요소로 제시한 교육부의 새로운 한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 기준을 비판했다. 기사 끝에는 '#북한 편향적 교재 #文정부 북한 옹호 #역사 왜곡 교과서 #좌편향 역사 사관'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색깔론을 부추겼다.

▲ <조선>은 기사와 사설, 칼럼을 통해 제주4·3을 이념논쟁의 도구로 삼았다. © <조선일보> 누리집

제주4·3은 '제주만의 역사'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대한민국 역사다. 그러나 <조선>은 제주4·3을 이념논쟁의 도구로 삼아 4·3 흔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조선>은 '[Why] 항쟁만 늘어놓은 게 역사라고?' '대한민국은 38도선 이남에서만 유일 합법정부’ ‘左편향 교과서 필자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에 임명' 등의 기사를 통해 4·3을 재조명하려는 정부 노력을 '역사왜곡' '좌편향' '북한 옹호' 등의 자극적인 단어로 왜곡했다.

제주4·3은 아직 '이름'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세 번째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선정하며 제주4·3 희생자 추가 신고 등의 사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조선>은 이를 두고 2017년 7월 20일 사설에서 ‘과거사 조사는 몇 번을 해야 끝나나’라며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선>의 보도를 보면 현 정부의 편향된 정책이나 행정을 비판하지만 '제주4·3 수형인 명예회복' '제주4·3 배·보상' '정명(正名) 규정' 문제를 다루지 않는 등 역설적으로 편향된 언론보도 행태를 보인다.

▲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2016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고하늘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제69주년 제주4·3추념식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데 69년 전 제주에서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30만 명 중 3만 명이라는 부모·형제가족과 이웃이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며 "제주4·3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편협된 시각으로 해석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에는 4·3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이의 눈물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살아온 이의 목소리도 없다.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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