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취업준비생 눈으로 삼성과 <조선>을 보니

▲ 고하늘 기자

지난달 17일 국가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삼성전자가 신청한 보고서 공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보고서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로 공장 구조와 공정 배치, 화학제품 이름, 화학물질 월 사용량 등을 포함한다. 발표 다음 날인 18일 <조선일보>는 1면에 '반도체공장 정보 공개 보류 한숨 돌린 삼성전자'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을 다뤘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정보 공개를 보류한 산업통상자원부의 판단이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조선>은 같은 날 사회면 ‘보고서 공개는 삼성 노하우 넘겨주라는 것’이라는 기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가 17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작업 환경 측정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삼성전자의 보고서 공개는 삼성전자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썼다. 또 삼성 반도체공장 산업재해 피해자에게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고용노동부 방침을 '무리수'와 '능력 부족'이라 비판했다.

최상준 대구가톨릭대 산업보건학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가핵심기술이라고 말하는 (삼성의) 화학물질·공정자료는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 가능한 삼성의 특허자료를 통해서 더욱 상세하게 알 수 있다"며 "핵심은 작업환경보고서에 포함된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인데 삼성은 (고용부가) 국가핵심기술을 모두 공개하려는 것인 양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알릴 법적 책임이 있다.

▲ 취업준비생 눈으로 <조선>에게 묻는다. '일등 신문'임을 자부하는 <조선>이 '초일류 기업'을 자부하는 삼성을 감싸고 도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인가? ⓒ pixabay

<조선>의 분석처럼 산업부와 권익위가 내린 결론은 삼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들이 내린 판단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로 규정되며 삼성은 보고서 공개를 미룰 명분이 생겼다. 재벌을 싸고도는 <조선>은 삼성 여론몰이에 앞장설 것이 뻔하다. 18일 기사만 봐도 그렇다. 기사에서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과 시민의 알 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고용부에 보고서 정보공개를 청구한 6명 중 5명이 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지만 이들 목소리는 <조선>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선>이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이 지속해서 노조 파괴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보고서까지 공개된다면 더 큰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라도 하는 것인가? <조선>은 누리집에서 '정의 옹호'를 내세우며 사회 정의를 옹호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한다. 또 어떤 정치력, 지배력 또는 경제력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겠다며 '불편부당'을 외친다. <조선>에게 묻는다. <조선>이 말하는 '정의'는 기업을 위한 것인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

삼성전자와 <조선>은 ‘세계 초일류 기업’과 ‘일등 신문’임을 자부한다. 삼성전자는 선망의 직장이지만 반도체공장 입사자는 누구나 산재환자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초일류 기업’이 왜 작업 환경을 떳떳이 공개하지 못하고, ‘일등 신문’은 또 그걸 감싸고 도는 걸까? 취업준비생은 그것이 알고 싶다.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반수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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