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⑯ 고대유물에 새겨진 ‘여성인권 변천사’

춘호와 아내. 빚쟁이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하지만, 살아갈 방도가 마땅찮다. 춘호는 애꿎은 아내에게 돈을 구해오라며 손찌검해 내쫓는다. 아내는 돈 많은 이 주사와 눈이 맞아 팔자 고친 쇠돌 어멈 집으로 향한다. 마침 소낙비가 한줄금 쏟아지고. 이 주사를 따라 쇠돌 어멈 집으로 들어간 아내는 2원에 몸을 맡긴다. 남편이란 권력 앞에 자기학대로 무너지는 아내…. 다음 날 춘호는 아내를 꽃단장시켜 이 주사에게 돈 받아 오라고 보낸다. 향토색 짙은 소설 ‘봄봄’ ‘동백꽃’의 김유정이 1935년 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써 1등 작에 뽑힌 ‘소낙비’의 줄거리다.

춘호는 아내를 매춘 현장에 보내 끝내 자살하게 한 어금니 아빠의 83년 전 복선(伏線)이다. 우리 사회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다. 이성적인 면모로 비치던 유명인들의 페르소나(persona)는 ‘미투’로 폭로된 실체와 너무나 달랐다. 권력(남성, 남편, 가부장 사회통념, 법과 제도)에 짓눌렸던 여성의 자아 회복이란 시대적 명제 앞에 여성 인권의 변천사를 풍속과 함께 들여다본다.

▲ 신석기 농사문명 초기 인류는 여인의 몸을 종교와 연결시켰다. ⓒ 김문환

◇ 울산 신암리, 일본, 중국의 선사시대 여인 조각

국립중앙박물관 선사 전시실로 가보자. 신석기 유물 사이로 어른 손가락 크기의 작은 흙인형이 소중하게 모셔졌다. 울산 신암리에서 출토한 토르소(torso)다. 봉긋한 가슴과 골반 형태는 여인임을 말해준다. 국내에서 출토된 선사 시대 유일한 여인 조각이다. 왜 만들었을까? 의문점을 갖고 일본으로 가보자. 규슈 지방 후쿠오카 박물관, 가고시마 박물관, 관서 지방의 오사카 근교 국립 나라 박물관, 가시하라 고고학 자료관에서 여인 토르소를 만난다.

북경 국가 박물관에는 홍산문화(紅山文化)의 중심지인 건평현 우하량에서 출토한 여인 토르소가 반긴다. 건평 우하량 박물관이나 대만의 고궁 박물원에는 옥으로 만든 BC 4000년∼BC 3000년대 여인 형상이 기다린다. 중국과 대만은 이를 여신(女神)으로 표기한다. 여신 조각이 홍산 문화권과 한반도, 일본에 걸쳐 두루 발굴되는 점이 흥미롭다.

북방 문화, 초원의 길(steppe route)을 타고 이동해 보자.

◇ 터키, 앙카라 박물관의 BC 5750년 여신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발굴 유물을 전시하는 모스크바 역사박물관에 먼저 들른다. 크렘린 궁 바로 앞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역사박물관에서 투박한 면모의 여인 조각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터키 수도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고문명 박물관에서 눈길을 끄는 유물은 단연 여신상이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sufism)의 중심지인 콘야 지방 차탈회윅( atalhoyuk, 회윅(hoyuk)은 ‘고지대’라는 뜻으로 터키 지명에 많이 쓰임)에서 출토한 여신이 근엄하게 앉아 표범 두 마리를 양손으로 쓰다듬는다. 거대한 몸집에 모성의 상징인 유방을 비롯해 넉넉한 뱃살, 풍성한 엉덩이 살집은 건강함, 그 자체다. BC 7500년∼BC 5700년 사이 번영했던 신석기 농사 문명 유적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차탈회윅의 여신은 무슨 의미일까?

▲ 시리아 마리에서 출토된 메소포타미아 마리 왕 에비 2세 조각. 농사문명 초기 지모신 조각이 국가와 계급사회가 등장하면서 왕 조각으로 바뀐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김문환
▲ 이라크의 고대 유적지 우르 묘역에서 출토한 ‘우르 스탠더드’라는 용도불명의 상자 표면에 있는 그림. BC 25세기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축제 연회 장면이 담겨 있다.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김문환

◇ 신석기 농사 문명 시기 풍년과 다산 기원 지모신(地母神), 여인 권위

답을 찾으러 차탈회윅 동쪽 터키 동부 티그리스강 상류에 자리한 차요뉘( ayonu)라는 BC 7000년대 신석기 농사 문명 유적지로 가보자. 2006년 독일 잡지 슈피겔은 “쾰른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차요뉘 근처 카라카(karaca) 산지에 현재 지구촌 주요 곡물 68가지의 공통 조상 식물이 야생으로 자란다는 걸 발견했다”고 보도한다. 터키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가 인류 신석기 농사 문명의 요람이란 얘기다.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둬들이던 농사 문명 초기 인류. 아이 낳는 여인의 몸을 풍년과 다산의 신성한 힘, 종교적 힘으로 연결했다. 대지의 여신, 즉 지모신(地母神) 조각의 탄생이다. 여성은 권위의 상징이었고, 모계사회가 그 결과로 나타난다. 농경과 지모신 풍습은 초원의 길을 타고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퍼져 나갔다.

◇ 국가와 권력 탄생 뒤 여인 대신 왕(제사장) 조각 등장

무대를 파리 루브르로 옮겨 보자. 1층 리슐리외관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을 휘어잡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남성 1명이 탐방객을 불러들인다.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강 중류 시리아 마리에서 출토한 조각이다. 턱수염에 당시 남자들의 통치마 카우나케스(kaunakes)를 입었다. 흰 석고로 만들어 깨끗한 이미지에 당대 금보다 비쌌던 보석, 아프가니스탄 청금석(lapis lazuli) 눈동자가 푸른 빛을 발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BC 25세기 마리의 통치자였던 에비 2세로 밝혀졌다. 두 손을 공손하게 가슴에 얹고 신에 대한 경배의 마음을 전하는 포즈다.

그렇다. 어느 순간 지모신 조각이 사라진 자리에 강력한 남성 권력자 조각이 나타난다. 금속을 사용해 생산력을 향상시킨 집단이 국가를 만들어 지배계급을 형성하며 잉여물을 활용해 다른 집단을 다스리던 사회, 국가와 계급의 출현이다. 여기서 평등의 농사 문명기에 필요하던 풍년과 다산의 상징 지모신은 설 땅을 잃는다. 압도적인 생산과 전쟁 도구를 가진 권력집단의 우두머리와 그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신관(제사장)의 세상이 열렸다.

◇ BC 24세기 수메르 일처다부제 금지, BC 18세기 간통 여인 사형

런던 대영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전시실로 가보자. 이라크 중부 유프라테스 강가의 고대 유적지 우르에서 출토한 BC 25세기 유물 우르 스탠더드(ur standard)에 맥주 마시는 남자와 하프 연주자의 축제 장면이 나온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창시자 수메르인은 양(羊)의 신이자 풍요의 상징인 두무지드(dumuzid, 아카드 시대 탐무즈(tammuz))를 모셨다. 풍년 기원 두무지드 축제의 핵심은 두무지드와 아내 이나나(Inanna·사랑의 여신, 아카드 시대 이슈타르(Ishutar))의 결합이다. 아내 이나나와 결합하지 못하면 풍년은 없다. 여신 이나나의 힘이 더 세다는 의미다. 메소포타미아에 아직 여권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일설에는 축제 기간 여인들이 남편 이외의 남성과 정사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란다면 남성 중심 사고일 터이다.

하지만, 수메르의 여성 우위는 라가시 왕국의 우르카기나(urkagina) 왕을 정점으로 사그라진다. 라가시 우르카기나 왕이 BC 2351년∼BC 2342년 사이 개혁정책을 펴는데, 새뮤얼 크래머(S. Cramer)는 1964년 놀랄 만한 점토판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 polyandry)가 이때 폐지됐다는 거다. 우리 역사로 보면 단군 할아버지 무렵까지 남자를 여럿 데리고 산 메소포타미아 여인들의 권위와 인권은 600여 년이 흘러 BC 18세기에 더 나빠진다. 수메르인을 물리치고 등장한 아카드인의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왕이 간통 여인을 사형에 처하는 법전을 만든다. 물론 남성 처벌 조항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 인권의 쇠퇴다.

◇ 그리스 로마, 중세 거치며 가부장 중심 사회, 여성의 남성 종속 심화

BC 8세기 이후 그리스와 로마 시대로 가면 남자 가장을 정점으로 한 가부장 사회가 완전히 뿌리내린다. 여성은 정치와 사회활동에서 배제되고 남성에게 딸린 부속품으로 종속된다. 여성에게 결혼은 남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성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요구되는 덕목은 오로지 순결뿐이었다. 대신 남자들은 여성을 상품화해 성(性)을 사고파는 섹스 문화를 만개시키는 이중적 권력을 만끽한다. 중세 기독교, 이슬람, 동양의 유교문화 모두 여성 인권의 회복보다는 남성 위주 가부장 문화를 심화시키는 데 한몫 거든다.

◇ 구한말 서양인의 눈, “한국 여성 인권 유독 열악”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하나인 경희궁 터에 만든 서울시립박물관. 구한말 외국인이 본 한국사회 특별전시가 4월까지 열린다. 전시물 가운데, 미국 펜실베이니아 메드빌에 본사를 둔 여행지 키스톤 뷰(keystone view company)가 전하는 1904년 기사가 폐부를 찌른다. “개항 이후 조선을 방문한 서양 선교사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여성의 절대적인 종속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귀족 계층은 탐욕스럽게 횡포를 부리고, 농노 계층은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고 압제를 받았으나, 한국 여인과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엄격한 무슬림은 여성을 완전히 고립된 채로 살게 했으나 생활은 편하게 해줬다. 인디언은 여성을 끝없는 노동 속에 뒀으나 자유를 줬다. 한국의 경우 양쪽의 나쁜 점만 찾아볼 수 있으며 양쪽 체제 내에 마련된 불편에 대한 보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불과 110년 전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의 실상이다.

◇ 보부아르 이후 페미니즘 운동 탄력… 여남(女男)평등 시대로

프랑스 파리 센강으로 가보자. 바토 무슈(Bateau-mouche, 센강 유람선)를 타고 오르내리며 바라보는 풍경은 세계에서 연중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명불허전 파리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센강의 파리시 구간에 놓인 다리는 퐁뇌프(Pont neuf)를 비롯해 모두 37개. 이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 이름을 딴 다리가 눈길을 끈다. 2006년 완공한 길이 304m, 폭 12m의 시몬 드 보부아르 인도교(Passerelle Simone-de-Beauvoir). 프랑스 국립 도서관 신관으로 이어지는 인도교 이름의 주인공 보부아르는 누구인가?

파리 고등사범학교 동기인 사르트르와 1929년 계약결혼(2년 뒤 재결정)이라는 파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여인 보부아르. 1949년 ‘제2의 성’(le deuxieme sex)이란 대작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란 주장을 편다. 여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개성이 아닌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남성 중심 가치관에 묶여 남성에게 종속된 제2의 성으로 살아간다는 거다. 이에 여성이 개성을 찾아 독립된 성으로 살 것을 촉구했던 현대 페미니즘(Feminism)운동의 개척자다. 보부아르의 외침이 나온 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역사학자 E. H. 카(E. H. Carr)의 “변화는 분명한데, 진보인지 불확실하다”(change is certain, progress is not)는 통찰처럼 여성 인권 향상이란 변화가 온 것 같았지만, 정작 남성 권력 대 여성 종속이라는 본질적 구조는 바뀌지 않았음이 오늘 우리 사회 ‘미투’에서 드러나는 자화상이다. 여성도 독립된 성이며 남성 권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여남 평등을 이루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고하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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