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조원진’과 ‘곽상도’

▲ 고하늘 PD

"나는 어리석고 한심하지만 큐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내가 녀석의 마음속 빈 부분을 채워줄 거야." 영화 <괴물의 아이>에서 쿠마테츠가 한 말이다. 영화는 외톨이 소년 큐타와 제멋대로인 괴물 쿠마테츠의 성장을 다룬다. 쿠마테츠는 괴물이 사는 세계 '쥬텐가이'의 수장이 되려고 인간세계에서 만난 큐타를 제자로 삼지만 다른 괴물들은 이를 반대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어둠을 품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큐타 말고도 인간이 또 있었다. 이오젠의 아들 이치로히코다. 쿠마테츠와 수장 자리를 겨루는 이오젠이 인간세계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데려와 몰래 키운 것이다.

이치로히코는 자신이 인간인 줄 모르고 자란다. 그는 힘센 아버지를 동경하지만 그와 다른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이오젠이 사실을 감추고 자기 아들이라 강조할수록 이치로히코는 자기 존재를 더 의심하게 된다. 의심이 커지며 마음속 어둠이 깊어진 그는 어둠에 잠식되고 만다. 그 사실을 안 큐타는 이치로히코를 어둠에서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같은 인간이지만 큐타가 어둠에 잠식되지 않은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곁에 있어준 이들 덕분이다. 그들과 함께한 기억은 큐타의 마음속 빈 부분을 채워 그를 어둠으로부터 지켜준다.

한국은 지금 분노 사회다. 막연한 적개심을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하는 '묻지마 범죄'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증오하는 '혐오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조원진 의원은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의 분노를 결집해 대통령에게 “미친 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보좌관은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두고도 잔치국수를 먹는 사진을 올렸다. 곽상도 의원은 민정수석 시절 채동욱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사찰한 의혹을 받는 등 어둠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고인에게 ‘이중성을 드러내도 무방한 그곳에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저주했다. 분노가 억눌린 자의 함성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막말로 표출된 것이다.

▲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의 보좌관이 소셜 미디어에 잔치국수 먹는 사진과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 YTN

사람들은 어둠에 잠식된 이치로히코처럼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쥬텐가이에 사는 괴물들보다 더 괴물 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5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인 52%가 분노조절이 제대로 안 되는 상태라고 한다. <한국일보>는 신년 기획기사에서 ‘조그만 것들에 분개하는, 참을성 없고 충동적인 사회가 2018년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분노할까? 가장 큰 원인은 불평등한 사회환경이다. 한국은 더 나은 삶의 욕구를 성취하기 어려운 사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분노 심리에는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강요하는 무한경쟁과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배신감은 사람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느끼는 열등감과 소외, '나만 억울하다는' 피해의식은 배출되지 못하고 쌓여만 간다. 쌓여 있던 감정은 폭발하여 분노로 표출되고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분노를 풀어줄 완충기가 필요하다.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이 쌓여야 분노를 긍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삶은 가정과 학교, 사회생활을 하며 학습되고 형성된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조직과 사회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개인이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좌절을 경험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지를 얻는 것은 분노를 해소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영화 <괴물의 아이>에서 쿠마테츠가 큐타의 마음속 빈 부분을 채워 준 것처럼.

▲ 영화 <괴물의 아이>에서 쿠마테츠는 칼의 정령이 되어 큐타의 마음속을 채우고 어둠으로부터 지켜준다. ⓒ 네이버 영화

이런 분노조절장치와 별도로 잘 작동해야 하는 장치가 하나 더 있다. 억눌린 자의 분노를 엉뚱한 데로 유도해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정치인을 응징하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국회윤리위원회는 뭣하나?


편집: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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