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은 ‘생태계 사슬’ 주인이라 생각 안 해 7세대 후손까지 생각해 행동하는 ‘7세대 원칙’코로나 시대 ‘지구 건강’을 위한 원주민 철학여행자는 토지 강탈에 따른 혜택 인정해야 -온천에 관한 추억이 있나요?"네, 몇 가지 있죠. 하지만 대부분 자연 온천이 파괴되고 상업화했습니다.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죠. 하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어느 봄이었는데 차로 여행하다가 네바다주 칼슨 시티에서 아름다운 온천을 발견했습니다. 물도 따뜻하고 풍경도 아름다웠죠. 시간이 충분하다면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거라,밀 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몽상가, 나는 내 발에 그 차가움을 느끼게 하네.바람은 나의 헐벗은 머리를 씻겨 주겠지.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그러나 무한한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여인과 함께하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아르튀르 랭보의 시 ‘감각’이다. 검고 푸른 밤의 시각, 발 아래, 머리 위의 촉감, 공허 속의 충만함, 타자를 향한 그리움과 홀로서기. 산행을 하며 고작 허벅지 통증을 살피기 급급한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오감
“머럴 스탑! 머럴 스탑!”아따, 뭐를 멈추라는 거야! 미국 서남부 샌버나디노 국유림이 숨겨 놓은 딥크릭 온천(Deep Creek Hot Springs)으로 가기 위해 사유지인 보웬 랜치(Bowen Ranch)에 차를 세웠다. 안내소로 보이는 낡은 오두막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쓴 백인 아저씨가 소리 치며 고개를 내밀었다. ‘아하…. 모터 스탑! 차 시동을 끄라고….’ 나의 영어 뇌세포는 가끔 이렇게 버퍼링이 길다. 차량 시동을 끄고 10달러 주차요금(1인당 5달러)을 낸 뒤 손으로 그려진 지도를 받았다. 까칠한 문지기는 <엘에이 매거
충북 청주시 수동 수암골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마을이다. 지금은 70, 80대 노인들이 주로 사는데, 다 합쳐야 60여 가구 남짓이다. 지난 2007년부터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면서 관광객이 찾아오고, 인기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카인과 아벨> 등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그 덕에 마을에 고층 커피숍도 들어섰지만, 여전히 독거노인이 숨진 뒤 수십 일 지나 발견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관광객 중에는 함께 온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하면 이런 데서 사는 거야”라고 훈계하는 이도 있
아담한 키에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가 미닫이문을 젖히고 살그머니 소극장 밖으로 나온다. 무대에서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모스부호(Morse code)처럼 끊어졌다 이어진다. 남자는 잡초가 듬성듬성한 흙바닥을 빙빙 돌다 낡은 벤치에 앉더니 말간 하늘을 바라본다. 아내인 박연숙(41) 자계예술촌 대표가 성폭력 피해여성을 소재로 한 1인극을 공연하는 동안, 밖에 나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박창호(53) 예술감독의 모습이다.지난해 10월 17일과 31일 두 차례 찾아간 충북 영동군 용화면 자계마을의 자계예술촌은 눈 감고도 계절이 느껴
2년 전 가을 끝자락이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사람이 살까 싶은 마을에 도착했다. 해가 떨어져 어둑한 마당에서 낮은 목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불빛과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숲속작은도서관’의 김병록(52) 사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사정이 있어 인터뷰가 어렵다고 말했고, 기자는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건네 준 막걸리만 들이켠 뒤 다락방에서 밤을 보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살림집에 민박도 겸하는 동화 같은 공간 탈핵, 평화, 공동체 회복 등 ‘개념 있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던 그 도서관은
외국인 강사가 공짜로 그림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선배를 따라 간 곳이 ‘653예술상회’였다. 일 년이 365일이니 숫자를 달리 배치해 특별한 의미를 표현한 이름일까. 예술상회 대표 이종현(47) 작가의 답은 간단했다. “번지수입니다.” 충북 청주시 사직동 653번지, 옛 화교학교 자리에서 공공미술작업을 하고 있는 이 작가를 지난달 22일 인터뷰했다. 댐 건설로 고향 잃은 소년, 미술가 되어 돌아오다 까슬까슬한 삭발의 이종현 작가는 충북 단양군에서 태어났지만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초등학
부서지고 허물어진 집들, 콘크리트 벽에 휘갈겨진 ‘철거’라는 시뻘건 글자, 용달차로 이삿짐을 옮기는 노부부. 지난 7일 찾아간 충북 청주시 오송읍 봉산리에는 소복이 내린 눈도 채 가리지 못한 재개발의 흔적들이 스산하게 펼쳐져 있었다. 보통 11월부터 3월 사이엔 흙이 얼어 옹기 가마를 가동하지 않는데, 휴지기에 들어간 봉산리 가마에서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2호인 박재환(83) 옹기장을 만났다. 최근 건강식품으로 효소가 각광을 받으면서 효소 담그는 데 쓰이는 옹기의 인기도 치솟고 있지만 박옹의 옹기점은 철거 위기에 놓여 내일을 알 수
아이들이 불행한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을 꿈꾸는 곳이 있다. 지난 8월 22일 찾아간 충북 충주시 신니면의 이오덕 학교. 비인가 대안학교인 이곳의 이정우(68) 교장은 경쟁위주의 기존 교육을 성토하면서 둥글게 만 신문지를 탁자에 내리쳤다. “대한민국이 교육에 관심이라도 있나요? 하루에도 아이들이 몇 명 씩 죽는 줄 아세요? 또 우리학교가 대안학교라고요? 아니죠,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싱그러운 산새 소리가 잠을 깨웠다. 옷에는 모깃불 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전날 밤 타닥타닥 희나리 타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였다. 지난 5월 11일 충북 괴산군 문백면 신기리의 탑골만화방을 찾아가 주인장 양철모(37) 사진작가와 만화방 단골손님들이 밤새 놀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함께 했다.탑골만화방은 신기리의 탑골마을 어귀에 있다. 물안개가 아름다운 문광저수지 옆, 열 네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이 마을을 감싸는 송주산 아래 사찰이 있었는데 그 안의 탑이 아름다워 사람들을
그는 장기하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의 가사처럼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24)은 중학교만 마치고 ‘가방끈’을 놓았지만 “기타도 잘 치지, 주위에 좋은 어른들 많지, 스펙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생활비에 대해서는 “이 책 쓴 인세로 술 마시고 저 책 쓴 인세로 쌀 사면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 사내실 마을에 10년째 살며 어린이 역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이은홍(54)작가. 그런데 한때 그는 치열하고도 ‘불온한’ 청년이었다.화염병보다 강했던 만화 '깡순이'이 작가는 80,
해방 후 한반도의 정정이 점점 불안해지던 1948년, 가는 눈매의 키 작은 소녀가 서울 흑석동 산꼭대기의 ‘남관 미술연구소’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무작정 전차를 타고 시내를 헤매다 도착한 것이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남관(1913~1990) 선생은 그녀를 보며 그저 허허 웃었다. 그날로 선생의 문하생이 된 소녀는 ‘남자들과 내외하느라’ 하루 종일 석고상만 보며 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선을 그렸다.당시 풍문여고 2학년이었던 소녀의 검고 풍성하던 머릿결은 이제 듬성한 은발로
연예인이 그렇듯이 유명인의 자살은 한동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그리고 1주기 때 다시 '반짝 조명'을 받다가 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 인간에게 망각이 없다면 슬픔이 누적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한 이가 우리 사회의 모순이나 청산해야 할 것들에 맞서 싸우다가 좌절 끝에 몸을 던진 사람이라면, 망각은 슬픔의 치유가 아니라 책임회피다. 그런 자책감과 함께 떠오르는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유시민은 그를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이'를 품은 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연민의 끈을 너무 쉽게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혼자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예전엔 아침부터 술 마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심정을 너무 잘 안다. 낮밤이 바뀐 일터에서 먼지와 악취를 견디고 아침을 맞은 사람이 편안한 잠을 청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소주병의 삼분의 이쯤을 비운 뒤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도 묻고 신세 한탄도 했다. 가끔은 어머니가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마지막 삼분의 일은 나를 위한 ‘격려주(酒)’였다. 오늘도 잘 참았다, 조금만 버티자, 잘 해낼 수 있다. 지
3만원 스테이크, 5천원 커피 메뉴에 울컥 "아유, 스테이크 하나에 3만 원이야. 나 같은 사람은 못 와."손 씨는 청소하다가 메뉴 판을 보고 기겁한다. 그 식당에서는 보통 수준인 스테이크가 3만 원을 넘는다. "여기 오냐? 먹어봤어?" 최 과장이 내게 물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을 청소 할 때다."미쳤어. 커피가 오천 원이 넘고. 세상이......." 나의 일당은 3만5천오백 원이다. 쉬는 날은 빠지니 한 달 수입이 채 100만 원이 안 된다. 일인당 3만 원짜리 스테이크, 5천 원짜리 커피는 가당찮은 사치다. 만일 내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나 만남에 대한 설렘 따위는 없다. 산뜻한 유니폼의 직원들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금빛 명찰을 단 매니저가 직원을 타박한다. “아저씨 지나가시잖아, 길 좀 비켜줘라.” 파란색 물통을 들고 주방에 들어선 나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청소복을 입은 ‘아저씨’일 뿐이다. 우리는 청소 유목민이다. 수원, 안양 등 수도권과 청주, 천안, 춘천까지 전국 어디든 부르면 달려간다. 전문화와 외주화가 우리를 낳았다. 꽤 규모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우리가 달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