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 밝은 달, 그곳에 산다] ⑤ 제천의 역사만화가 이은홍

그는 장기하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의 가사처럼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24)은 중학교만 마치고 ‘가방끈’을 놓았지만 “기타도 잘 치지, 주위에 좋은 어른들 많지, 스펙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생활비에 대해서는 “이 책 쓴 인세로 술 마시고 저 책 쓴 인세로 쌀 사면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 사내실 마을에 10년째 살며 어린이 역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이은홍(54)작가. 그런데 한때 그는 치열하고도 ‘불온한’ 청년이었다.

화염병보다 강했던 만화 '깡순이'

이 작가는 80, 90년대 노동계에서 ‘운동권 공식지정 만화가’로 통했다. 1984년 홍익대학교 한국화과를 졸업한 그는 인천 부평의 한 금속공장에서 일하다 6개월 만에 철판을 발에 떨어뜨려 발가락 골절상을 입은 뒤 서울노동연합(서노련)에 들어가 펜을 잡았다.

“만화는 저렴하면서 쉽게 복제가 가능하잖아요. 만화를 ‘짱돌’과 화염병보다 강한 선전도구로 생각했죠. 아름답게 그리는 것보다 선전물의 내용을 더 중시하며 그렸어요. 예술가보다는 활동가로서의 삶을 산 셈이죠.”

▲ 서울노동연합 기관지에서 만화를 그릴 때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렸다. 중간에 앉은 남자가 이은홍씨다. 직장인 행세를 하기 위해 정장을 입었다. 하지만 급히 빌린 옷이라 위아래 색이 다르고 나팔바지를 입었다. ⓒ 유순상

그는 1986년 5월 서노련의 기관지인 노동자신문에 그렸던 4컷 만화 ‘깡순이’와 노동자 임금인상 투쟁 지침을 그린 교육용 학습만화 ‘사장과 진실’이 이적표현물로 분류되면서 만화가로는 처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6개월 실형을 살았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을 준수하라고 주장한 것이 ‘이적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당시 서노련 지도위원이었던 현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도 이때 함께 붙잡혔다.

당시 깡순이의 모델은 젊은 여성노동자였다. 1972년 동일방직과 1975년 와이에이치(YH)무역 사건 등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후라 깡순이에 대한 노동계의 반응이 뜨거웠다.

“(실형을 살고 나오니) 사법기관에서 인정한 공식 운동권 만화가가 된 거죠. 오히려 일거리가 더 많아졌죠. 대공장 노조, 소공장 노조할 것 없이 만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았죠.”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은 보도지침을 내리는 등 언론을 노골적으로 통제했고 의식 있는 일간지 만화가들은 검열관의 감시 속에서 칸과 칸 사이에 진실을 담으려 애썼다. 이 작가 같은 민중만화가들은 지하에 모여 운동권모임들을 위한 학습만화를 그렸다. 원고가 ‘범죄의 증거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출판하고 나면 바로 원고를 버렸고 실명 대신 ‘깡순이’ ‘뚝심이’ 등 캐릭터 이름으로 작가명을 대신했다. 급할 때는 터미널에서 그림을 그려 팩스로 보내고는 원고를 바로 구겨서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작가에게는 원본 만화원고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89년 결혼한 뒤 부인 신혜원(51·삽화가)씨가 모아둔 스크랩북 두 권 분량의 원고가 전부다.

▲ 이은홍씨는 98년 노동절날 경찰이 시위자를 끌고가는 것을 그렸다.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노동탄압은 여전했다. ⓒ 유순상

지배자의 역사는 그만, 주인공은 민중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투쟁 이후 큰 공장 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90년대 들어서는 투쟁성이 강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결성됐다. 하지만 이 작가는 ‘전두환부터 김대중까지 대통령 얼굴만 바뀌었지 노동자들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고 느꼈다. 또 만화 한 장만 그려도 잡혀가던 시절은 그만큼 작업의 의미도 컸는데 대공장 노조 얼마 소공장 노조 얼마 원고료를 따지게 되니 ‘운동도 예술도 아니다’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5년 사계절 출판사에서 신문 형식의 만화책 <역사신문>에 만화를 그려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비주류 매체인 만화는 시장에서 그저 소비만 될 뿐이었고 광장에서의 시민운동은 다소 느슨해졌죠. 고민이 컸어요. 그렇지만 대개 광장과 시장은 붙어있지 않나요? 차라리 사람이 많은 시장으로 가자고 결심했죠.”

그는 역사만화를 그리면서 지배자가 아닌 민중의 시선으로 한국사를 재배치했다. 2002년 본격적으로 글과 그림을 도맡은 사계절 출판사의 <역사야, 나오너라!>는 어린이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역사란 민주주의로 다가가는 길’이라는 관점을 풀어냈다. 왕과 장군들의 인물 열전이 아닌, 권력투쟁에 스러져갔지만 조금씩 각성하는 민중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12세기 초 무신정권에 반대하며 신분해방운동을 벌인 노비 만적을 보며 고려의 희망을 그리고 몽골 항쟁에서 끝까지 고려를 지켜내고자 했던 1232년 충주성 전투를 보며 백성의 저력을 역설하는 식이었다. 조선 숙종 때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도적 장길산과 동학농민운동을 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은 세종대왕만큼이나 그의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 책은 10만 부 인쇄를 앞두고 있다.

“아이들 상대로 역사 강연을 할 때 먼저 아는 역사 인물을 말하라고 해요. 그러면 대부분 왕이나 장군, 관료들을 말하거든요. 또 대부분이 남자예요. 그걸 알려주면 아이들도 놀라죠. 거기서부터 역사 강의를 시작하죠.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나누면 사는 것은 왜 중요한지요.”

▲ 이은홍 작가가 쓴 어린이 역사 만화책이다. 줄거리를 쓴 <이두호의 한국사 수업>은 10권 중 8권이 출간됐다. 오른쪽 <역사야 나오너라!>는 십만 부 인쇄를 앞두고 있다. ⓒ 유순상

이 작가는 <역사신문>을 시작으로 <세계사신문> 등 10여 권의 역사책에 삽화와 만평을 그렸다.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글도 쓰며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 ‘예덕 선생전’을 각색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똥퍼>로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주는 부천만화상의 어린이만화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머털도사’를 그린 이두호 화백과 손을 맞춰 선사시대부터 87년 민주화운동까지 역사를 그린 <이두호의 한국사 수업>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8권이 출간됐고 곧 10권 완간을 앞두고 있다. 아내인 신혜원 작가와도 아이들이 주변에서 겪는 일, 곁에 있는 동물 등을 주제로 한 <글자 없는 그림책>을 함께 그렸다.

“아이들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애를 키우면서 하게 됐어요. 우리 아이에게 읽힐 책을 직접 만드는 거였죠. 우리 아이가 대여섯 살 때는 <글자 없는 그림책>을, 조금 자라서는 동화책에 삽화를, 6학년이 돼서는 역사만화를 그렸죠.”

▲ 왼쪽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남성이 만화가 이은홍씨다. 별채에 마련된 작업 공간에서 인터뷰를 했다. ⓒ 유순상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 등 이 작가네 세 가족은 지난 2004년 제천으로 이사했다. 서울서 나고 자란 아내는 신혼 초부터 질박한 농촌살이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었고 아들도 농촌체험캠프를 몇 번 다녀오더니 “똥 푸는 일을 해도 좋으니 시골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 작가 자신도 더 이상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귀촌을 선택했다.

“인천에서 5년, 일산에서 10년, 아파트에서만 15년을 살았어요. 이웃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커가는 모습을 다 보거든요. 눈 오면 아파트 주차장에서 눈싸움하고 놀던 아이들이 점점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창백해지더니 인사도 안 하더라고요. 우리 아이에게라도 제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가는 지은 지 60년 넘는 낡은 농가를 고쳐 살림집으로 쓰고 있다. 집 앞에는 계단식 텃밭이 소담스럽게 자리했고, 텃밭 앞 작업실에는 높다란 책장이 병풍처럼 펼쳐진 안쪽으로 빛바랜 사회과학 도서와 직접 쓴 30여 종의 어린이 역사만화책이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다.

인터뷰를 한 지난달 16일에는 마침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홍대거리에서 음악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아들이 친구와 함께 내려와 있었다. 안채 외벽을 페인트칠하기 위해 불렀다고 한다. 이 작가는 “오늘 집 대청소 날인데 인터뷰하러 와서 나만 노역에서 빠졌다”며 “인터뷰 끝나고 아들 데리고 술이나 한잔 하면 되겠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노동가치 인정받는 환경 만들고 싶어

▲ 이은홍 작가의 책상이다. 책상 위에는 출고를 앞둔 그림과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다만 알록달록한 색연필만 반듯이 꽂혀있다. ⓒ 유순상

이 작가는 종종 ‘다시 도시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무엇보다 돈독한 마을 인심 때문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마을 이웃들이 농사법도 친절히 알려주고 때 되면 브로콜리나 치커리 양배추 등 농작물을 나눠주기 때문에 “시골은 굶어 죽을 수도 없는 곳”이라고 그는 말한다.

대신 그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프로젝터와 디브이디(DVD)를 빌려와 종종 집에서 ‘작은 영화제’를 열고 최신 인기영화를 함께 보기도 한다. 몇 해 전까지는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간디학교에서 만화그리기를 가르쳤다. 한자리에서 소주 10병을 비울 정도로 주당이어서 2001년 자신의 음주편력기를 쓴 <술꾼>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종종 마을 주민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정을 나눈다.

이 작가는 요즘 양반의 허례허식을 비판한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이은홍 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시리즈를 마치면 당분간 어린이 만화작업을 중단하고 노동해방에 관한 만화를 그릴 작정이다. 처음 펜을 잡을 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국민 다수가 노동자라는 각성을 확산시키려 한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구호를 외쳐요. 이건 틀렸어요. ‘노동자는 인간이다’라는 말이 맞죠. 모든 인간은 노동자여야 하는데 잘못된 거죠.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국가 공무원도, 관리자도, 교사도 노동자라는 인식을 심어야죠. 제값 받고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 십 수 년 전 혼자 결심했던 목표입니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생태공동체를 꾸리거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맑은 바람 밝은 달,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북도에는 유독 사연 많고 소신 있는 예술인과 공동체운동가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 <단비뉴스>는 이렇게 충북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문화인과 활동가들을 찾아 나섰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인 CJB청주방송 황상호 기자가 글을 쓰고 서양화가 유순상 씨가 사진기와 붓을 들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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