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20.10.24 토
> 뉴스 > 기획 > 어서오너라 벗고놀자
     
아이언맨과 슈퍼맨은 왜 거길 갔을까
[어서오너라 벗고놀자] 황상호-우세린 부부 여행기 ㉑
2020년 10월 13일 (화) 21:21:08 우세린 황상호 homerunsery@gmail.com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 4월에 찾아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는 아직 눈이 잔뜩 쌓여 있다. © 황상호

퍼억, 펵, 픽.

잠깐! 내 말이 아내의 달팽이관에 도착하기 전에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와이퍼를 켰다. 내뿜은 워셔액과 샛노란 나비 사체가 반죽돼 차량 전면 유리가 프라이팬 위 녹은 버터처럼 희뿌옇게 코팅됐다. 휴지로 닦아도 접착제처럼 끈적하다. 2019년 4월, 북미에서 월동한 뒤 남부 캘리포니아로 귀향하던 나비떼를 그만 로드킬하고 만 것이다.

시간, 장소를 프로파일링한 결과, 희생충은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 모나크 나비)와 작은멋쟁이나비(Painted Lady Butterfly)로 추정됐다. 지난겨울 비가 많이 내려 야생화가 폭발적으로 꽃피는 ‘수퍼블룸’(Super Bloom) 현상이 나타나면서, 나비 개체 수도 반짝 증가한 것이다.

제왕나비는 이름처럼 생태계에서 귀한 존재다. 나비는 짙은 오렌지색 베이스에 검은 스트라이프로 연약해 보일 수 있는 날개에 강인함을 연출하고, 날개 끝 작은 반점으로 고혹적인 외양에 마침표를 찍었다. 무게 1g도 되지 않는 나비는 멕시코와 북미 대륙 사이 4000km를 왕복 비행한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가뭄 등으로 서식지와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 환경단체 월드와일드라이프펀드(WWF)는 제왕나비의 멕시코 월동 숲 면적이 1996~97년 45만 에이커에서 2013~14년 1.66만 에이커로 줄었다고 2016년 발표했다. 

북미 대륙 종단 비행을 하는 나비는 4대에 걸쳐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이 때문에 이민자 커뮤니티에서는 이 나비를 이민자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하곤 한다. 나는 어느 봄날, 고귀한 가문의 대를 무시로 끊어 버렸다.

   
▲ 로스앤젤레스 힙스터들이 모이는 멜로즈 거리의 벽화에는 제왕나비가 여신을 향해 비행하고 있다. © 황상호

슈퍼히어로가 찾은 무비로드

이번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인요카운티에 있는 키우 온천(Keough Hot Springs)이다. 네바다시에라 산맥 동쪽에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겨울 스포츠 중심지인 맘모스레이크와 세계적인 암벽 등반 명소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기 전 중간지점이다. 여기서 190번 도로를 타고 우회전하면 최악의 더위를 맛볼 수 있는 사막 데스밸리가 나온다.

가까이에는 미국 최고봉인 해발 4421m 휘트니산이 있다. 그 입구에는 할리우드 영화 수백 편이 촬영된 앨라바마힐스(Alabama Hills)가 자리하고 있다. 1920년대 서부극을 시작으로 1948년 <슈퍼맨>, 2000년대 <글래디에이터> <고질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등의 야외무대가 됐다. 대표적인 장면이 2008년 작 <아이언맨>에 나온다. 토니 스타크가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알라바마힐스 기암괴석을 등지고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개발한 탄도 미사일을 군인 앞에서 시연한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서부영화박물관(Museum of Western Film History, museumofwesternfilmhistory.org)을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할리우드 역사와 미 서부 개척사를 영화로 조망할 수 있다.

   
▲ 앨러바마힐스에 있는 무비로드(Movie RD). 이 일대에서 영화들이 촬영됐다. © 황상호
   
▲ 아이언맨 도입부의 제리코 미사일 신(Jericho Missile Test Scene).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앨러바마힐스의 기암괴석이 보인다. © 황상호

미사일 연구소, 한반도를 타격하다

온천으로 이어지는 395번 하이웨이를 타기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 270km 지점에 외딴 도시 차이나레이크(China Lake)가 나온다. 꿔바로우와 고량주가 가득한 차이나타운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시에는 낮은 연립 주택이 듬성듬성 서있다. 도로에는 오가는 차가 별로 없고 주요 길목마다 군사시설을 알리는 경고판과 안내판이 있다. 저 부대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슈퍼히어로를 포박해 놓고 생체실험을 하는 건 아닐까?

중국 이민자들이 마른 호수에서 붕사를 채취하면서 이름 지어진 차이나레이크는 현재 미국 해군공대지무기연구소(Naval Air Weapons Station, NAWS)가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미 해군은 유럽 전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정확도 높은 전투기 미사일이 필요했다. 연구하기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다 모하비 사막 서쪽으로 인구밀도가 낮고 시야가 트여 있는 이곳이 낙점된 것이다. 전투기 실전 연습을 하기도 딱이었다. 

해군은 1943년 이곳에 활주로가 있던 공군에서 땅을 인수한 뒤 현재까지 무기 설계, 연구, 실험, 군사비 연구 등을 하고 있다. 미 해군 임대 단일지역 최대 규모로 건물 2000여 동, 포장도로 529km, 비포장도로 2898km가 있다. 통제하고 있는 영공도 51,000㎢로 캘리포니아 전체 영공의 12%다.

   
▲ 미국 해군공대지무기연구소의 구글 항공 사진. © 황상호

이곳은 ‘로켓타운'으로 불린다. 수많은 전장을 초토화한 공대지 로켓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1.2m를 통과하는 고속항공기로켓(The Velocity Aircraft Reocket, HVAR)과 사정거리 밖 선박을 타격할 수 있는 타이니팀(Tiny Tim) 로켓이 한국전쟁에 투입됐다. 나는 한국 나이 만 37살이 돼서야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상이용사라는 것을 알았다. 살아생전 본 적 없는 외조부 머리 위에도 떨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는 세계 최초 핵무기 개발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도 일부 진행됐다. 그 자금으로 기지 내 아르미티지 필드 등 최대 3000m짜리 활주로 3개가 건설됐다. 그렇다면,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시인 단테의 9층 지옥 중 몇 층에 머물고 있을까?

도시에는 대부분 군인과 민간 연구원, 관련 시설 종사자들이 거주한다.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구원과 직원들은 며칠씩 햇빛도 보지 않은 채 실험실에 박혀 연구에만 몰두한다. 일반인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유머로 그들의 세계를 살아간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의 삶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를 ‘차이나레이크 웨이’(China Lake Way)라 부른다. 

개괄적인 역사를 이해하려면 차이나레이크 뮤지엄 재단(China Lake Museum Foundation)에 가면 된다. 현역 군인이 시설을 관리한다. 연구소가 개발한 로켓 종류와 성과가 간결하게 소개돼 있다. 로켓으로 산화한 무명의 비명은 차마 이곳에 전시하지 못했으리라.

   
▲ 차이나레이크 뮤지엄 재단에는 연구소에서 개발한 로켓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 황상호

1만 년 전 타임슬립 여행

이곳에 왔다면 놓치지 말아야 볼거리가 원주민 암각화다. 도시를 지나다 보면 암각화 형상물이 이정표처럼 세워져 있다. 서울시의 해치 같은 지역 상징물이다.

수만 년 이 땅에 살던 원주민 코소(Coso) 부족은 암벽화 그리기에 능숙했다. 뿔 달린 산양인 빅혼쉽, 난해한 문양, 의인화, 인간, 동물, 무기와 도구 등을 벽이나 동굴 암벽에다 기록했다. 공교롭게 이곳이 군사시설이 되면서 훼손도 많이 되지 않았다. 현재 국가역사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돼 있으며, 코소 암벽 예술 지구(Coso Rock Art District)로 관리된다. 암벽화 10만 점 정도가 있으며 서반구 최대 암벽화 지대로 불린다. <LA타임스>는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 15선에 꼽기도 했다.

암벽화 투어는 마투랑고 뮤지엄(Maturango Museum)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간과 날짜가 유동적이니 홈페이지(maturango.org)에서 먼저 확인하자. 매년 11월에는 암벽화를 주제로 한 ‘리지크레스트 암벽화 페스티벌’(Ridgecrest Petroglyph Festival)이 열린다. 2014년 처음 열린 이 축제에는 전국 각지 원주민이 모여 전통 춤과 악기 연주를 하는 파우와우(Pow Wow)를 한다. 하늘과 땅에 제사도 지내는데 자연과 사물을 존중하는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 원주민이 그린 빅혼쉽 암벽화. 이 일대 벽화 보존 상태는 꽤 양호하다. © 황상호

민간인,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다

차이나레이크에서 395번 하이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150km쯤 가면 광활한 땅에 낯선 이정표가 있다. 이름은 만자나르(Manzanar). 스페인어로 사과 농장이란 뜻이다. 주변 어딜 봐도 녹지는 없다. 꿀사과 하면 얼음골 밀양인데.

만자나르는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재미 일본인을 가둔 포로수용소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미군은 재미 일본인을 사실상 정치적, 군사적 적군이나 간첩으로 간주한다. 미 서부사령관 존 드윗은 “미국에 태어난 일본인도 일본 특유의 인종적 인성 때문에 미국화하지 않았다”며 “미국 내 일본인은 적이 될 수 있으니 사막으로 강제 이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듬해 2월 19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군 지휘관이 특정지역을 군사지역으로 규정하고 특정주민을 사실상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재미 일본인 수 만 명이 포로 신세가 된 것이다.

   
▲ 시에라네바다 산맥 아래 설치돼 있는 만자나르의 소방서. © 황상호
   
▲ 나무로 만든 울타리 안에 농구장이 설치돼 있다. © 황상호

미국 거주 일본인은 전국 10개 수용소로 분산배치됐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드는 데 공헌한 캘리포니아주 전 하원의원 마이클 혼다는 어릴 적 콜로라도주 강제수용소에서 지냈다. 스타트렉에서 파일럿 술루 역할을 한 할리우드 영화배우 조지 타케이(George Takei)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 아칸소주 포로수용소로 이주됐다. 그의 경험은 만화책 ‘그들은 우리를 적이라 불렀다’(They Called Us Enemy)에서 생생히 묘사돼 있다.

전국 수용소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이 만자나르다. 1942년 3월 포로가 들어오기 시작해 4월 중순부터는 매일 1000명 이상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90%가 로스앤젤레스 주민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농업 기술을 바탕으로 농산물 시장에서 큰 돈을 벌어 타인종의 시샘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 500여 명을 포함해 최대 11만 명이 격리됐다. 3분의 2는 영어와 미국 문화가 더 익숙한 이민 2세였다.

여름 낮 기온은 38도 정도로 뜨거웠다. 강우량도 연간 12.7cm로 너무 부족해 농사도 힘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와 발에 뽀얀 먼지가 앉았다. 겨울에는 기온이 4도까지 떨어졌다. 포로수용소는 병영시설처럼 운영됐다. 요리도 할 수 없으며 공동 식당에서 줄을 길게 서 배식을 받았다. 스스로 소방대를 만들고 미용실과 수선실, 도서관을 운영했고 신문도 제작했다. 수용소가 문 닫기 전, 결혼식도 200건 가까이 열렸다.

세대 갈등도 있었다. 비교적 미국에 우호적인 일본인 2세와 조국에 충성심이 있던 1세가 부딪친 것이다. 영어에 능숙한 2세는 관리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일자리 배정에 있어서 우선권을 얻었다. 급기야 관리자가 배식용 설탕과 고기를 빼돌려 암시장에 판다는 소문까지 돌아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러다 1세들이 2세 리더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1세 관련자들이 검거되고, 나머지 1세들은 그들을 풀어 달라며 시위했다. 결국 계엄령이 발동되고 관리자들이 총까지 발사해 수용인들이 숨지기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이 시설은 폐쇄된다. 올 때는 군용 차량에 실려 강제로 옮겨졌지만, 해산할 때는 차비를 받아 돌아갈 곳을 알아서 정해 가야 했다. 일부 수용인은 과거 살던 곳의 경제적 토대가 무너져 이곳에 남기도 했다. 3년 동안 만자나르에서는 135~145명 정도가 숨졌다.

   
▲ 만자나르 역사 유적지 방문자 센터에 걸려 있는 수용인 초상화. © 황상호
   
▲ 11만 명에 이른 수용인의 이름을 배경으로 전쟁과 관련한 메시지가 전시돼 있다. © 황상호

생존자와 후손의 노력으로 1992년 이곳은 역사유적지가 됐다. 당시 사용하던 막사와 소방서, 식당 등이 과거 모습 그대로 재현돼 있다. 특히 만자나르 역사유적지 방문자센터에는 당시 수용된 일본인의 생생한 증언과 사진, 물품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또 예술가들의 설치 미술과 그림을 통해 과거 상황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시각도 균형적이다. 단순히 미국과 일본 간 적대적 상황만 감정적으로 부각하고 있지 않다. 논쟁적일 수 있는데, 일부 2세 수용인들은 미국인 관리자들이 친절했다며 당시 기억을 추억하고 있다는 증언도 기록돼 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정기 순례를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일본계 모녀가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산호세에 산다는 1세 엄마는 딸에게 역사를 기억시키고 싶어하는 듯했다. 

“개인 칸막이 없이 대여섯 개 변기가 함께 있는 공용 화장실을 보고 딸이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저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꼭 후손들이 이것을 보고 역사적 사실, 과오를 기억해야죠.”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시민자유법(Civil Liberties Act)을 제정해 죄 없이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일본인에게 사과했다. 내국인 기준으로 1인당 2만 달러씩을 배상했다. 바쇼의 하이쿠가 떠오른다.

‘가는 봄이여, 새는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

   
▲ 재현해 놓은 만자나르 공용 화장실에는 칸막이가 없다. © 황상호

진짜 온천욕은 배수로에서 

만자나르에서 65km 북쪽으로 이동하면 목적지 키우온천(Keough Hot Springs, www.keoughshotsprings.com)이 나온다. 온천은 눈 녹지 않은 시에라네바다 산맥 아래 너른 허브 초목 사이에서 솟는다.  

일대는 원주민 파이우트(Paiutes) 부족이 거주했던 곳이다. 그들은 이 물로 농사를 짓고 병이 나면 치료를 했다. 물에는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있는데, 원주민은 이것을 일컬어 우투투파야(u'tu'utu paya) 온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00년대에는 물의 치료 가치가 높아 지역민들이 물병에 온천수를 넣어 판매하기도 했다.

1800년대 후반 유럽 정착민이 오웬스 밸리 일대로 이주하면서 이 일대에 유럽식 건강 리조트가 들어섰다. 1919년에는 개척가이자 인근 지역에 시장을 소유한 필립 키우(Phillip Keough)가 지역 상류층을 위한 리조트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키우온천이라 불린다.  

   
▲ 수풀 안으로 뜨거운 온천수가 흐른다. 두 남성이 목욕을 하며 캔맥주를 마시고 있다. © 황상호

이곳은 온천 개발지로 적합했다. 온천수가 분당 2000리터씩 솟아오르고 미네랄 성분으로 치료 효과가 높았다. 온천 특유의 달걀 썩는 냄새도 없었다. 1920~30년대 가장 인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온천욕뿐 아니라 캐빈에 머물며 캠핑을 하고 낚시를 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피해 놀러 왔다. 키우온천은 유료다. 대형 온천 수영장에는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기 위해 많이 찾는다. 식당과 캠핑장, 기념품가게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사실 우리가 찾는 곳은 유료 온천이 아닌, 키우온천 배수로(Keough Hot Ditch)다. 상업 시설이 아닌 자연 그대로인 온천이다. 키우온천에 들어가기 전 오른쪽 샛길로 빠지면 곧 나온다. 좌표는 37.256725, -118.372672.

일대 온천수 중 유료 온천으로 가는 것은 6%뿐이다. 나머지는 이 온천 배수로를 따라 흐른다. 공짜로 대자연의 품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온천은 계단 형태로 굽이굽이 흐른다. 물이 고여 있지 않아 수질도 깨끗하다. 장소마다 온도가 조금씩 달라 본인에게 적합한 탕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목욕탕 열탕처럼 아주 뜨거운 탕은 없다.  누드가 허용돼 있으니 유념하자.

   
▲ 아내 우세린이 온천 배수로에서 휴식을 하고 있다. © 황상호
   
▲ 배수로를 따라 온천수가 흐른다. 누드족이 있다는 것을 꼭 알고 가야 한다. © 황상호

파이우트 부족은 온천을 신성시했다. 오웬스밸리히스토리닷컴(owensvalleyhistory.com)에 기록된 파이우트족 원로 헬렌 매기(Helen MaGee)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원주민은 온천수가 신성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 때문에 물에 들어가기 전 기도를 한다. 또 물에 들어가기 전 당신의 고통이 무엇인지(어디를 치료하고 싶은지) 온천에 이야기한다. 이곳을 떠날 때는 이 땅(Mother Earth)를 위해 동전 같은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야 한다.”


** 황상호는 <청주방송>(CJB)과 <미주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뒤 LA 민족학교에서 한인 이민자를 돕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우세린은 <경기방송> 기자로 일한 뒤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편집 : 이성현 PD

 
     관련기사
· 금, 유전, 온천… 파면 나오는 화수분
· 어떤 판에 사느냐가 당신 운명 결정한다
· ‘생태 창세기’ 태초에 짐승이 있었다
· 갈매기의 꿈, 이주노동자의 꿈
· 아이언맨과 슈퍼맨은 왜 거길 갔을까
우세린 황상호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충북 아 00192|등록일 : 2017-11-27|발행인: 이봉수|편집인: 심석태|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심석태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석태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