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1부> 근로 빈곤의 현장
<상> 출장 청소부 21일의 체험

대한민국에서 가진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은 불안하다. 비참하다. 뼈 빠지게 일해도 벌이는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 그 일자리에서마저 언제 ‘정리’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세다. 저축할 형편이 못 되니 번듯한 내 집은 꿈도 꾸기 어렵고, 재개발 전세값 상승 여파에 셋방살이도 좌불안석이다.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 돼 출산을 포기하거나, 보육 부담에 다른 꿈들을 접어야 한다. 큰 병이라도 나면 집안이 풍비박산, 거리로 나앉기 십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손 댄 사채 빚 때문에 인생까지 저당 잡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단비뉴스>는 정부와 기성 언론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수백만 명 가난한 한국인의 삶에 바싹 다가가기로 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생생히, 끈질기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한숨에 사회가 공명하게 하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할 것이다. 첫 주는 근로 빈곤의 현장을 학생기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쓴 취재 기록으로 시작한다. <편집자>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나 만남에 대한 설렘 따위는 없다. 산뜻한 유니폼의 직원들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금빛 명찰을 단 매니저가 직원을 타박한다. “아저씨 지나가시잖아, 길 좀 비켜줘라.” 파란색 물통을 들고 주방에 들어선 나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청소복을 입은 ‘아저씨’일 뿐이다. 

우리는 청소 유목민이다. 수원, 안양 등 수도권과 청주, 천안, 춘천까지 전국 어디든 부르면 달려간다. 전문화와 외주화가 우리를 낳았다. 꽤 규모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우리가 달려가는 ‘초원’이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는 시간, 밤 11시. 현장 책임자 최 과장이 매장에 올라가 완전히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차 트렁크에서 장비를 내린다. 주방으로 올라가는 화물칸 승강기에 장비를 싣는다. 한 손엔 대걸레를 움켜쥐고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비상계단을 오른다. 밤 11시 13분, 청소 시작이다!

청소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다만 규칙은 있다. 작업 동선을 지켜야 한다. 홀 청소는 의자를 테이블 위로 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테이블 안쪽 의자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린다. 다음 바깥 쪽 의자를 그 위에 뒤집어엎는다. "안 쪽 것부터 올리라고요!" 이 과장이 스무 살이나 많은 오 반장에게 짜증을 낸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 반장은 실수가 많다. 이 과장은 이 일을 한 지 6년째다. 그 전에는 외국 담배 납품 일을 했는데 잘 안 풀렸다고 한다.

70cm가 넘는 긴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허리를 숙이지 않고 ‘슥’ 쓸어야 몸이 덜 힘들다. 따뜻한 물에 세제를 푼다. 축구공 3개 만한 솔이 달려 있는 청소기 '스윙 머신'에 희석한 세제를 넣고 돌린다. 바닥이 많이 더러우면 대걸레에 세제를 묻힌 뒤 바닥에 초벌칠을 한다. 거품 위를 지나가며 골고루 묻혀야 한다. 휘청휘청, 미끌미끌,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왜 김연아의 금메달이 위대한지 이해할 수 있다.

식탁 다리에 이물질이 끼지 않도록 식탁을 밀지 않고 들어 옮긴다. 불빛이 밝지 않은 레스토랑 안이지만 바닥에 조그마한 이물질이라도 있으면 껌 칼로 떼어낸다. 일만큼은 확실하다. 어설프게 했다간 밥줄이 떨어진다. 다음날 청소한 가게에서 작업평가서를 보낸다. 주방 A, 홀 A+, 배수구 B........ 낮은 평가가 쌓이면 재계약을 못한다. 

가게의 평균 면적은 661m²이다. 이런 가게를 4명이 한 달에 25일 정도 청소한다. 한 달 동안 청소하는 면적을 합하면 월드컵 경기장의 2배가 넘는다.
 

 ▲ 기름끼가 잔뜩 낀 후드의 철망은 독한 세제를 뿌린 뒤 고압의 물로 벗겨내야 한다. ⓒ 황상호

독한 주방 세제 코와 입으로.......피부 벗겨지기도 
 
"컥컥......."

주방 세제는 독하다. 찌든 기름때를 벗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무장갑 없이 세제를 만졌다간 피부가 벗겨지기 십상이다. 천장의 후드를 닦기 위해 머리 위로 세제를 뿌린다. 마스크가 없어 세제가 코와 입으로 들어간다.

후드를 닦는 일은 젊은 일꾼들 몫이다. 조리대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하니 유연성이 필요하다. 베테랑들도 종종 바닥으로 떨어지곤 한다. 어떤 후드는 식지 않은 튀김 기름 조리대 위에 있어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어설프게 덮인 철판을 밟았다간 기름에 빠져 중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먼저 후드에서 철망을 분리한다. 떼어낸 망에 알칼리성 세제를 묻히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고압 분사기로 물을 쏘면 새것처럼 은빛 찬란해진다.

 ▲ 음식찌꺼기가 가득한 배수로를 청소하다보면 구정물이 입에 튈 때가 많다. ⓒ김상윤 기자
청소한 티는 벽타일에서 가장 확실히 난다. 광낸 구두처럼 반짝거려야 한다. 매미처럼 벽에 달라붙어 빛이 날 때까지 젖은 걸레와 마른걸레를 번갈아가며 닦는다. 이걸 '벽을 잡는다'고 표현한다.

주방 청소의 마침표는 배수로 세척이다. 배수로 뚜껑을 연다. 막힌 혈관처럼 콜레스테롤 같은 음식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안으로 손을 넣는다. 수세미로 닦아내는 것이지만 우선은 손으로 퍼 올려야 한다. 새우, 소시지, 조갯살, 파프리카, 양배추 같은 것들이 나온다. 악취는 ‘직속 타구’다. 맡는 순간 구역질이 난다. 격한 수세미질에 구정물이 입술에 튄다.
 
쉬는 시간은 한번, 새벽 2시다. 이십 분 정도 쉰다. 그렇다고 '새참'같은 건 없다. 가끔 ‘센스’ 있는 가게 직원이 퇴근 전에 과자나 음료수를 챙겨주고 가기도 한다. 5일에 한 번 꼴로 관리직 김 부장이 현장에 와 캔 커피를 산다. 사장의 친동생인 김 부장은 낮에 근무하는데, 가끔 현장을 돌아보며 잘 하고 있는 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따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운동권 출신 아냐?” “스파이 아냐?”하고 묻곤 했다.


새벽 5시 귀경길 시속 140킬로, 무사하기만 빈다

귀경길도 속도전이다. 계기판 속도가 올라가야 퇴근이 빨라지니 140킬로미터를 넘나든다. 앞 차선에 빈틈만 보이면 끼어든다. 운전수는 이 과장이거나 최 과장이다. 그 둘도 밤새 일했다. 워낙 숙련된 일꾼이어서 둘이 전체 일의 60% 이상을 해치운다.

최 과장은 현장 총책임자다. 15년 전 택배를 하며 부업으로 청소를 시작했는데, 8년 전 전업으로 바꿨다. 핸들을 잡은 그가 졸리는지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오전 4시 57분,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클라이맥스의 심벌즈 소리까지 아득하게 들린다.

아찔한 순간이 많다. 지난해에도 대형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대전에서 올라오던 길,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다가 1차선에서 가드레일을 받고 역방향으로 정지돼 있던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차는 폐차됐다. 이 과장은 한 달간 병원신세를 졌고, 운전을 했던 최 부장도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보상 문제 등이 얽혀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루 동안 이동한 최장거리는 왕복으로 398.6Km였다. 한 달 평균 이동한 거리는 왕복으로 2310Km.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하는 거리다. 밤샘 작업, 졸린 운전자, 장거리 운전, 과속 질주.......그저 무사하기만 빌 뿐이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은 3평 남짓이다. 3인용 소파, 정수기, 원탁 테이블 하나, 옷걸이 몇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 비켜서지 않으면 서로 못 지나갈 정도로 좁다. 샤워시설은 없다. 한 평 남짓 화장실만 하나 있다. 곧장 옷을 갈아입고 퇴근한다. 특별히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한 시라도 빨리 퇴근하고픈 마음뿐이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퇴근한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청소 아주머니들. 어떤 도구, 어떤 자세로 일하는지 관찰한다. 저 자세로 계속하면 필시 허리가 휠 것이다. 걱정스럽게 보지만 눈 마주칠 일은 없다. 그들 대부분 바닥만 보면서 일한다. 아침의 활기나 웃음기라곤 찾아 볼 수 없다.

 ▲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기 위해 빨리 달리다보면 교통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  ⓒ김상윤 기자


산재와 구조조정의 희생자 오씨, 8천원으로 한달 버텨야

"오 반장님, 일은 몸에 좀 붙었어요?"

책상에 앉아 김 부장이 묻는다. "으 헤헤헤, 그게 뭐......." 오 반장은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않는다.

오씨는 58년 개띠다. 28살에 고향에서 무일푼으로 상경했다. 공사장 막일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경마장에서 보일러 배관공 일을 8년 했다. 그 경력으로 이곳저곳 배관공사를 하러 다녔다. 그러다 6년 전 추락 사고를 당했다. 11미터 높이에서 배관작업을 하다 동료 2명과 함께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쳤다. 동작이 느리다고 매번 핀잔 듣는 건 그때 다친 허리 때문이다.

퇴원 후 아는 사람 소개로 한 대형마트에서 지게차 일을 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했지. 그때는 월 270만 원은 벌었어." 그때도 마트 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지게차 사업권을 사서 들어갔다. 지난해 그 회사가 1500명의 인원을 감축하면서 그도 일자리를 잃었다.

오 반장에겐 세 살 난 아들이 있다. 뒤늦게 필리핀 출신 아내 사이에 얻은 아이다. 아내는 필리핀 사람들끼리 알음알음해서 일자리를 얻었다. 어린이 집 영어강사로 두 곳에서 60만원을 받는다. "집사람이 벌지 않으면 무조건 적자야." 그가 가진 재산은 보증금 5500만 원짜리 전세집이 전부다.

육아비가 걱정이다. "아침에 집에 가자마자 기저귀를 사러갔어. 한 달 기저귀 값이 5만원이야." 애가 태어나고 처음 석 달은 한 달에 10만원 씩 정부에서 육아보조금을 받았다. 지금은 없다.

"돈 있으면, 만 원만 빌려주라."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찾더니 결국 나에게 돈을 꾼다. 오 반장은 다음날 20여일치 봉급을 받았다. 70만 원 남짓이다. 한 달로 따지면 100만원 조금 넘는다. "공과금 20여만 원 내고, 보험료, 생활비 등 주고 나니까 주머니에 만 원 들어오더라고, 담배 하나 사니까 8000원 남던데." 그는 다음 월급날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밤새워 일한다고 집에서 걱정 안 하세요?"
"마누라? 우리 마누라는 돈만 세지! 자식 놈들도 코빼기도 안 비춰"

손(59)씨는 자영업을 하다 접고 청소 일을 한다. “마누라가 들어오지 말래." 서(53)씨도 개인 사업에 실패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 손씨는 자녀 둘을 출가시키고 아내와 살고 있고, 고씨는 아내와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다.

서씨, 손씨가 받는 돈도 한 달에 100만원 남짓이다. 열심히 일해서 직원으로 채용된다고 해도 130만~140만 원이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2년 마다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을 말한다. 오 반장도 마찬가지다. 부양가족이 있는 50대의 세 사람에게 이 정도 수입은 ‘입에 풀칠하기도 부족할 정도’다. 노후준비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노후? 생각해 놓은 거 없어. 애와 엄마 보험금도 10만 원 정도씩 내니 나까지 하면 힘들지. 계속 일하다보면 어떻게 안 되겠어?"

오 반장은 큰 병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손씨나 서씨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국민연금도 없고, 보험도 언감생심이다. 

 


출장 청소부 21일의 체험 (하)
모자 푹 눌러쓰고 “쪽 팔려”, 스물 중 열아홉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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