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 밝은 달, 그곳에 산다] ⑩ 653예술상회 이종현 작가

외국인 강사가 공짜로 그림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선배를 따라 간 곳이 ‘653예술상회’였다. 일 년이 365일이니 숫자를 달리 배치해 특별한 의미를 표현한 이름일까. 예술상회 대표 이종현(47) 작가의 답은 간단했다. “번지수입니다.” 충북 청주시 사직동 653번지, 옛 화교학교 자리에서 공공미술작업을 하고 있는 이 작가를 지난달 22일 인터뷰했다.

▲ 충북 청주시 사직동 653예술상회 현판 앞에 서 있는 이종현 대표. ⓒ 황상호

댐 건설로 고향 잃은 소년, 미술가 되어 돌아오다 

까슬까슬한 삭발의 이종현 작가는 충북 단양군에서 태어났지만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초등학교 때 청주시로 이주했다. 그림이 좋아 서울 홍익대학교 섬유미술과에 진학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엔 학교 근처 작업실에서 줄곧 개인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적 작업 중 하나가 양서류 공예였다. 가느다란 쇠를 이어 붙여 두 뺨 크기의 도마뱀 모양을 만든 뒤, 도마뱀이 돌을 쥐고 던지는 모습이나 포박당해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 등을 만들어 전시했다. 이 작가는 “태초의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자유로운 물고기의 모습이었지만 자궁을 뛰쳐나오면서 번민이 싹텄다”고 말한다. 물과 육지의 경계에 사는 양서류의 불완전한 모습이 고향 잃은 자신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이 작가는 십여 년 전 작품 팸플릿에 양서류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근원도 없이 아득한 암흑의 물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호흡하다가 몹시도 더디게 헤엄치고 나와 밝은 곳 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다. 지느러미가 있던 자리에는 사지(四肢)가 돋고 정신없이 기어 다니고 뛰어다니다 그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아늑한 침묵 속으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는 이 작가와 같은 ‘양서류’가 살만 한 곳이 아니었다. 벽화 작업과 대학 강의로 번 푼돈으로는 작업실 운영비와 작품 재료비를 건지기조차 힘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까지 닥쳐 더욱 버티기가 어렵게 됐다. 이 작가는 서울 장충동의 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뒤 1999년 말 어머니가 사는 청주로 돌아왔다.

미술관 밖, 더 너른 무대에서 펼친 공공미술 

이런 곡절을 거쳐 새롭게 손 댄 작업이 ‘공공미술’이었다. 대규모 건축물을 세울 때 건축비의 일정 부분을 미술작품 설치에 투자하도록 한 이른바 ‘1%법’이 권장에서 의무사항으로 바뀌면서 미술계에 돈이 흐르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미술가들에게 일감이 생겼다. 90년대 말부터는 문화예술진흥기금과 스포츠베팅게임으로 조성된 ‘토토기금’이 문화사업에 쓰이면서 공공미술이 더 활기를 찾았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비엔날레’, ‘아트센터’, ‘문화제’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공공미술 사업에 뛰어들었다.

▲ 지역 미술작가들이 모여 수 년 전부터 653예술상회 앞 골목길을 벽화로 채우고 있다. 꾸준히 그림을 채워나갈 계획이다. ⓒ 653예술상회

“2000년 즈음 한국 예술계의 괄목할 사건은 공공미술의 등장이었죠. 그때는 구체적인 개념이 없어 ‘바깥 예술’이라고 말했어요. 미술관 안이 아니라 미술관 바깥에서 작품 활동하겠다는 거죠. 제도권 미술에 대한 저항이었어요. 특히 어렵던 예술계에 정부 예산도 풀렸죠. 정부쪽에서는 생색내기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어찌됐건 문화 예술이 전파되는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이종현 작가는 청주지역 예술가 예닐곱 명을 모아 팀을 꾸렸다. 이름은 ‘공사삼일’. 당시 충북의 지역 전화번호인 0431에서 따왔다. 회화 작품과 공예품을 1.5톤(t) 트럭에 싣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도심지 등을 다니며 게릴라 전시를 했다. 2001년에는 쇠락하고 있는 가구공장에서 미술전을 열었다. 진열된 가구 안에 그림을 걸어 놓기도 하고, 판매 대기 중인 화장대와 식탁 등에 작가들의 소품을 설치했다. 미술관이 아닌 일상적 공간에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열정페이’에 기댄 작업은 오래가기 어려웠다. 잠깐 지역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작가들이 별다른 수입원 없이 자비로 활동하다보니 사업을 지속할 동력이 금방 바닥났다. 5년여 함께 활동하던 작가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남은 이 작가는 이민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독신이라 딸린 가족도 없으니 결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짐을 싸서 친구가 있던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하지만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겨 몇 달 못 있다 귀국해야 했다. 주변 시선이 부끄러워 일 년 가까이 폐인 생활을 했다. 낮에는 잠, 밤에는 술.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계속 한계에 부딪치니까 못 버티겠더라고요...남들 보기도 부끄럽고 해서 거의 일 년 가까이를 햇빛 한 번 안 보고 살았죠.”

그러다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보리밥집에서 두 달 동안 일을 해 모은 3백만 원을 쥐고, 외국인 친구가 사준 자전거를 타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동해 바다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2007년 5월부터 63일 동안 전국 4,500킬로미터(km)를 여행했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순진했던 이웃이 1998년 사북리에 생긴 강원랜드 카지노에 빠져 폐인이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충남 태안군 만리포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 곳에서 바닷바람 짠 내음을 견디고 한번 살아보라고 권했다. 전라도 지리산 언저리 어느 마을 사람은 자연의 가혹함을 버티며 산에서 한 번 살아보라고 말했다. 구원을 찾아 떠났다가 귀향해 다시 전투를 벌이는 영화 <매드맥스> 속 전사들처럼, 이 작가는 다시 청주로 돌아왔다.

쇠락한 옛 도심을 아이들과 함께 되살리다  

2007년, 긴 여행을 마치고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일어섰다. 충북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입주 작가로 들어가 국제교류사업을 도우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월급으로 60만 원을 받았다. 첫 무대는 청주시 내덕동 안덕벌이라는 마을이었다. 그 곳은 80년대만 해도 ‘돈이 도는 동네’였지만 2004년 연초제조창이 폐쇄되면서 주민들이 떠나는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 작가는 아이들과 ‘어린이 별똥대’를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을 만나 지역의 역사에 대해 듣고 지역 문화유산을 찾아 기록했다. 그것들을 벽화나 콜라주 작품 등으로 표현해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쓰고 버린 나무로 벤치를 만들어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내덕 칠거리에서 청주대 예술대학과 벽화마을인 수암골 등을 잇는 2.5km의 ‘걷고 싶은 길’도 만들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뛰노는 길이었지만 점차 잊혀져가던 옛길을 복원한 것이다. 이런 작업들 덕에 올해 초에는 청주시로부터 ‘마을 순례길’을 만들기 위한 용역을 의뢰받기도 했다. 청주시는 ‘사랑이 뭐길래’, ‘엄마가 뿔났다’ 등으로 유명한 청주 출신 드라마작가 김수현(72·여)씨와 협약을 맺고 드라마아트홀을 만들면서 인근에 마을 순례길을 조성하기로 했다.

▲ 마을 어린이들과 '어린이 별똥대'라는 이름으로 미술 작업을 해왔다. 이 작가는 아이들이 도심재생 사업의 '마지막 주제'라고 말한다. ⓒ 653예술상회

“쇠퇴하고 있는 옛 도심 재생의 마지막 주제가 사실 아이들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신흥 아파트 단지나 더 큰 도시로 다 떠나고 없으니까요.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면 그 에너지가 노인들에게 전달돼요. 실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어르신들이 차가 빨리 다니지나 않는지 아이를 돌봐주시기도 하고 간식도 내어주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죠. 마을 프로젝트에 어린이 사업은 필수입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미술 사업에 참여한 작가들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마을을 떠나버리는 등 애로도 있었다. 가령 다문화가족에 관한 6개월짜리 미술 사업이 있으면, 작가들이 6개월만 일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가는 지난 2011년, 작가들이 머무르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이 지금의 653예술상회다.

“왜 예술상회냐고요? 이름이 슈퍼마켓 같기도 하잖아요. 다름이 아니라 예술가도 먹고 살 궁리를 하겠다는 뜻이에요. 예술가의 자본인 아이디어를 유통해 단체나 사람의 지원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거죠.”

653예술상회는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고 공동체 예술을 확대하기 위해 ‘653갤러리’란 이름으로 상설 전시관을 만들었다. 신인 예술가나 외국 교류 작가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작품을 걸 수 있다. 독일 브레멘에서 활동하는 김은정 판화작가 등 현재까지 이곳을 거쳐 간 내외국 작가들이 20명쯤 된다. 입주작가 제도를 마련해, 원하는 예술가가 있으면 예술상회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은 ‘침묵의 서책들’이란 주제로 미디어아트 김기성(36) 작가가 사진전을 열었다. 책 표지가 아닌 뒷부분이 드러나도록 책꽂이에 거꾸로 꽃아 두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했다. 색 바랜 책의 안쪽 면을 통해 책 본연의 의미를 찾아보자는 취지다. 김 작가는 “마치 종이가 본래 나무로 돌아가려는 듯 나무 빛으로 바래진 책들을 통해 헌책방 주인의 취향과 진솔한 삶의 모습을 돌아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 지난 4월 한달 653예술상회 안의 작은 갤러리에서 미디어 아트 김기성(36) 작가의 사진전이 열렸다. 제목은 '침묵의 서책들'이다. ⓒ 653예술상회

이 작가는 또 수 년 째 주민자서전을 써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인터뷰 대상은 공인중개사와 철물점 사장, 동네 이발사 등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소소한 개인사를 듣고 기록하며 공동체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던 70년대에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던 주민들의 우스갯소리, 한 살 아래인 19살 남편과 결혼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생이별을 한 뒤 시동생의 아들을 입양해 키운 두부집 할머니 이야기가 자서전에 담겼다. 또 주당(酒黨) 이발사가 첫 손님과 해장술을 마시고 이발을 하다 손님 귀를 벤 뒤, 죄책감에 일주일 간 이발소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도 담겼다.

“처음에는 참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며 다른 사람을 추천해주고 했죠. 그러다 한 분의 사연이 지역 주간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이제는 주민들이 열성적으로 돕고 있어요. 그들 속에는 남들을 감동시킬 만 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전 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골목 지도도 만들고 소식지를 만들어 지역에 나눠주죠. 여기 있는 한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이에요.”

653예술상회는 국제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교류 중기기획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돼, 한국작가 3명이 독일 뒤셀도르프에 가서 예술상회 홍보를 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태국과 홍콩, 독일 등 외국 작가들과 협업해서 각국에서 회화작품과 설치작품을 릴레이로 전시하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 홍등가를 예술도시로 변모시킨 비영리단체 코가네쵸 에리어 매니지먼트의 대표 야마노 신고(Yamano Shingo)와 항구도시 요코하마의 오래된 건축물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며 요코하마를 디자인 도시로 만들고 있는 뱅크아트1929팀이 다녀가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한국교통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매튜 앤더슨(48)씨가 이곳에서 내외국인에게 영어로 그림을 가르치기도 한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은 가끔 모여 바비큐 파티도 하고 셔츠 염색도 하며 논다.

▲ 충북 소재 한국교통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매튜 앤더슨(Mattew Anderson)이 진행하는 미술반의 뒤풀이 모습이다. 초대 받은 외국인들이 더 모여 작은 공간이 북적인다. ⓒ 653예술상회

노총각 리더가 이끄는 ‘예술이 숨 쉬는 마을’

이 작가는 일 년 전 청주시 사직2동 11반의 통장이 됐다. 주민들의 민원을 동에 알리고 동이 추진하는 현안 사항을 주민에게 알리는 다리역할을 맡은 것이다. 한 달에 받는 활동비는 24만원. ‘예술가가 통장을 하면 어떻겠냐’는 동장의 추천을 받아 엉겁결에 마을 대표가 됐지만, 맡은 김에 남다른 의욕을 발휘하고 있다.

“사직동이 이제 제 작품의 도화지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느낀 점들을 작품에 가져가려고 구상합니다. 마을 문패만 만들어도 예술가의 손길이 거치면 작품이 되는 거죠. 또 통장이 되니까 예술상회 일에 주민들이 많이 도와줘요. 가령 예전에는 예술상회 축제를 하면 혼자서 다 했는데 이제 주민들이 마을 축제라고 생각하며 도와주죠.”

이 작가는 조만간 옛 도심 속 노는 땅을 빌려 ‘도시 논’을 만들 계획이다. 큰 천막을 깔고 그 위에 논흙을 부어다 우렁이도 키우고 오리도 기를 작정이다. 그 옆에는 카페를 만들어 커피와 차도 팔고 여건이 되면 작가들의 작업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도심 재생 사업을 하다 보니 결론은 ‘경제’더라고요. 문화도 일종의 기반시설이라고 본다면 예술 사업에도 일단 사람이 모여야 하거든요. 도시 논을 만들어 심신이 지친 가족들이 주말에 찾아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거예요. 농촌이 아닌 가까운 도심에서요.”

653예술상회가 있는 마을은 폭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2층 상가들이 올망졸망 줄지어 있다. 복잡하게 꼬인 전봇대 전선 아래,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인 중국집, 쌉싸름한 한약재 냄새가 진동하는 건강원, 가족의 이름을 붙인 미용실이 영업 중이다. 간판 대신 ‘옷 값 아껴 부자 되세요’라는 허름한 현수막을 건 옷가게도 손님을 기다린다. 한 때 고속버스와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 쇠락을 몰랐던 곳이지만, 이제는 재개발에 대한 단꿈과 환상이 복잡하게 얽힌 허름한 거리다. 이 어수선한 동네에서 뿌리박고 살아가는 노총각 예술가 통장은 아주 작은 일에도 감동을 받으며 마을을 위한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있다.  

“한번은 너무 피곤해서 미용실 소파에서 선잠이 들었어요. 근데 할머니 손님 한 분이 저를 보더니 무서워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계셨던 모양이에요. 제가 험상궂게 생겼으니까요. 그 때 미용실 주인이 할머니께 말하는 거예요. 이분은 중요한 일 하시는 분이니까 깨우지 말라고요. 감동이었어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생태공동체를 꾸리거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맑은 바람 밝은 달,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북도에는 유독 사연 많고 소신 있는 예술인과 공동체운동가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 <단비뉴스>는 이렇게 충북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문화인과 활동가들을 찾아 나섰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인 CJB청주방송 황상호 기자가 글을 쓰고 서양화가 유순상 씨가 사진기와 붓을 들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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