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로운 청년]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이재성 ② 역풍이 불다
전편: ① 최악의 첫 출동
지난 3월 23일,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관리소의 특수진화대원 이재성은 경북 의성 산불에 투입됐다. 2024년 1월부터 특수진화대원으로 일한 재성 씨가 처음 겪는 큰불이었다. 24시간 넘게 산불과 사투를 벌인 재성 씨는 3월 24일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2025년 3월 24일, 오후 1시, 경북 영주
그 잠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낮 12시 14분, 잠든 지 한 시간 만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산불 신고 문자였다. 경북 영주시 안정면에서 산불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살펴보니, 할아버지 댁에서 1킬로미터(km) 떨어진 곳이었다. 몸조심하라고,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던 할아버지가 그 집에 계실 터였다.
할아버지가 걱정된 재성 씨는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차를 타고 영주시 안정면 현장으로 향했다. 산불 신고 문자를 받았다고 해서 휴무 중인 재성 씨가 현장에 출동할 필요는 없었다. 특수진화대원 이재성이 아니라 ‘손자 이재성’의 자격으로 그는 산불 현장을 찾아갔다.
오후 1시, 영주시 안정면 묵리의 야산에 도착했다. 불길은 보이지 않고 회색 연기만 피어올랐다. 영주시 예방진화대원과 소백산 국립공원 직원들이 나서 진화를 끝낸 상태였다.
지자체별로 운용하는 전국의 산불예방진화대원은 모두 9064명이다. 지역 곳곳에 배치된 이들이 산불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재성 씨와 같은 특수진화대는 산불 규모가 커진 다음에야 출동한다. 모든 산불 현장에 투입되기엔 이들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기준, 모두 150만 헥타르(ha)에 달하는 전국 국유림을 435명의 특수진화대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특수진화대원 1명이 담당해야 하는 구역은 3437ha, 축구장 약 4811개 면적과 맞먹는다.
오후 3시
할아버지 동네가 화마를 피한 것을 확인한 재성 씨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오후 3시, 또다시 재성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산림청 공무원이 전화를 걸었다. “의성에 가 있는 영주국유림관리소 진화대원들이 산불 속에 고립됐다”고 그는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누가 고립된 것인지 영주국유림관리소 진화대원 모두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재성 씨가 휴무라는 걸 그 공무원은 모르는 듯했다.
재성 씨의 잠도 달아났다. 현장에 있을 선배 대원들이 걱정됐다. 선배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봤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후 4시, 경북 의성
재성 씨가 선배들 걱정을 하던 무렵, 영주국유림관리소의 6년 차 특수진화대원 김경훈 씨가 그 불길 속에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경훈 씨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의 한 야산에 출동했다. 7부 능선쯤에 있는 임도에 산불 진화차 3대를 배치하고, 오전 내내 산불을 잡았다. 바람이 세지 않아 진화가 어렵지 않게 끝나는 것 같았다. 낮 12시쯤 산불이 다 잡힌 걸로 보고, 다른 현장으로 옮길 채비까지 했다. 꺼진 산불이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오후 2시쯤 점심으로 먹을 김밥이 왔다. 김밥 포장지를 뜯는데, 바람이 조금씩 강해지더니 이윽고 초속 10미터(m) 넘는 강풍이 불었다. 순식간에 산불이 다시 번졌다. “김밥 먹기 시작할 때부터 ‘바람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김밥 반 줄 먹을 동안 산불 속에 갇혔다”고 김경훈 대원은 당시를 떠올렸다.
“대피! 전부 빨리 대피!” 임도 양쪽에서 다가온 산불을 보고 누군가 소리쳤다. 진화대원들은 산불 진화차에 올라탔다. 몇 초 차이로 생사가 갈릴 수 있었지만, 차량을 방치하고 몸만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진화대원들은 차량을 타고 임도를 덮친 불길을 그냥 뚫고 나왔다.
현장에 함께 있던 진화대원들의 생사 확인이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다. 예방진화대원 4명이 탄 차량 한 대가 다른 두 대와 반대 방향으로 임도를 탈출했다. 약 30분 동안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야산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불길 너머에서 그들이 살았을지 죽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긴박했던 현장의 이야기를 재성 씨는 오후 4시쯤 전해 들었다. “다친 곳은 없지만, 죽다 살아났다”고 선배 대원들은 말했다. 그 난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후 4시 10분, 산불이 강풍을 타고 경북 의성에서 경북 안동으로 옮겨붙었다. 안동시 길안면을 비롯해 남선면, 임하면의 주민 270여 명과 요양원 입소자 800여 명 등 1000여 명에게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의성 산불’이었지만, 이제 ‘경북 산불’로 번지고 있었다.
3월 25일, 오전 5시, 경북 영주
현장 출동을 위해 새벽에 일어난 재성 씨는 오전 5시쯤 영주국유림관리소에 도착했다. 재성 씨를 포함해 특수진화대원 5명, 예방진화대원 10명이 모였다. 특수진화대원들과 예방진화대원들을 나누는 직급이나 계급은 없다. 나이와 경험은 이들의 암묵적 직급이다. 막내 재성 씨도 동료 특수진화대원들을 ‘선배님’ 또는 ‘형님’이라 불렀다.
영주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에서 운영하는 모든 산불 진화 차량이 출동 준비를 갖췄다. 고성능 산불 진화차 한 대와 소형 산불 진화차 한 대다. 여기에 영주국유림관리소 예방진화대에서 운영하는 소형 산불 진화차 한 대를 합쳐 모두 세 대의 진화 차량이 출동했다.
좁은 길에 진입하거나 빠른 기동이 요구될 때는 차체가 작은 소형 산불 진화차가, 비포장도로 등 험지를 돌파할 때는 바퀴가 큰 고성능 산불 진화차가 적합하다.
담수량도 서로 다르다. 3500리터(L)의 물을 저장하는 고성능 산불 진화차는 13밀리미터(mm) 호스를 사용할 경우, 약 1시간 동안 진화 작업을 펼칠 수 있다. 담수량 700~1200L 정도인 소형 산불 진화차는 약 13분 동안만 물을 뿌릴 수 있다. 물탱크에 담긴 물이 고갈되면 근처에 있는 소방차에 지원을 요청해 물을 채운다. 소방차에 지원을 요청할 수 없을 땐 소화전, 농수로에서 직접 물을 빨아들인다.
오전 6시, 경북 의성
재성 씨는 고성능 산불 진화차를 타고 의성지휘본부로 출발했다.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이 그의 자리다. 폭 2.5m, 길이 7m, 높이 3.4m에 이르는 거대한 차를 운전하려면 전문 연수를 받아야 한다. 재성 씨는 아직 이 연수를 받지 못했다.
의성지휘본부에 도착하니, 전날 산불에 고립됐던 경훈 씨를 비롯한 선배 대원들이 교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성 씨는 무사한 선배들을 얼싸안았다. “아이고야, 재성아, 조심해라. 우리 큰일 날 뻔했대이.”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이 있었다.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의성을 넘어 안동까지 위협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진화대원 440명과 산불진화차 50대가 모였다. 재성 씨가 삼척국유림관리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와 있었다. “우린 큰 산불 날 때만 보는 사이냐”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전날인 24일 저녁 6시 기준 8490ha였던 산불 영향 구역이 이날 오전 6시에는 1만2565ha로 번졌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재성 씨는 생각했다. 전날 오후에 몰아닥친 강풍이 이젠 다시 잠잠해졌다. 평균 풍속은 초속 1m, 산불을 끄기 알맞은 미풍이었다.
오전 9시
경북 의성군 안평면 기도 1리에 도착했다. 마을 북쪽을 둘러싼 작은 뒷산에 산불이 나 있었다. 산을 깎아 만든 넓은 밭에 고성능 산불 진화차를 세웠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진화 작업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진화에 앞서 먼저 정찰한다. 특수진화대원 두 명이 짝을 지어 직접 산을 오른다. 경험 많은 진화대원이 그 역할을 맡는다. 화세, 화선, 바람을 읽고 작전 계획을 세울 판단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명의 선배 대원이 정찰을 떠난 사이 재성 씨는 산 밑에 남아 1km에 달하는 호스 다발을 정리했다.
20분쯤 지나, 정찰 갔던 선배들이 돌아왔다. 불이 정상을 태우고 3부 능선까지 내려와 있다고 했다. 바람이 약해 화세가 강하진 않았지만, 넓게 흩어져 있었다. 바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잡아야 했다.
오전 10시, 작전이 시작됐다. 경험이 가장 많은 대원이 선두에서 소방 호스의 출수구를 잡았다. 산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위험한 작업이다. 나머지 진화대원들은 호스를 들고 일종의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호스가 위로 전진할 수 있도록 산비탈에서 호스를 밀고 당겼다. 출수구를 잡는 일보다 덜 위험하지만, 체력적으로는 훨씬 더 힘들다.
바람이 잠잠해 수월했다. 1시간 30분 만인 오전 11시 30분쯤 진화 작업을 마쳤다. 마을로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의성군 등 기초지자체나 대한적십자 지부, 또는 자원봉사에 나선 주민들이 진화대원의 끼니를 돕는다.
이날 점심은 제육볶음 도시락이었다. 산불 진화 현장에서 주로 먹는 김밥이나 밥버거 또는 에너지바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이틀 전인 23일, 재성 씨는 하루 내내 김밥만 먹었다. 뜨거운 물이 있어 컵라면을 곁들일 수 있으면 재성 씨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재성 씨를 비롯한 대원들 모두 점심을 먹는 동안 희망에 차 있었다. 바람도 덜 불고, 불도 잘 꺼지고, 밥도 잘 나오니 조만간 산불을 다 잡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낮 12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진화 위치를 옮겼다. 기도 1리 마을회관에서 남쪽으로 1km쯤 떨어진 박실골 일대 야산이었다. 해발 250m 안팎의 낮은 산의 기슭부터 정상까지 화선이 퍼져 있었다. 산 입구의 과수원도 불타고 있었다. 물을 뿌려 사과나무 10여 그루에 붙은 불부터 잡았다. 불을 끈 뒤에는 나무 세 그루를 톱질로 베어내고, 산불 진화차가 들어갈 틈을 만들었다.
정상의 불보다 산 아래 불을 끄는 게 급하다. 산 아래에 민가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진화대원들의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갑자기 번진 산불을 피하는 퇴로를 확보할 수 있다.
산 아래부터 화선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진화 시작 1시간 만인 오후 2시쯤 7부 능선을 넘겼다. 정상이 코앞이었다.
오후 2시
7부 능선을 넘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불길이 5m씩 덩달아 이동하며 몸집을 키웠다. 바람이 재성 씨 얼굴 쪽으로 불어올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함께 다가왔다. 호스의 길이도 부족했다. 갈퀴를 꺼내 들었지만, 불 끄는 속도보다 산불 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경력 10년을 넘긴 선배 대원이 잠시 갈퀴질을 멈추고 바람을 유심히 살폈다. “바람 방향이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선배는 말했다. 그는 정상으로 정찰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15분쯤 뒤, 선배가 돌아왔다. “모두 산에서 내려가자. 어서 움직여!”
선배의 판단이 옳았다. 내려가며 보니, 불을 끄고 지나온 자리에서 불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더 지체했다면, 진화대원들이 물러날 퇴로마저 막힐 상황이었다. “그 순간 교훈을 얻었다”고 재성 씨는 나중에 말했다. 바람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세게 불어닥치는 ‘역풍’은 더 위험하다. 지난 3월 22일, 경남 산청 산불 진화에 투입된 예방진화대원 4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도 역풍이었다. 역풍이 불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산불의 덩치가 커진다. 번지는 속도도 빨라진다. 당시 산불은 불과 10분 만에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서 고개 두 개를 타고 넘어갔다. 바람을 읽고, 퇴로를 미리 확보하지 못하면, 그 산불 속에 갇히는 것이다.
고립의 위험을 겨우 넘기고 후퇴했지만, 나쁜 일은 끝나지 않았다. 경북 의성의 천년 사찰 고운사가 전소 직전이라고 했다. 선배 특수진화대원 2명이 의성 고운사 진화에 급히 차출됐다. 고성능 산불 진화차도 선배들과 함께 고운사로 떠났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는데, 일손과 장비가 더 줄었다. 재성 씨를 포함해 특수진화대원 3명과 예방진화대 10명, 그리고 소형 산불 진화차 2대가 안평면 기도리를 지켜야 했다.
오후 4시
아직 대낮인데, 산불 연기가 해를 가려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걱정된 재성 씨가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님, 산불은 지금 못 끕니까?”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바람이 너무 세서 산으로 가서는 승산이 없다.”
대신 산불이 마을로 내려오지 않게 막자고 선배가 말했다. 소형 산불 진화차에 호스를 연결해 ‘예방 살수’를 시작했다. 집의 지붕에 물을 뿌렸다. 주변에 쌓아둔 장작더미에도 물을 뿌렸다. 10여 분만에 물이 동났다. 마을 급수대에서 물을 퍼서 진화차의 물탱크를 채웠다. 차마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장도 함께 물을 채웠다.
바람은 그들의 사투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후 5시 무렵, 초속 14.5m가 넘는 돌풍이 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산불이 시뻘겋게 일렁였다. 불꽃이 나뭇가지 끝에서 타고 있었다. 불이 나무 밑동부터 가지까지 통째로 태우는 ‘수관화’(樹冠火) 현상이었다. 수관화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산불이 커질 수 있다고 선배들이 말했었다. 나무 윗부분에 불이 붙으면, 바람을 타고 불꽃이 먼 곳으로 이동한다. 이때부턴 불이 날아다닌다. 일명 ‘도깨비불’이라고 불리는 ‘비화(飛火) 현상이다.
오후 5시 50분, 의성지휘본부에서 새 명령이 떨어졌다. 기도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즉시 마을 밖으로 대피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장은 물론 불을 끄던 진화대원들도 떠나야 했다. 재성 씨도 마을을 떠났다. 산불 현장에 출동했다가 산불을 남겨두고 후퇴하는 일이 재성 씨에겐 처음이었다.
오후 6시 30분, 의성지휘본부
의성지휘본부로 돌아와 텔레비전 뉴스를 봤다. 산불이 의성, 청송, 영양을 넘어 영덕까지 위협한다고 했다. 오후 6시 기준, 의성 산불의 영향구역은 1만 5185ha에 달했다. 전날 오후 8시에 발표된 영향구역 8490ha의 두 배 면적이었다.
고운사로 긴급 출동했던 선배 대원들도 돌아왔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그들은 말했다. 오후 4시쯤 도착했을 땐 이미 산불이 고운사를 거의 다 태운 뒤였고, 일대에 연기가 자욱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며, 진화 차량을 몰고 현장을 빠져나오려 해도 도로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그들은 말했다. “운이 좋아 살았다”고 그들은 말했다.
* 3편에서는 경북 안동 산불을 진화한 지난 3월 25일 밤부터 27일 밤 단비가 내릴 때까지의 이야기를 보도합니다.
지난 3월 22일부터 3월 30일까지 이어진 경북 산불은 역대 최악의 산불이었다. 10만 헥타르(ha)에 달하는 산림이 불탔고, 1조 1306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도 컸다. 34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그 최악의 산불을 꺼야 했다.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이재성 대원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스물여섯 살의 그는 경북 산불 진화에 투입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가운데 막내였다. 그가 보고 듣고 겪은 경북 산불 현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기사 차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