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로운 청년]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이재성 ③ 단비를 앞둔 사투
전편 : ②목숨이 걸린 후퇴
지난 3월 23일 경북 의성 산불 현장에 투입된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이재성은 25일 또다시 경북 의성 산불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진화는 순탄치 않았다. 거센 바람을 타고 산불이 빠르게 번지면서 진화대원들의 안전마저 위협받았다. 오후 5시 50분, 마을 주민들과 진화대원들은 번지는 불길을 남겨두고 대피했다.
오후 6시 30분쯤 의성지휘본부로 후퇴한 영주국유림관리소 진화대원들은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뉴스에서는 산불이 의성을 넘어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의성 산불의 영향구역은 오후 6시 기준 1만 5185헥타르(ha)로 커졌다. 전날 오후 8시 발표된 8490ha의 약 두 배였다.
2025년 3월 25일, 오후 7시 30분, 경북 의성
잠시 쉬고 있던 진화대원들에게 산림청 지휘통제실의 명령이 내려왔다. 안동 남순환로를 따라 산불 지연제를 살포하라고 했다. 같은 시각 산불은 경국대학교(옛 안동대학교) 인근을 덮쳤다. 안동 시내까지 차를 타고 불과 10여 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경국대 학생과 캠퍼스 인근 주민 등 1000여 명이 대피했지만, 안동 도심의 주민들도 안심할 수 없었다. 지연제를 뿌려야 산불이 도심까지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사전 예방 차원에서 뿌리는 산불 지연제는 물과 섞어 쓴다. 주성분은 염화암모늄이다.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면, 산불 방지 효과를 최대 3개월까지 유지한다. 산불이 날 때마다 지연제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싸기 때문이다. 산불 지연제 1톤에 600만 원이 넘는다.
오후 8시, 영주국유림관리소 대원들은 차를 타고 의성지휘본부를 나섰다. 안동을 향하는 길에 점곡면, 단촌면, 옥산면을 지났다. 산불이 덮친 마을은 연기로 존재를 알렸다. 마을이 가까워지면 차창 밖이 뿌옇게 흐려졌다.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천천히 움직이는 진화차 주변에 가끔 주민들이 다가와 손짓했다. 차를 세우고 마을에 난 불을 꺼 달라는 뜻이었다. 영주국유림관리소 대원들은 멈출 수 없었다. 산불 지연제를 뿌리라는 명령을 수행해야 했다. 주민들의 손짓을 뿌리쳐야 하는 마음이 쓰렸다.
이날 오후부터 산불은 더 빠르게 번졌다. 산불이 시간당 8.2km를 이동했다. 역대 산불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였다.
오후 9시, 경북 안동
한 시간쯤 달려 안동 남순환로 입구에 도착했다. 남순환로를 따라 경국대학교 인근부터 서안동대교에 이르는 10km 거리를 달리며 양옆의 숲에 산불 지연제를 뿌리는 작전이 시작됐다.
차량 상부에 장착된 ‘방수총’에서 붉은색 용액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색 염료 덕분에 지연제 뿌린 자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산불 지연제를 뿌릴 때는 헬기를 이용하는 게 좋다. 그러나 해가 지면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어 헬기가 뜨지 못한다. 그럴 때 산불 진화차를 이용한다.
2명이 탑승한 산불 진화차 뒤를 승합차가 따랐다. 재성 씨를 비롯한 2명이 그 차에 타고 있었다. 다른 명령이 내려왔을 때 즉시 이동하려면, 한 팀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 승합차 운전을 재성 씨가 맡았다. 이날 내내 산불을 끄느라 기진맥진한 여파가 찾아왔다. 운전하는 내내 졸음을 참았다. 물탱크에 담긴 지연제 희석액 3500L를 다 뿌리는 데 2시간이 걸렸다.
오후 11시 30분, 영주국유림관리소 대원들은 다음 명령을 받았다. 이번엔 산이 아닌 민가였다. 안동시 일직면 운산리의 산불이 마을로 내려와 집, 도로, 논밭을 다 태우고 있다고 했다.
밤 12시
80가구 정도가 사는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로 가는 길조차 쉽지 않았다. 불붙은 은행나무 십여 그루가 길 중간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무를 피해 진입하는 동안 산불 진화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마을 입구를 통과하자, 참혹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있는 산, 마을에 있는 집까지 사방이 다 불이었다”고 재성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진화차가 들어서자 20여 명의 마을 주민이 주변에 모였다. 오후 5시부터 대피 명령이 떨어졌는데, 차마 마을을 못 떠난 주민이 많았다. “이게 뭔 일이라?” 산불진화차에서 내린 재성 씨에게 한 주민이 다가와 말했다. 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대원들은 호스를 끌고 불이 덮친 주택가로 들어섰다. 산불 끌 때보다 더 지독한 연기가 목을 찔렀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 콧물도 쏟았다. 방독마스크를 꺼내 입과 코를 가렸지만, 연기의 매운맛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산불진화대원들은 다양한 유해 물질에 노출된다. 산불 연기에는 초미세먼지,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이 포함돼 있다. 유해물질은 진화 대원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호흡기를 자극하고, 두통·구토·현기증도 유발한다. 장기적으로는 호흡기 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유해물질 99%를 걸러낸다는 방독마스크가 진화대원에게 지급되지만, 그냥 벗어 버릴 때가 많다. 작전을 위해 움직이다 보면 숨이 차기 때문이다.
3월 26일, 오전 2시
특수진화대원이 된 뒤 처음으로 재성 씨는 산이 아닌 민가의 불을 껐다. 선배가 호스로 물을 뿌리는 동안, 재성 씨는 호스를 밀고 당겼다. 처음 진화한 곳은 농막 딸린 작은 집이었다. 지붕은 불에 타 폭삭 주저앉았다. 집 안까지 불이 붙어 살림살이의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산보다 집은 작다. 그래도 불 꺼지는 속도는 산보다 훨씬 느렸다. 불에 잘 타는 장판, 벽지, 옷 등이 좁은 공간에 빼곡했다.
일반적으로 민가 진화는 소방청이 맡는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를 맡는다. 의성 산불이 안동으로 번진 이후 업무 경계가 흐려졌다.
이날 하루만 해도 경북 안동의 7개 면 66개 리에서 산불로 인한 민가 화재가 발생했다. 안동 소방 당국이 보유한 ‘펌프차’는 21대다. 그 가운데 10대 정도는 이미 의성 산불 화재에 투입됐다. 남은 11대의 소방차로 66개 마을의 불을 꺼야 할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방청과 산림청의 업무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도 가까운 민가에 출동해야 했다.
재성 씨는 이 무렵부터 탈진 증상을 겪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첫 집 불을 끈 이후부터 기억이 희미하다”고 재성 씨는 말했다. 마을의 몇 집을 지나며 불을 끄는데 선배가 재성 씨에게 말했다. “너 낯빛이 진짜 안 좋다,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새벽 두 시쯤 재성 씨는 산불진화차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오전 5시
차 주변의 소음에 재성 씨는 잠에서 깼다. 창밖이 연기에 뒤덮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차 안에서는 알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선배들이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화 작업은 끝났지만, 마을의 80가구 가운데 50여 가구가 불에 타버린 뒤였다.
작전을 끝낸 특수진화대원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종일 땀을 흘린 머리는 아무렇게나 뻗쳤고, 얼굴에는 검은 재가 묻었다. 24시간 철야 진화가 반복된 두 번째 날이 끝났다. 막내 재성 씨에게 너무나 긴 하루였다.
오전 8시 30분, 경북 영주
영주국유림관리소로 돌아왔다. 매캐한 연기를 마시다 돌아오니 영주 공기가 유독 맑았다. “재성아, 거 있다 오니까 영주 공기가 참 맑다. 맑은 공기 많이 마셔두고, 푹 쉬고 보자.” 선배의 생각도 재성 씨와 같았다.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재성 씨는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24일 오전 4시 30분에 눈을 뜬 후 약 30시간 만이었다. 몸살 기운에 취한 재성 씨는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다.
오후 5시
눈을 떠 창밖을 보니, 영주 하늘이 뿌옇게 흐렸다. 안동 산불 연기가 영주까지 날아온 모양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저녁 밥을 먹었다. 재성 씨가 좋아하는 육회가 상에 올랐다.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데 텔레비전에서 하필 산불 소식이 나왔다. “재성아, 제발 조심해라. 니가 좀 더 나선다고 불이 다 꺼지는 거는 아이대이.”
오후 6시, 재성 씨는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 심부름을 나갔다. 채소를 사러 들른 시장에서 상인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뿌연 하늘을 올려 보았다. 이러다 영주까지 뭔 일이 나는 거 아니냐고 그들은 말했다. 오후 7시, 집으로 돌아온 재성 씨는 다음날 출동을 위해 다시 이른 잠에 들었다.
3월 27일 오전 7시 30분, 경북 안동
오전 7시 30분, 특수진화대 5명, 예방진화대 10명이 영주국유림관리소에 모였다. 그동안 새벽 5시에 영주국유림관리소에 모여 출동한 것을 감안하면 약 2시간 30분 정도 늦은 집합이었다. 산불이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면서 진화대원들의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였다.
오전 10시쯤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에 도착했다. KTX 선로가 통과하는 야트막한 산 정상에 불이 나 있었다. 화세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나뭇잎 모양을 보니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활엽수림은 침엽수림에 비해 ‘수관화’ 현상이나 ‘비화’ 현상이 발생할 위험이 낮다.
오전 11시
경력 8년차 선배가 현장을 지휘했다. 선배가 “호스 두 개씩!”을 외쳤다. 진화대원들은 25밀리미터(mm) 호스 두 다발씩을 산불진화차에서 꺼내 어깨에 멨다. 25mm 소방 호스는 30m 단위로 끊어 사용한다. 최대 길이인 1킬로미터(km)까지 호스를 펼치려면 한 사람당 최소 두 다발씩 어깨에 메고 산을 올라야 한다.
이 밖에도 방염복, 방염 헬멧, 안전화, 진화 조끼 등을 몸에 착용한다. 갈퀴, 정글도, 방염텐트, 무전기 등 필수 장비도 몸에 지닌다. 갈퀴는 산불 진화에 쓴다. 정글도는 가시나 덤불로 이동이 어려운 곳에서 풀이나 나무를 베어낼 때 쓴다. 유리섬유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열을 반사하는 방염텐트는 산불 속에 고립되었을 때 진화대원의 목숨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다. 호스 두 다발과 개인 장비의 무게를 합치면 25kg에 달한다.
낮 12시 무렵, 산 정상의 불을 잡았지만, 화선이 남아 있었다. 1km 정도 이어진 화선을 잡으려면, 반대 방향에서 접근해야 했다. 대원들은 깔아둔 호스를 거두어 산에서 내려왔다.
낮 12시
낮 12시 무렵, 2차 작전이 시작됐다. 다시 호스 2개씩을 어깨에 멨다. 호스를 연결하면서 산을 오르는데, 선두에 선 선배가 뒤돌아 외쳤다. “호스 더 당겨!” 재성 씨는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춰 선배 진화대원들과 함께 호스를 산비탈 위로 끌어당겼다.
호스를 끌어당기지 않으면 최대 길이인 1km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다. 호스의 구부러진 부분도 잘 펴 주어야 한다. 호스가 굽으면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1km 길이를 다 연결한 호스의 무게는 150kg에 이른다. 한두 사람의 힘으론 끌어당길 수 없다. 사람 여러 명이 붙어 줄다리기하듯 호스를 당긴다. 특수진화대원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되는 작업이다.
체력 쓰는 일은 아직 더 남았다. 선배가 호스로 물을 뿌리는 동안, 재성 씨는 갈퀴질했다. 갈퀴로 낙엽을 긁어내 탈 것을 없애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오후 3시 무렵, 남은 불을 다 껐다. 산 아래서 늦은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긴장을 놓을 순 없었다. 꺼야 할 불이 남아 있었다.
오후 4시 30분
대원들은 KTX 선로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으로 투입 경로를 옮겼다. 3차 작전이었다. 호스 메고 산을 오르고, 호스를 밀고 당기고, 물을 뿌리는 과정도 반복됐다. 3월 날씨에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이날 오후 6시, 산불영향구역은 3만 8666ha로 집계됐다. 재성 씨가 투입된 첫날인 23일 오후 7시 산불영향구역은 4000ha였다. 나흘 사이 산불은 몸집을 열 배 가까이 키웠다.
3차 작전을 끝내고 내려오니 오후 8시가 됐다. 밥버거 하나를 저녁으로 먹었다. 여전히 불이 남았다. 4차 작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후 9시
4차 작전이 시작됐다. 산의 5부 능선에 제법 강한 불이 남아 있었다. “아휴, 비 좀 와라 제발.” 산불진화대원들 모두 간절히 비를 원했다. 이날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다. 안동의 하늘은 흐렸지만, 비를 뿌려주진 않았다.
오후 11시, 4차 작전이 끝났다. 일직면 원호리 산 일대의 불이 모두 꺼졌다. 이날에만 산을 네 번 오르내렸지만, 출동 명령은 계속 떨어졌다. 밤 12시,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일대 산불을 진화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27일 하루가 다 가도록 끝내 비를 못 만난 채 송사리로 향했다.
3월 28일, 오전 1시
경북 안동 길안면 송사리에 도착했다. 또 호스를 끌고 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비는 결국 안 올 모양이구나.’ 재성 씨는 체념했다. 호스 다발을 추려 내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이윽고 빗방울이 굵어졌다. 첫 산불 진화 작전에 투입된 23일 오전 6시 이후 약 110시간 만에 재성 씨는 비를 맞았다.
비를 반길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진화대원 모두 말이 없었다. 멍하니 비를 바라봤다. 재성 씨는 그때의 젖은 흙냄새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좋다 못해 달콤했다”고 그 순간을 떠올렸다.
이날 밤엔 불 끄러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됐다. 대원들 모두 차 안으로 들어갔다.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눈 뜨고 일어난 아침엔 단비가 산불을 깨끗이 씻어 주었길 바라며, 재성 씨도 눈을 붙였다.
이날 밤의 비는 안동을 비롯해 의성, 영양, 영덕에도 내렸다. 1mm 안팎의 강수량에 그쳤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비는 불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비화 현상’의 위험을 낮췄다. 시야를 제한하고 호흡기를 자극하는 연기도 잡았다.
밤새 비 내린 뒤인 오전 5시, 경북 산불의 평균 진화율이 85%까지 올랐다. 전체 화선 929.4km 가운데 786.4km 구간의 진화가 완료됐다. 경북 의성군의 평균 진화율은 95%까지 올랐다. 이제 주불 진화가 코앞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경북 산불이 끝난 이후 이재성의 삶을 보도합니다.
지난 3월 22일부터 3월 30일까지 이어진 경북 산불은 역대 최악의 산불이었다. 10만 헥타르(ha)에 달하는 산림이 불탔고, 1조 1306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도 컸다. 34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그 최악의 산불을 꺼야 했다.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이재성 대원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스물여섯 살의 그는 경북 산불 진화에 투입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가운데 막내였다. 그가 보고 듣고 겪은 경북 산불 현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기사 차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