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로운 청년]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이재성 ① 연습 없는 실전

* 이 기사는 단비뉴스에서 우수 콘텐츠로 선정돼 2025년 9월 단비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 3월 22일부터 3월 30일까지 이어진 경북 산불은 역대 최악의 산불이었다. 10만 헥타르(ha)에 달하는 산림이 불탔고, 1조 1306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도 컸다. 34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그 최악의 산불을 꺼야 했다.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이재성 대원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스물여섯 살의 그는 경북 산불 진화에 투입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가운데 막내였다. 그가 보고 듣고 겪은 경북 산불 현장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기사 차례>

① 최악의 첫 출동

② 목숨이 걸린 후퇴

③ 체력으로 버티는 산불 진화

④ 산불이 지나가고

 

2025년 3월 22일, 오전 10시, 경북 영주

쉬는 날이었다. 이재성(26) 씨는 주말을 맞아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영주에서 깨 농사를 짓는다. 농사에 쓰는 포크레인이 고장났으니 얼른 좀 고쳐달라고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말했다. 오전 10시,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포크레인을 살펴보니 핀이 빠져 있었다. 스패너로 나사를 조이고, 망치로 핀을 박았다.

지난 3월 22일, 재성 씨가 산림청 상황실에서 받은 신고 알림 문자다. 이 문자가 경북 산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재성 제공
지난 3월 22일, 재성 씨가 산림청 상황실에서 받은 신고 알림 문자다. 이 문자가 경북 산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재성 제공

오전 11시 25분

포크레인을 고치던 재성 씨의 휴대폰이 울렸다. 산림청 남부지방청 상황실에서 보낸 문자였다. 22일 오전 11시 25분, 의성군 안평면에서 산불이 났다고 했다. 지방청에 산불 신고가 접수되면 소속 대원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문자가 전달된다.

재성 씨는 그런 문자에 익숙하다. 그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이하 ‘특수진화대’)에서 일한다. 올해 2년 차이지만, 이런 문자의 대부분이 ‘오인 신고’라는 정도는 안다. 문자를 슬쩍 본 뒤, 다시 포크레인을 고쳤다.

15분 뒤 문자가 또 왔다. 이번에도 안평면에 불이 났다는 신고 문자였다. 같은 장소의 산불을 또 다른 사람이 신고한 것이다. 오인 신고는 아닌 것 같았다.

산림청 남부지방청 관할구역지도. 산림청 누리집 갈무리
산림청 남부지방청 관할구역지도. 산림청 누리집 갈무리

산불이 나면 산림청 소속 대원들이 끈다. 담당 구역도 있다. 산림청은 전국을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다섯 개 구역으로 나누어 지방청을 뒀다. 각 지방청은 다시 여러 개의 국유림관리소를 설치했다. 경북 영주에 사는 재성 씨는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소속이다.

낮 12시

점심을 먹었다. 그 사이 영주국유림관리소 단체 채팅방이 어수선해졌다. 특수진화대의 선배 대원들이 안평면으로 출동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의성에서 산불이 났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55분, 산불 대응 1단계가 발령됐다. 피해 면적이 10ha 이상을 넘길 것이 예상되면, 1단계 대응이 시작된다. 불이 커지는 건가 혼자 생각하는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산불 대응 2단계로 넘어갔다. 피해 면적이 50ha를 넘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당에 나가 보니, 바람이 세게 불었다. 흙먼지가 소용돌이쳤다. 오후 2시 10분, 최고 단계인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됐다. 100ha 이상의 면적에 산불이 번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산불대응 단계별 발령 기준이다. 그래픽 김여진
산불대응 단계별 발령 기준이다. 그래픽 김여진

오후 2시 30분

현장에 투입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재성 씨가 먼저 물었다. “지금 거기 상황이 어떻습니까?” 선배의 호흡이 가빴다. “이번에 우리 큰 불을 끌 것 같다, 재성아.”

재성 씨는 여태 큰 산불을 꺼 본 적이 없다. 특수진화대원이 된 이후 3단계에 해당하는 산불은 처음이었다. “니 큰 산불 함 끄고 싶다더니 왜 오늘 휴무고. 빨리 와가 교대 좀 해도.” 영주국유림관리소의 특수진화대원은 모두 12명뿐이었다.

오후 5시

일부러 이른 저녁을 먹었다. 큰 산불이 나면, 특수진화대원들은 24시간 근무 체제에 돌입한다. 새벽에 집합해 다음 날 아침까지 진화 작업을 하고, 다음 24시간 동안 일할 대원들과 교대한다. 오늘 오전 투입된 선배들과 내일 오전 교대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마주 앉은 밥 자리는 편치 않았다. “아이고, 우리 재성이 걱정돼서 우예니껴.” 할머니의 걱정이 많았다. 21일 경남 산청 산불 진화 중 예방진화대원 3명이 숨졌다고 방송 뉴스에서 나왔다. 할아버지는 당부했다. “우야든동 조심해야 된데이. 너무 막 나설라 카고 그러지마래이.”

잠자리에 들 무렵인 저녁 7시, 의성 산불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 300ha에 이르렀다. 불길은 14.7킬로미터(km)의 길이로 커졌고, 의성군 철파리와 업리 등 인근 마을 주민 484명이 의성체육관 등으로 대피했다.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재성 씨는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긴장이 됐다. 밤 사이에도 산불 신고가 계속 이어졌다. 이날 하룻동안 경북 의성에서 들어온 산불 신고만 19건이었다. 그걸 알리는 문자에 재성 씨는 자꾸 깼다. 다시 잠들기 어려워, 휴대폰의 지도 어플을 켜고 고속도로 CCTV 화면을 봤다. 의성 고속도로 근방의 산이 활활 타고 있었다.

지난 4월, 이재성 씨가 경북 영주에 있는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사무소 사무실에 서 있다. 김여진 기자
지난 4월, 이재성 씨가 경북 영주에 있는 산림청 남부지방청 영주국유림사무소 사무실에 서 있다. 김여진 기자

2024년 1월 2일, 오전 9시, 강원도 삼척

2024년 1월 2일 아침, 재성 씨는 첫 출근을 했다. 강원도 삼척에 있는 산림청 동부지방청 삼척국유림관리소가 그의 첫 근무지였다. 그 해 여름, 재성 씨 고향 영주에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소속을 옮겨, 2024년 10월 2일부터 재성 씨는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재성 씨의 원래 꿈은 요리사였다. 식품영양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영양사 자격증도 땄다. 군 생활을 하면서 삶의 궤적이 바뀌었다. 2020년 여름, 강원도 철원에 폭우가 쏟아져 한탄강변에 위치한 마을이 물에 잠겼다. 군 복무 중이던 재성 씨는 철원 동막리에 사는 주민들을 도우러 갔다.

휩쓸려온 쓰레기를 치우고, 무너진 논둑을 고쳤다. 거의 일주일에 걸친 작업이 끝나자, 마을 이장은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고생을 다 갚았다”고 재성 씨는 그때를 돌아봤다. 어려움이 있는 곳에 가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그때 생각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2023년 4월, 재성 씨는 텔레비전으로 강릉 산불을 봤다. 불타는 산에 직접 들어가 불을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들이 누구인가 찾아보니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었다. 저 일을 하고 싶다, 그때 생각했다.

2024년 4월 7일, 오전 11시 45분, 강원도 동해

첫 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된 작년 4월 7일을 재성 씨는 잊을 수 없다. 이날 오전 11시 45분, 강원도 동해시 신흥동에서 작은 산불이 났다. 아는 것도, 경험도 부족했지만, 선배 대원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을 따라 하며 불을 껐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주민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고맙다고 대원들에게, 재성 씨에게 인사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재성 씨에게 주변에선 “젊은 사람이 여길 왜 왔냐”고 자꾸 물었다.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조직이니 여길 얼른 떠나라고 충고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산불진화 작업에 필수적인 안전화는 입사 5개월이 지나도 지급되지 않았다. 재성 씨는 군대에서 받은 전투화를 신고 불을 껐다. 딱 한 벌 지급된 진화복은 낡아 있었다. 보풀이 일고, 여기저기 해어져 있었다.

2025년 3월 23일, 오전 5시, 경북 영주

입사 2년 차 신참 특수진화대원 재성 씨는 이제 큰 산불을 끄러 가야 했다. 할아버지 댁에서 잠자리를 설친 재성 씨는 오전 4시 30분쯤 눈을 떴고, 오전 5시쯤 영주국유림관리소에 도착했다.

특수진화대원 네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과 함께 산불진화차를 타고 경북 의성 안평면 사무소에 마련된 산불진화지휘본부로 갔다. 산림청 공무원이 산불 진화 위치와 범위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오전 6시,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밥과 국을 먹었다. 다시 차를 타고 산불 현장으로 갔다.

오전 7시, 경북 의성

경북 의성 원당 2리의 현장에 도착했다. 마을을 둘러싼 작은 뒷산이었다. 성묘객의 실화로 발생한 불을 선배 진화대원들이 꼬박 하루 만에 대부분 진화했다. 큰 불을 처음 꺼보는 건가 싶었지만, 재성 씨의 일은 많지 않았다. 잔불을 정리했다. 인근 점곡면의 다른 산불 현장으로 이동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 3월 23일, 경북 의성 원당 2리 절골 인근의 뒷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재성 제공
지난 3월 23일, 경북 의성 원당 2리 절골 인근의 뒷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재성 제공

낮 12시

오전 내내, 산불 진화의 뒷 작업을 했다. 연결했던 호스를 정리하고, 진화 차량에 물을 채웠다. 짬을 내어 김밥도 먹었다.

정리 작업을 하던 특수진화대원들을 마을 주민이 찾아왔다. 산불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고 했다. 주민이 가리키는 산 정상을 보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무나 낙엽이 타는 것과는 다른 연기였다. 연기의 색이 검었다. 냄새도 달랐다. 고무 타는 매캐한 냄새였다. 정상에 길을 내는 데 쓰인 타이어가 그곳에 쌓여 있다고 주민들이 말했다.

오후 1시

검은 연기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재성 씨는 선배 대원 한 명과 함께 산을 올랐다. 검은 연기에 가까워질수록 매캐한 냄새가 더 짙어졌다. 화학 물질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을 쉬기 어려웠다. 주민들이 말한 것과 같았다. 타이어 더미가 불타고 있었다. 열기도 대단했다. 불길에서 15미터(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도,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듯 했다.

열기와 냄새를 견디며 정상에 오르자 화선(火線)이 눈앞에 펼쳐쳤다. 새로 일어난 불길이 산등성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당장 불을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선배 대원이 말했다. 진화용 호스의 길이를 감안하면, 산 아래서 정상까지 호스를 끌고 올 거리가 아니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연기가 자욱해 자칫 산불 속에 고립될 위험도 있었다.

산불을 끄려면 냉철한 판단과 끈질긴 인내가 필요하다. 산불이 정상부로부터 내려와 진화용 호스의 사정권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선배 대원은 판단했다.

지난 3월 23일, 절골 인근에서 재성 씨와 예방진화대원 한 명이 갈퀴를 이용해 산불을 막아낸 후의 모습이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와 산불을 막아낸 자리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재성 제공
지난 3월 23일, 절골 인근에서 재성 씨와 예방진화대원 한 명이 갈퀴를 이용해 산불을 막아낸 후의 모습이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와 산불을 막아낸 자리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이재성 제공

오후 4시

정상에서 시작된 화선이 드디어 산의 5부 능선까지 내려왔다. 재성 씨는 특수진화대원 선배 한 명, 예방진화대원 열두 명과 함께 호스를 들고 산을 올랐다. 호스를 연결하여 늘려 가며 불길에 닿기까지 40분이 걸렸다.

산불 진화용 호스의 최대 길이는 1km다. 그동안 400m의 호스를 썼고, 이제 600m의 호스가 남았는데, 불길은 그보다 훨씬 길게 펼쳐져 있었다. 화세가 센 곳으로 호스 팀이 움직였다. 선배 진화대원이 호스로 물을 뿌리고 예방진화대원들은 호스를 밀고 당겼다.

재성 씨는 비교적 화세가 약한 쪽으로 투입됐다. 불길이 약한 쪽이라 해도 화선의 길이가 300m에 달했다. 그와 예방진화대원 한 명이 갈퀴를 들었다. 정신없이 낙엽을 긁어냈다. 탈 것을 없애는 일이다. 흙도 파내어 골을 만들었다.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갈퀴로 불길을 저지하는 일을 ‘방어선 구축’이라고 진화대원들은 부른다.

허리가 아팠고, 땀이 쏟아졌다. 덕분에 조금씩 화선이 정리되고 있었다. 불길이 거의 다 정리됐다고 생각하며, 재성 씨는 잠시 허리를 폈다. 그때, 그의 곁에서 톡, 톡 소리가 났다. 골짜기 아래로 작은 솔방울이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3월 23일, 절골 인근에서 골짜기 아래에서 번지는 불을 갈퀴를 이용해 진화한 직후 모습이다. 이재성 제공
지난 3월 23일, 절골 인근에서 골짜기 아래에서 번지는 불을 갈퀴를 이용해 진화한 직후 모습이다. 이재성 제공

오후 5시

작은 솔방울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짜기 아래에서 열기가 솟구쳤다. 솔방울에 붙은 불씨가 골짜기 아래 낙엽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었다. 마치 휘발유를 부은 듯 불길이 번졌다. 순식간에 300m의 새로운 화선으로 번졌다. 그런 광경을 재성 씨는 처음으로 봤다.

재성 씨를 포함해 두 명이 그 불길을 막아야 했다. 호스는 없고 고작 갈퀴뿐이었다. 곁에 있던 예방진화대원이 소리쳤다. “여기! 여기!” 골짜기 경계면에 있는 흙을 갈퀴로 긁어내라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캐낸 흙을 골짜기 아래로 무너뜨렸다.

오후 7시

새로 일어난 불은 골짜기 아래 낙엽을 모두 태웠지만 재성 씨가 덮은 흙에 가로막혀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그때 그 예방진화대원이 없었다면 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라고 재성 씨는 말했다. 20년 넘게 예방진화대로 활동했던 60대의 경륜이 없었다면,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허둥댔을 것이라고 재성 씨는 생각한다.

큰 산불 진화가 재성 씨에겐 연습 없는 실전이다. 재성 씨를 비롯한 특수진화대원들은 1년에 한 번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를 통해 10시간짜리 교육을 받는다. 산불 예방과 진화에 대한 이론, 산불진화장비 사용법 등이 교육의 주를 이룬다. 같은 내용의 기초적 교육만 매년 반복하니 처음 맞닥뜨린 큰 불의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도가 낮다.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고 재성 씨는 말했다.

유능한 산불진화요원이 되고 싶다고 재성 씨가 생각하던 무렵인 오후 7시, 경북 의성 지역의 산불 피해는 이미 4000ha를 넘겼다. 신라 고찰 운람사와 주택, 건물 등 74채가 전소됐고, 35개 마을 주민 1300여 명이 대피했다. 다른 곳의 산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난 3월 23일, 이재성 씨는 저녁으로 김밥 한 줄과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이재성 제공
지난 3월 23일, 이재성 씨는 저녁으로 김밥 한 줄과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이재성 제공

오후 8시 30분

오후 8시까지 뒷불을 살펴본 재성 씨는 8시 30분쯤 산을 내려왔다. 이날 처음 제대로 쉬었다. 몇몇은 진화차량에서, 다른 몇몇은 마을 공터의 평상에 널브러졌다. 재성 씨는 어느 빈 집의 마루에 누웠다.

이날 오후와 저녁의 진화 작업 과정에서 현장에 들고 간 호스 34개 가운데 9개가 파손됐다는 이야기를 그제야 들었다. 불에 타거나 수압을 견디지 못해 터졌다고 했다.

늦은 저녁도 먹었다. 김밥 한 줄과 컵라면이다. 허기를 채운 재성 씨는 밤이 내린 마루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지난 3월 24일, 절골 인근에서 산불진화대원들이 갈퀴를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재성 제공
지난 3월 24일, 절골 인근에서 산불진화대원들이 갈퀴를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재성 제공

3월 24일, 오전 1시

쪽잠을 자고, 다시 산을 올랐다. 호스가 닿는 곳 아래의 불은 껐지만, 그보다 높은 곳에는 불길이 남아 있었다. 전날 내내 방어선을 구축한 덕에 더 번지진 않았지만, 남은 불을 확실히 마무리해야 했다.

특수진화대원과 예방진화대원 모두 갈퀴를 들었다. 모두 허리를 숙인 채, 낙엽을 긁고 땅을 파냈다. 체력이 소진되어 갈퀴질이 힘들었다. 곳곳에서 신음이 터졌다. “엇, 뜨거워!” “어우, 힘들어레이.” “아이고, 허리야.” “아유, 눈 따가버라.”

오전 5시 30분

동이 틀 무렵에야 신음이 멈췄다. 오전 5시 30분쯤 뒷산의 불을 모두 껐다. 재성 씨는 곁에서 함께 일한 예방진화대원들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전국 지자체별로 모두 9064명의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 있다. ‘전문’이라는 호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4개월 단기 계약직이다. 평균 연령 61세의 지역 주민들이 그 일을 맡는다.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을 주로 맡지만, 이번처럼 큰 산불이 발생하면 고령의 예방진화대원들도 진화 작업에 투입된다. 특수진화대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방진화대원들에겐 특수진화대원이 쓰는 고글이나 방염 헬멧이 지급되지 않는다. ‘산림청’이라고 적힌 붉은색 공사장 헬멧만 쓴다. 그런 장비는 예방진화대원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들을 인솔하는 공무원은 수시로 특수진화대원들에게 부탁한다. “어르신들을 잘 챙겨달라”고 말한다.

오전 7시, 경북 영주

재성 씨는 타고 왔던 진화 차량으로 경북 의성 지휘본부에 갔다. 뒤이어 투입될 특수진화대원들과 인수인계를 했다. 다시 산불진화차를 타고 영주 국유림관리소에 도착하니 오전 9시였다. 장비를 점검했다. 신발과 갈퀴에 묻은 재를 털었다. 샤워를 했다. 오전 11시, 집에 도착하여 쓰러지듯 잠들었다.

낮 12시

그 잠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잠든 지 한 시간 만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산불 신고 문자였다. 경북 영주에서 불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살펴보니, 할아버지 댁에서 1km 떨어진 곳이었다. 몸조심하라고,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던 할아버지가 그 집에 계실 터였다. 재성 씨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2편에서는 계속되는 산불을 진화하러 나선 3월 24일과 25일의 현장을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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