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SNL 코리아 리부트 시즌6
지난 2일 에스엔엘 코리아 시즌6(이하 ‘SNL6’)이 1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쿠팡플레이(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공개된 SNL6에는 전종서, 문상훈, 김의성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이 출연했다. 쿠팡플레이는 SNL6의 모든 회가 쿠팡플레이 인기작 순위 1위에 올랐고 전 시즌 대비 시청량이 142% 상승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11월 8일 기준, 쿠팡플레이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온 SNL6 본편 하이라이트 영상 27개의 평균 조회수는 89만 회를 기록했고, 12개가 조회수 10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SNL코리아의 뿌리는 미국 NBC의 코미디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이다. SNL은 1975년부터 현재까지 50시즌 동안 제작된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매회 새로운 출연자(호스트)와 고정 출연자(크루)들이 콩트를 펼친다. 포맷을 수입한 SNL코리아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tvN에서 시즌9까지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2021년부터 쿠팡플레이로 제작사를 옮겨 리부트라는 타이틀 아래 시즌6까지 방송했다. SNL코리아는 ‘브레이크 없는 고품격 풍자, 초특급 웃음 SNL 코리아, 오직 쿠팡플레이에서’라고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브레이크 고장 난 풍자 코미디
‘이 영화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회사 및 단체, 그밖에 일체의 명칭 그리고 사건과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지난 9월 14일 공개된 3화의 한 코너가 시작할 때 나온 문구이다. 해당 코너에서는 ‘T-Day’라는 가상의 영화가 나온다. 성격유형검사인 엠비티아이(MBTI)에서 이성적(T)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감성적(F)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려는 내용의 영화다. 3화 호스트 곽동연은 극 중에서 “여자 친구한테 머리통을 맞고 창T개명을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MBTI의 T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F 성향의 사람들을 몰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고 구호를 외치며 사진 찍는다. 창T개명은 창씨개명을, T 성향의 사람은 독립운동가를, F 성향의 사람은 일제를 패러디한 것이다. 창씨개명은 1939년 일제가 우리의 민족의식을 없애기 위해 시행한 민족 말살 정책 중 하나로,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이름 사용을 강요한 사건이다.
해당 코너의 제작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엠비티아이 유행에 관한 사회 현상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슬픔과 분노로 기억해야 할 역사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 또한 제작진의 의도였을까. 여기서 제작진은 문구 하나로 면죄부를 얻는다. ‘허구로 창작된 것’이며, ‘실제와 같은 경우라도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말로 제작진은 방송 내용의 책임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SNL코리아는 ‘브레이크 없는 풍자를 통한 초특급 웃음’을 프로그램의 모토로 삼았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웃음 소재로 끌어올 만큼 이번 시즌엔 풍자의 대상이 없었을까. 김건희 여사 특검, 대통령 공천 개입, 의정 갈등 등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많았다.
SNL 코리아는 시즌마다 당시 정치 현안을 꼬집으며 웃음을 줬다. 2011년 SNL 코리아에는 BBC의 어린이 프로그램 텔레토비를 패러디한 ‘여의도 텔레토비’가 방영됐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당시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을 텔레토비 캐릭터로 풍자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쿠팡플레이로 터를 옮긴 후에도 윤석열 대통령, 김 여사, 김혜경 등 정치적 인물들을 패러디하고, ‘입틀막 사건’을 재현하는 등 풍자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이번 시즌 ‘근황쳌’, ‘맑눈광이 간다’ 코너에서는 조국, 안철수, 황교안 등의 전·현직 정치인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심여야식당’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패러디한 코너로, 윤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으로 분장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이 명품백 선물을 가지고 언쟁하자 식당 주인은 "다들 사사로운 일들에 너무 열 내지 마라"며 만두를 서비스로 준다. ‘국립 아이돌’ 코너에서는 정부가 만든 아이돌 ‘뉴진숙’이 등장해 ‘첫 시추는 계획대로 될 거야’라는 정부 정책을 풍자한 노래를 부른다. ‘140억 배럴’, ‘석유’ 등의 가사로 동해 석유 시추 관련 논란을 담아냈다.
SNL6은 매회 각기 다른 내용과 형태의 코너 7개로 구성된다. 정치 이슈를 적극 다루고 풍자한 코너는 회당 1~2개였고, 76분 남짓의 방송 시간 중 평균 7분을 관련 코너에 할당했다. 그렇다면 남은 70여 분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풍자를 빌미로 특정 인물을 희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웃음은 엉뚱한 곳을 향했고 풍자에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희화화와 조롱 난무해
SNL은 19세 이상 시청 가능 콘텐츠이다. 당연히 성(性)에 관련된 내용도 주요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내용을 성에 관한 내용으로 채우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 없이 자극적으로 반복되는 성 이야기는 ‘고품격 풍자’도 ‘초특급 웃음’도 될 수 없다. SNL6에는 불쾌하기만 한 성 소재 개그가 거의 매회, 모든 코너마다 나온다. 여성 호스트가 나올 땐 몸매 부각, 성행위를 묘사하는 발언과 행동,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의 줄임말) 구도로 여성들이 서로 견제하며 남자를 유혹하는 내용 등을 넣었고, 남성 호스트가 나올 땐 남성 출연자 간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하며 출연자들은 웃거나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 tvN 드라마 ‘정년이’를 따라 하며 미성년자 캐릭터인 ‘정년이’를 성희롱한 장면이 가장 큰 논란으로 떠올랐다. 지난 26일 SNL6 9회는 1950년대 여성국극 배우의 꿈을 꾸는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정년이'의 오디션 장면을 재현했다. 정년이, 초년이, 난년이 등의 캐릭터가 등장해 국극 연기를 펼쳤다. 안영미는 '젖년이' 캐릭터로 등장하며 가슴을 양손으로 부각했고, “이리 오너라 벗고 하자”, “붕가 붕가” 등의 표현을 통해 성행위를 묘사했다. 이를 본 코미디언 정이랑은 “보기만 해도 임신할 것 같다”며 "출산 정책에 도움이 될 듯하다"라는 대사를 했다.
지난 19일 공개된 8회 ‘국정감사’ 코너에서 지예은은 뉴진스 하니의 머리와 유사한 가발을 쓰고 하니가 ‘푸른 산호초’를 부를 때 입었던 의상과 비슷한 옷을 입고 등장했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하니를 연기하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출석하게 됐다"고 우는 모습을 따라 했고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흉내 냈다. 다른 코너에서 김아영은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를 연기했다. 김아영은 구부정하게 앉아 게슴츠레 눈을 뜨고 느린 속도로 수상소감을 말했다. 특정인의 외모와 말투, 자세 등을 웃음의 소재로 삼으며 직장 내 괴롭힘 문제나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내용으로 인해 국민신문고에 SNL코리아를 제재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되곤 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 불가' 결정을 내렸다. SNL 코리아는 OTT 콘텐츠라 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자극으로 점철된 코미디, 변해야 살아남는다
SNL6 유튜브 영상 댓글에는 조롱과 풍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SNL코리아 제작진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달렸다. 단순히 생김새와 말투, 언행을 따라 한다고 풍자가 아니다. SNL 코리아는 풍자의 선이 아닌 조롱의 선을 넘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개그는 개그로 봐.’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어떤 개그로 상처와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그가 아니라 괴롭힘이다. 코미디 제작자, 예능 제작자는 누구 못지않게 민감한 사회 감수성, 공감 능력을 지녀야 한다.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조롱거리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
SNL코리아는 2021년 ‘주 기자가 간다’ 코너에서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인터뷰했다.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신다면 SNL이 자유롭게 정치 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건가요?”라는 주현영의 질문에 윤 후보는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SNL의 권리입니다.”라고 답한다. 자유롭게 풍자할 권리는 권력자의 허락에서 나오지 않는다. 풍자는 약자가 아닌 기득권층과 강자를 향할 때, 그리고 소재 선택의 이유와 메시지가 있을 때 비로소 유머의 빛을 발한다. 풍자가 아닌 조롱으로 느껴지는 건 그 대상이 적합하지 않거나 사유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풍자를 풍자답게 풀어낸다면 풍자할 권리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