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아노라’

※영화 ‘아노라’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필자는 정식 개봉 이전인 10월 26일 특별 상영 관람 이후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영화 '아노라' 국내 정식 개봉일은 2024년 11월 6일입니다. 

‘이방인’과 ‘아노라’

‘아노라’ 역을 맡은 미키 매디슨. 출처 IMDB
‘아노라’ 역을 맡은 미키 매디슨. 출처 IMDB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현대 문학 사상 이해할 수 없는 남자 중 하나로 꼽히는 ‘뫼르소’가 떠올랐다. 작렬하는 햇빛 때문에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뫼르소는 법정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범죄 행위에 대한 단죄보다 살인 행위 이전부터 그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흠결 있는 인물인지를 입증하려는 배심원들의 열띤 토론이었다. 그 과정에서 뫼르소라는 존재는 타자화되어 소멸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까뮈는 대상 없는 재판, 더 나아가 대상이 사라진 현대 사회의 공론장은 얼마나 공허하고 부조리한지 꼬집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여기에 결혼, 노동자, 그리고 사랑이라는 축을 넣었을 뿐.

션 베이커는 누구인가

영화 ‘아노라’로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 감독. 출처 IMDB
영화 ‘아노라’로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 감독. 출처 IMDB

‘아노라’는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을 만든 션 베이커 감독의 최신작이자, 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국내 관객에게는 그중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잘 알려져 있다. 주로 이민자, 성 노동자 캐릭터를 스크린 전면에 배치해 질문을 던지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가 이번에 연출한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주인공이 일하는 스트립 클럽의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가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명확히 짚고 넘어간다. 그렇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트립 댄서로 일하고 있는 아노라(미키 매디슨)다. 어느 날 그녀에게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크 에이델슈타인)이 찾아온다. 첫 만남 이후 그는 자신이 사는 저택으로 아노라를 초대하고 그녀도 이에 응한다. 몇 번의 베드신이 보여지고, 그들의 계약 관계가 성립된다. 아노라가 ‘1만 5천 달러’를 받는 대신 이반의 일주일 여자친구가 되는 것. 축제 같은 광란의 하루하루가 지나 정해진 일주일이 다 되어갈 무렵, 돌연 이반은 아노라에게 청혼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결혼은 결혼이다

결혼 직후의 아노라와 이반. 출처 IMDB
결혼 직후의 아노라와 이반. 출처 IMDB

영화는 이반을 철부지로 그린다. 아버지의 저택에서 매일같이 파티를 열고, 심심하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도박을 한다. 심지어 마약에도 손을 댄다. 아노라와의 결혼도 이런 삶을 뒤로한 채 러시아로 돌아가 재벌 아버지 기업에 입사하기 싫어서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아노라와 결혼하면 그 자신에게도 영주권이 나오므로. 그렇다고 해서 아노라가 수동적으로 그 청혼을 허락한 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능동적이었다. 너보다는 돈이 좋아 결혼한다는 식의 대사라든가, 결혼반지는 다이아몬드 몇 캐럿 이상이어야 한다든가의 발언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말이다. 둘 사이 일종의 끌림이 전제되었다고는 볼 수 있으나 진정한 사랑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어찌 됐든 둘은 정식으로 결혼한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둘은 법적 부부관계라는 것. 둘 사이 목적이 달랐어도 결혼은 결혼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성 노동자인 아노라에게 이것이 얼마나 불리한 것인지, 그리고 이를 그녀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한 차례의 베드신 직후 ‘나와 결혼해 주겠어.’라는 이반의 대사는 그가 프레임 아웃(Frame-Out)을 한 후 발화된다. 결국 프레임 안에 남겨진 사람은 아노라 뿐이다. 그 후 꽤 오랫동안 카메라는 남겨진 아노라를 응시한다. 이 지점은 러시아 재벌 2세의 아내가 된 스트립 댄서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매듭짓는 구간이자, 앞으로 그녀가 철저히 고립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과도 같다. 로맨틱한 장면에 쓸쓸함을 슬쩍 밀어 넣는 재주라니.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사라진 ‘이반’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아노라와 이반 가족의 하수인들. 스틸컷 출처 IMDB
사라진 ‘이반’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아노라와 이반 가족의 하수인들. 스틸컷 출처 IMDB

결혼 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지만, 이반의 결혼 소식이 이반 패밀리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급변한다. 이반의 가족이 미국으로 날아오고, 이반의 감시자 역할을 맡은 토로스(카렌 카라굴리안)와 가닉(바체 토브마시얀)이 그의 저택으로 달려온다. 이 상황을 못 견디는 우리의 철부지, 이반은 자신의 아내 아노라를 저택에 버려둔 채 도망친다. 아노라는 이반을 다시 만나 어떻게든 결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 영화는 도망친 이반을 잡으려는 자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모두가 ‘어딘가에 고용된 노동자’라는 점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트립 클럽 댄서인 아노라와 그의 동료들부터 이반 아버지 회사에 고용된 토로스와 그의 동생 가닉, 그리고 의문의 남성 이고르(유리 보리소프), 심지어 저택을 청소하는 청소부까지. 노동자와 또 다른 노동자 사이 긴장 관계를 찾아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 요소이다. 이를테면, 재벌가의 성 노동자 며느리를 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이반 패밀리를 위해 일하는 토로스와 이반과 전격적으로 결혼한 아노라 사이의 관계가 그러하다.

토로스는 아노라에게 험담도 서슴지 않는다. 이반이 아노라를 사랑할 리 없고, 아노라가 이반을 꾀어 결혼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당연히 아노라가 성 노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토로스는 재벌가의 하수인으로, 이반과 아노라의 결혼을 무효화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토로스는 필사적이다. 만약 이반과 이혼하면 아노라에게 상당한 현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이것으로도 부족한지 결혼 당사자인 아노라에게 ‘당신은 결혼 무효화에 대한 발언권이 없다’고도 말한다. 그저 이것은 정해진 순리이며, 권력 사다리의 아래에 위치한 사람은 언제나 힘 있는 사람들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처럼.

당사자를 소외시키고, 타자화하려는 시도가 같은 노동자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것도 아이러니칼하다. 소설 ‘이방인’에서는 뫼르소의 범죄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우월적 지위의 배심원들에 의해 뫼르소가 일방적으로 해석되고 판단되었다면, 영화 ‘아노라’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 각각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동일했다. 아노라는 결혼을 지키고 싶어 했지만, 결국 이반과 이혼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수모를 겪고도 왜 아노라는 이 결혼을 지키고 싶어 했을까?’

애니이자 아노라, 그리고 배리어이자 워리어

‘이고르’역을 맡은 유리 보르소프. 출처 IMDB
‘이고르’역을 맡은 유리 보르소프. 출처 IMDB

극 중에서 아노라는 토로스가 그녀의 이름을 아노라라고 부를 때, 자신의 이름은 애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외국 이민자 출신임을 드러내는 아노라보다는 미국식 이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아노라’라고 당당히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반의 엄마를 처음 마주할 때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러시아 재벌가의 정식 며느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아노라였다. 그래서였을까. 우즈베키스탄 이름인 아노라를 당당히 말함으로써,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시도였을까. 물론 이는 처참히 실패하고 만다. 그녀를 경멸하는 이반 엄마의 눈빛과 함께.

영화 속 ‘애니’와 ‘아노라’라는 두 개의 이름에는 감독이 의도가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반 패밀리의 하수인인 이고르는 아노라를 무사히 그녀가 원래 살던 집까지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받는다. 그리고 중간 어느 숙소에서 머물 때, 이고르는 ‘아노라’라는 이름의 의미를 물어본다. 이에 대해 아노라는 자기 이름의 의미는 ‘빛’, ‘밝다’, ‘석류’의 의미를 가진다고 답한다. 이 대목은 은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이 원산지인 ‘석류’가 온 유럽 대륙에 퍼졌듯, 그것은 ‘이민자’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고, 그녀가 종사하는 산업의 윤리적 문제를 떠나 그녀가 그녀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고르’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도 그녀의 대답 이후 말한다. 이고르는 “배리어 아니 워리어”라고. 말 그대로 아노라를 감싸는 보호막. 아니, 전사라고 말이다. 즉 그는 그녀의 수호자였다.

사실상 아노라와 이고르 간 미묘한 긴장관계는 첫 만남부터 형성됐다. 갑작스러운 이반의 도주 이후 등장한 이고르와 저택에 버려진 아노라와의 시간을 영화는 섬세하게 묘사한다. 흥분한 아노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고르가 냅다 안아버린다거나, 아노라가 궁지에 몰렸을 때 나서서 행동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그 둘의 묘한 관계를 담아낸다. 투박하지만 순수한 이고르의 행동은 달콤하지만 파괴적인 이반의 행동과 대비된다. 계약 관계에 의해 이반을 위해 일하지만, 그는 아노라를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러한 성격이 극대화되는 장면은 그가 아노라에게 이반과의 결혼반지를 돌려주는 장면이다.

그녀의 탐욕을 상징하는 것 같은 다이아몬드 결혼반지가 토로스와 그의 일당에게 빼앗겼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통쾌함이라기보단 무력감이었다. 이반 패밀리의 돈으로 산 물건이니, 당신에게는 이것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말과 함께 반지가 아노라의 손가락에서 떠나가는 순간, 영화는 폭력이 자행된 폐허를 본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느껴지지만, 정확히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 당시에는 이해가 어려웠다.

반지가 이고르로부터 아노라에게 옮겨가는 순간, 우리는 단번에 한 가지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는 이 행위를 통해서 그녀의 무언가를 지켜주고 싶었다는 것. 그건 아마 결혼반지 혹은 결혼으로 상징되는 ‘인간으로서 존엄’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해석한다면, 아노라가 왜 그렇게 결혼을 지키고 싶어 했는지도 설명 가능해진다. 그녀는 사라진 남편 찾기를 통해, 미래의 보장된 부(富)를 쟁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후 아노라는 이고르를 유혹한다. 스트립 클럽에서 다른 남성을 유혹하던 눈빛을 장착한 채. 차 안에서의 정사신이 벌어지려는 찰나 이고르는 아노라에게 키스를 한다. 그 순간 아노라는 갑자기 주먹으로 이고르의 가슴을 내려친다. ‘남편 찾기’를 통해 그간 당했던 모진 폭력을 그에게 돌려주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리고 그 가슴에 묻혀 울음을 터트린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우리는 이 신의 감정의 폭발적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를 위해 아노라가 이반과의 베드신에서 했던 말을 끌어와야 한다. 급하게 덤벼드는 이반에게 아노라는 말한다. ‘템포를 늦춰야 더 즐겁게 할 수 있어.’ 어쩌면, 이고르는 키스를 통해 자기 사랑의 템포를 늦추려고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그녀와 더 즐겁게 사랑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마주한 아노라에게도 감정의 폭풍이 몰아쳤을 것이다. 성적인 대상, 그리고 멸시의 대상으로만 자신을 바라보던 세상 속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녀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녀의 울음은 이 대상에 대한 고마움이었을까, 안도였을까.

기대되는 그의 행보

션 베이커 감독은 토론토 국제 영화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희가 다루는 주제에 관해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반적인 권력 구조(power dynamics)나 성 노동(sexual working)에 대해서요.” 마치 알베르 까뮈가 ‘이방인’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무의미한 공론장에 대해 질문을 던졌듯, 션 베이커는 관객들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속에서 부조리한 권력 구조와 인간 존엄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도 성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차기작에선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드러낼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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