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흑백요리사: 계급 전쟁’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달 17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이 이달 7일 최종 우승자가 결정되며 막을 내렸다. 이 프로그램은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코리아 예능이 3주 연속 글로벌 1위를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에 능한 80명의 ‘흑수저’ 셰프와 요식업계에서 이미 명성을 얻은 20명의 ‘백수저’ 셰프가 경쟁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시하는 편인데, ‘이븐’(even)하게 되었다”라는 심사위원 안성재의 발언은 인터넷에서 밈으로 퍼졌고, 안대를 쓰고 음식을 평가하는 백종원의 모습도 화제가 되었다.
‘흑백요리사’의 성공 이유는 다양한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출연진의 화제성, 다채로운 요리 과정과 결과물, 심사위원의 다양한 평가, 승자를 결정하는 서바이벌 포맷의 재미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은 현대 사회의 계층 구조와 인간의 욕망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한국 요식업계의 현실을 반영했다. 이번 미디어 비평에서는 주요 장면과 구성 방식 분석을 통해 프로그램이 요리 경연 이상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흑수저들 간의 경쟁, 계층 이동과 경쟁 사회에 대한 은유
‘흑백요리사’의 가장 큰 특징은 ‘흑수저’와 ‘백수저’라는 설정이다. 백수저는 요식업계에서 명성을 얻은 유명인들이다. '마스터셰프'라는 프로그램에서 고든 램지와 함께 심사위원을 맡았던 ‘에드워드 리’, 세계중국조리사 국제심사위원 ‘여경래’, 한국 최초의 여성 중식 스타 셰프 ‘정지선’, 한식대첩 심사위원 출신인 ‘최현석’ 등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반면, 80명의 흑수저는 닉네임으로 출연한다. ‘중식 여신’ ‘유비빔’ ‘요리하는 돌아이’ ‘트리플 스타’ ‘급식 대가’ 등으로 백수저만큼 명성은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로 이름난 사람들이다.
첫 라운드에서는 20명의 백수저와 맞설 기회를 얻기 위해, 80명의 흑수저 요리사들이 서로 요리 대결을 펼친다. 이들은 백수저의 권위에 의문을 품고,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태도에 불만을 드러낸다. 그러나 “룰에 반대하는 사람은 먼저 떠나도 좋다”는 말에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 대결 구도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을 연상시킨다. 현실 세계에서의 계층 이동의 어려움과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도,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메시지는 한국 사회의 공정과 경쟁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흑과 백 단순함이 주는 매력, 음식의 본질 ‘맛’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뉜 단순한 구도는 프로그램에 매력을 더한다. 심사위원들 역시 흑과 백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음식 사업의 정점에 있는 백종원은 흑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한국 유일의 미쉐린 3스타 오너 셰프 안성재는 백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첫 라운드 참가자들의 주 종목은 한식, 중식, 일식, 이탈리아 요리, 파인다이닝, 급식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심사위원 2명이 오로지 맛으로 생존, 보류, 탈락을 결정한다. 서로 다른 나라의 음식에 대해서 어떻게 우열을 가릴 것인지 논할 필요도 없게 된다. 거리엔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들이 공존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오직 ‘맛집’인지 아닌지만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시청자들은 흑과 백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합니다"라는 백종원의 말처럼, 두 눈을 가린 채 음식을 평가하는 장면은 백수저와 흑수저를 동등하게 다룬다는 신뢰를 제공한다. 이 설정은 ‘진짜 맛’만으로 평가할 때, 흑수저도 충분히 백수저를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시청자들의 믿음을 자극하는 장치이다. 이 설정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중식의 대가 백수저 셰프 ‘여경래’와 배달원 출신 흑수저 셰프 ‘철가방 요리사’의 대결이었다. 과연, 무명의 흑수저 셰프가 중식의 정점에 있는 백수저 셰프를 이길 수 있을까? 결과는 2:0으로 흑수저 셰프의 승리였다.
맛으로만 평가하지 않는 삶과 멋
철가방 요리사는 중식 요리사로서 백수저인 여경래 셰프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그에게 대결을 청할 때도 절을 올렸고, 승리 후에도 큰절을 올렸다. 여경래 역시 큰 박수와 함께 후배에게 악수를 건넸다. 시청자들은 이 모습에 깊이 공감하며 지지했다. 여경래와 철가방 요리사의 대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맛’만으로 요리사를 평가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단순히 음식의 맛으로 요리사에 대한 모든 것이 평가되기를 기대하는 것인가? 흑이 백을 이기는 순간, 이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맛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삶의 멋을 느끼게 했다.
철가방 요리사의 승리가 감동을 준 이유는, 그 속에서 시청자들이 자신의 삶을 투영한 도전의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여경래와 철가방 요리사의 대결은 ‘맛’과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이후 ‘흑백요리사’에서 각자의 인생을 요리로 표현하는 대목은 그래서 효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게 된다. 더는 흑과 백의 대결 구도로만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요리사 각자가 지닌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음식에 담긴 철학과 인간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프로그램 후반부에서는 ‘흑과 백’의 대결 구도가 프로그램을 이끄는 핵심이 아니었다. 흑과 백이 1:1 대결을 모두 마친 후 프로그램은 팀 대결 구도로 새로운 재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4라운드, 흑백 혼합 팀전에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룰 설정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시청자들은 무엇에 아쉬움을 느꼈을까?
비판받은 팀 방출 구성, 오히려 요식업계 현실을 더 담아내
4라운드 흑백 혼합 팀전은 흑수저, 백수저 셰프들이 혼합으로 팀을 구성해 ‘먹방’ 크리에이터들을 손님으로 맞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미션이었다. 매출이 가장 높은 팀은 전원 생존하고, 꼴찌는 전원 탈락하는 방식이었다. 준비 시간은 24시간이 주어졌고, 팀 리더는 사전 투표로 선정된 ‘트리플스타’ ‘최현석’ ‘에드워드 리’ 3인이 맡았다. 각 팀은 메뉴를 선정하고 재료까지 모두 준비한 상태에서 갑자기 추가 미션이 주어졌다. ‘팀에서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참가자 1명씩을 투표로 방출하라.’ 이 미션에 따라 ‘철가방 요리사’ ‘안유성’ ‘만찢남’이 방출됐다. 철가방 요리사와 만찢남은 자원했으나, 안유성 명장은 투표로 밀려나 팀을 떠났다.
방출된 3명은 새로운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된다. 재료 준비는 다른 팀보다 늦었고, 인력과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도움은 없었다. 이는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 결성된 팀은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해야 했고, 어려움 속에서 도전을 이어갔다.
시청자들은 이 설정을 보며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말 실력만으로 승부한다면, 왜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시청자들은 방출된 인원들이 이를 역이용해 역전을 노리는 반전 드라마를 기대했지만, 공정한 경쟁을 내세운 프로그램인 만큼 어느 정도의 혜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오히려 한국 요식업계의 현실을 더 잘 담아냈다. 최현석 셰프는 매출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규칙에 따라 비싼 메뉴를 선정했다. “여기는 특수한 상권이에요.”라는 그의 말과 함께, ‘랍스터 마라짬뽕’과 ‘캐비어 알밥’ 같은 고가 메뉴를 선보였다. 방송국이 평가 시식단에게 충분한 식비를 지원할 것이라 예상하며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최현석 셰프의 팀은 안정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방출된 3인으로 구성된 팀은 자신이 잘하는 요리를 적정한 가격에 제공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전략 없이 추진한 레스토랑은 결국 가장 낮은 매출을 기록해 탈락했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요리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상권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메뉴를 수정하며 끊임없이 대응해야만 한다. 백종원이 잔반 처리장에서 음식을 맛보고, 정지선 셰프가 잔반통을 확인하는 모습, 에드워드 리가 손님의 피드백을 반영해 요리를 수정하는 장면들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결국 프로그램은 한국 요식업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공정한 경쟁의 아이러니,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흑백요리사'는 요리 경연을 통해 세상의 공정함과 불공정함,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매출 평가 방식에서 방출된 팀이 처한 불리한 조건은 공정 경쟁의 이상에 어긋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요식업계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쟁이 항상 공정하지 않으며, 기회와 전략의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흑백요리사'는 요리 프로그램을 넘어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흑과 백, 실력과 전략, 공정과 불공정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선택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질문은 요식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도, 우리가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