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충북 제천시 원도심 재생 사업 점검
지난 2016년, 충북 제천시는 13억 원을 들여 중앙시장 2층에서 이른바 ‘청FULL몰’ 사업을 진행했다.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해 주는 이 사업을 통해 12개의 점포가 들어섰다. 하지만 서서히 점포가 빠지기 시작했고 2021년이 되자 점포 하나만 남았다. 이런 상황은 <단비뉴스>를 통해 자세히 보도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떨까?
지난달 초 방문한 중앙시장 2층은 텅 비어 있었다. 마지막 점포도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 제천시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따라 식도락카페가 들어섰다 운영을 중단했고, 지금은 상권르네상스 사업을 통한 원도심 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다. 도대체 원도심 재생 사업이 제대로 성공하는 사업 없이 계속 새로운 이름의 사업들로 옷만 바꿔입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도심 상권에 만든 ‘스타점포’ 9개 중 3개 폐업
청년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해 주겠다며 시작한 청FULL몰 사업이 실패로 끝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문을 열었던 12개 청년 점포 가운데 살아남은 곳은 하나도 없지만 원도심 재생 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제천시가 곧바로 새로운 사업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제천시는 2020년 11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4차 상권르네상스 사업에 선정됐다. 이후 제천시는 제천문화재단 산하에 만든 르네상스 사업단을 통해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을 진행했다.
제천시 르네상스 사업단이 2021년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스타점포’ 사업이었다. 스타점포 사업은 청년 사업의 일환으로 본인이 10%를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최대 3000만 원 한도 내에서 중앙시장 안의 빈 점포와 맞춤형 컨설팅, 인테리어 등 초기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다. 사실상 이전에 실패했던 청FULL몰 사업과 내용은 비슷하다. 사업 이름과 함께 중앙시장 입구에 있던 간판만 ‘청FULL제천몰’에서 ‘중앙시장 먹자골’로 바뀌었을 뿐이다.
스타점포는 2021년부터 3년에 걸쳐 총 9개를 선정했다. 그런데 단비뉴스가 지난달 초 현장을 찾았을 때, 스타점포 간판이 붙은 점포 3개는 문이 닫혀있었다. 르네상스 사업단이 ‘모아키친’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중앙시장에서 진행하는 공유주방 사업에서도 4개의 점포 가운데 하나는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홍석종 르네상스 사업단 단장은 "스타점포는 앞으로 추가 모집할 계획이 없지만 르네상스 사업의 일부로 내년에 스타점포와 비슷한 성격의 '창업지원인큐베이팅 사업'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예산 4억 4000만 원 들인 식도락카페도 운영 중단
청년들이 떠나고 방치된 중앙시장 2층엔 재작년 2월 새로운 사업인 '식도락카페'가 들어섰다. 제천시청 도시재생과에서 직접 주관한 이 사업은 다애봄협동조합이 위탁 운영했다. 식도락카페의 차별화된 테마는 '영화'였다. 사업계획서에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연결고리로 삼아 전통시장 활성화를 시도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 1일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이향연 도시재생과 주무관은 "기존에 운영을 맡았던 협동조합 측에서 경영난과 적자 발생으로 인해 운영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7월 17일까지 새로 운영할 사람을 1차 모집했으나 지원자가 없어 2차 모집 중"이라고 말했다. 운영난의 원인으로는 적은 유동 인구와 주차난이라고 덧붙였다. 사업계획서에 적어놓은 ‘시장의 유동인구’를 활용하려던 기대가 빗나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행정사무 감사 결과를 보면, 식도락카페의 지난해 8월과 10월 매출은 각각 0원이었고, 9월 매출도 6000원뿐이었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운영자를 바꾼다고 식도락카페의 운영난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식도락카페에 들인 총사업비는 4억 4000만 원이었다. 사업계획서를 보면 제천시는 식도락카페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교육, 지역 아동 뮤지컬 제작, 고등학생 대상 직업체험 프로그램, 취약계층 도시락 나눔 등 폭넓은 사업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예산서를 받아본 결과, 대부분의 예산은 인테리어 비용에 쓰였다. 약 2억 600만 원이 점포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정작 시장 상인 등을 대상으로 한 역량 강화 교육이나 콘텐츠 개발 비용으로는 2600만 원 정도가 쓰였다. 올해 초 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에서도 자본이나 시설 투자보다는 주민들에게 홍보를 하라고 권고했다.
“원도심 재생의 답은 기존 상권과의 상생”
상권르네상스 사업은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시장이나 상점가, 지하상가, 상업지역 등을 하나로 묶어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전통시장과 상점가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도시 재생 사업이다. 제천시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의 활동 기간은 내년까지지만 3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제대로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사업은 없다.
같은 르네상스 사업에 선정된 곳 중 인천광역시 중구가 있다. 그중에서 개항로는 원도심 재생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거듭났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원도심 재생 사업의 성공 사례로 개항로를 제시하며, 옛것과 새로운 것이 상생하는 형식을 성공 전략으로 꼽았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이창길 대표가 기존에 있던 지역 자원을 살려 오래된 점포들과 새로 들어서는 점포들을 함께 공존시키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옛것과 새로운 것의 상생을 통해 원도심 재생에 성공한 곳은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 교수는 일본의 중앙부에 있는 나라시의 '유메큐브' 사업을 이런 성공 사례로 꼽았다. 유메큐브는 제천과 비슷하게 재래시장 안에 있는 9개 상점에 청년 상인들을 입주시켜 이들에게 장사할 기회를 제공해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취지의 사업이다. 정 교수는 유메큐브 사업이 성공한 것은 기존 재래시장 상인들과 젊은 상인들의 소통과 조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업 선정 이후 체계적인 사후관리 중요
청FULL몰 사업에 참여해 식당을 운영했던 한 청년상인은 2019년 단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사업이 실패한 원인으로 겉치레식 사업과 사후지원 부족을 꼽았다. 시에서 사업을 벌여놓기만 하고 정작 성공을 위한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도시재생이라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섬세하고 장기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원도심 재생 사업이 실패하는 이유가 사후관리나 정성 없이 행정적 지원만 해주고 손을 놓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청년들이 새로운 생태계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서 열매를 맺기까지 지속적으로 돌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청FULL몰 사업에 참여했던 청년상인이 지적한 문제는 개선이 되었을까? 하지만 제천의 원도심 재생 사업은 그 뒤로도 수년째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사업을 벌여놓기만 하고 후속 관리나 지원은 없이 실패하면 또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한 스타점포 관계자는 “사업단 측에서 홍보 정도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사업단 측도 “주기적으로 매달 점포를 방문해 매출액을 받아보고 홍보해 주는 정도의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천 르네상스 사업단은 내년에는 창업지원인큐베이팅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한다. 이 사업도 제천 원도심 상권에 있는 빈 점포에 가게를 입점시켜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외식 창업은 2000만 원 지원에 자부담 10%, 비외식은 1000만 원 지원에 자부담 10%이다. 스타점포 사업과 비교했을 때 초기 지원 금액이 1000만 원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같은 사업이다. 현재 중앙시장 내 추가로 입점이 예정된 점포들의 경우 창업지원인큐베이팅 사업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과연 이 사업은 이전의 청FULL몰, 스타점포 사업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