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4.6 기후시민열린광장

“기후위기로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는 게 점점 어려워져, 올해는 지자체가 정해둔 벚꽃축제 일정을 연기하거나 두 번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어요.”

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역 부근에서 열린 기후시민열린광장 행사에서 김상철(49) 기후위기비상행동 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사전투표 일정(5~6일)에 맞춰 기후위기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기후활동가와 시민 등 130여 명이 참가했다. 충남 천안과 울산광역시 등 전국 9곳에서도 별도의 ‘사전투표 대응 전국행동’이 진행됐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여의도 벚꽃축제는 지난달 29일 꽃이 채 피지 못한 상태에서 개막했고,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벚꽃축제는 개화 시기를 맞추지 못해 1차(3월 30~31일), 2차(4월 6~7일)로 나눠 진행됐다.

기후 대응 외치면서 토건 공약 남발하는 정치권

최글라렛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 김성재 기후위기부천비상행동 활동가, 나지현 육십플러스(60+)기후행동 대표,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대표로 ‘기후시민 선언문’을 읽었다. 선언문은 “정치, 경제적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점점 심각해지는 현재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모든 정당이 기후위기를 외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선 국제공항 건설과 같은 토건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언문은 이어 “우리는 정부와 정당들의 ‘척’하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에 맞서 분명하고 뾰족한 우리의 힘을 만들자”고 시민들에게 제안했다.

왼쪽부터 최글라렛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 김성재 기후위기부천비상행동 활동가, 나지현 60+기후행동 대표,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이 기후시민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하미래 기자
왼쪽부터 최글라렛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 김성재 기후위기부천비상행동 활동가, 나지현 60+기후행동 대표,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이 기후시민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하미래 기자

오후 2시 20분부터는 1에서 9까지 색색의 숫자판이 부착된 9개의 대형 원탁에 각각 대여섯 명이 모여 앉아 모둠 토론을 진행했다. 공통 질문인 ‘여기에 온 이유’ ‘참가자가 가져온 지역 선거공보물 내용에 대한 감정과 생각 나누기’ ‘기후시민으로서 기후정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 주요 토론 주제인 ‘22대 국회에 필요한 정책이나 입법 제안 활동은?’ ‘기후시민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에 관해 생각을 나눴다.

가은(24) 대학생기후행동 이화여대지부 활동가는 정책과 입법 과제를 주제로 한 5모둠 토론에서 “주위 대학생을 비롯해 20~30대 청년들은 경제적 이유로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기후재난에 취약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며 기후재난에 대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재숙(57) 기후위기부천비상행동 활동가는 “기후공약과 개발공약을 동시에 내는 정당들을 보면, 기후정책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위한 수단이고 결국은 개발공약을 우위에 두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은 대부분 10대 공약에 기후위기 의제를 담았지만, 신공항과 철도 건설, 재개발 규제 완화 등 개발공약도 많이 내놓았다.

사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가 진행을 맡은 5모둠의 참가자들이 ‘기후위기비상행동 22대 국회 과제’ 자료를 보며 토론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사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가 진행을 맡은 5모둠의 참가자들이 ‘기후위기비상행동 22대 국회 과제’ 자료를 보며 토론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재난 대비 안전망 구축, 녹색 후보 국회 입성 등 요구

토론을 마친 참가자들은 대형 종이에 토론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 모둠은 ‘기업의 환경 침해 행위 규제’ ‘사회 안전망 구축’ ‘녹색 후보 국회 입성’ ‘지역 기후시민 조직 강화’ 등을 기후정치 실현을 위한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오후 3시 50분부터 이어진 시민 자유발언에서 경기도 수원시에서 왔다는 전지은(35·직장인) 씨는 회사 식당에서 먼저 온 사람이 음식을 많이 덜어가 늦게 온 사람은 먹을 게 없었던 경험을 기후위기에 빗대, “음식을 더 많이 준비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음식을 적당히 먹고 선택에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 문제에서도 먼저 온 사람들이 쓰고 버린 것을 후대가 가지지 않도록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며 “기후와 정의를 연결하는 정치인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정치인들에게 정의로운 기후정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구로비상행동에서 활동하는 50대 여성 이상림 씨는 “기후정치가 실현되지 않는 건 정치권이 당사자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재선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또 발생한다면 지역의료는 충분한지, 폭우와 폭염에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해 봤는지 정치권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장시정 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 기획단장이 진행을 맡은 6모둠이 ‘기후시민이란’ ‘기후정치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세 주제에 관한 토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장시정 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 기획단장이 진행을 맡은 6모둠이 ‘기후시민이란’ ‘기후정치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세 주제에 관한 토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거대 양당 당사 앞에서 책임 있는 기후정치 촉구

“행진해 나갑시다!” 발언을 마친 참가자들은 인디(독립활동) 가수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제안을 신호로 행진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탈핵’ ‘탈석탄’ ‘기후총선’ 등이 쓰인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거나, 스테인리스 그릇, 종이 클래퍼 등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돈만 아는 저질’을 개사한 노래로 분위기를 띄웠다.

기후시민열린광장 참가자들이 ‘고통받는 생명 앞에 선택의 중립은 없다’ 등이 적힌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고 서울 여의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기후시민열린광장 참가자들이 ‘고통받는 생명 앞에 선택의 중립은 없다’ 등이 적힌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고 서울 여의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대열은 국회의사당역에서 약 4분 거리의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멈췄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기후위기특별위원회 홍지욱 위원장은 “과거 집권 세력이었고 지금도 다수당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기후위기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데 책임도 대책도 없어 보인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처장도 “시민들이 (민주)당을 계속 감시하고 지켜보고, 당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심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열은 이어 민주당에서 도보 5분 거리의 국민의힘 중앙당사로 향했다. 장시정 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 기획단장은 국민의힘을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장 기획단장은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등 반(反) 기후 공약만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서영 대학생기후행동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지부장도 연설에서 “4월 10일 기후유권자로서 투표하고, 적극적인 기후시민으로서 국회와 정부의 기후 감시자가 되자”고 말했다.

기후시민열린광장 행진 참가자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탈핵/탈석탄이 이룰 기후정치’라고 적힌 손팻말을 높이 들고 있다. 하미래 기자
기후시민열린광장 행진 참가자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탈핵/탈석탄이 이룰 기후정치’라고 적힌 손팻말을 높이 들고 있다. 하미래 기자

실크스크린 등 다채로운 사전 행사로 시민 참여 유도

한편 이날 행사는 플루트 연주 등 공연과 실크스크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으로 시민의 참여를 이끌었다. 율동 시간에는 ‘우리 모두 다함께 탈핵을, 우리 모두 다함께 탈석탄’ 등을 노래 부르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몸을 움직였다. 비단이나 나일론 등으로 판을 만들고 도안에 구멍을 내 ‘철도와 버스면 충분하다’ 등의 문구를 잉크로 찍는 실크스크린 인쇄는 특히 인기가 높았다. 국회의사당역 앞을 지나다 실크스크린 활동에 참여한 전광식(77) 씨는 “평소 기후위기에 관심이 좀 있는데,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걸 보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기후시민열린광장 사전 행사인 실크스크린을 체험하고 있다. ‘기후로 정치하자’ ‘원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원전? 됐그든요!’ 등 문구와 도안을 직접 천에 찍으며 즐거워했다. 전예나, 하미래 기자
시민들이 기후시민열린광장 사전 행사인 실크스크린을 체험하고 있다. ‘기후로 정치하자’ ‘원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원전? 됐그든요!’ 등 문구와 도안을 직접 천에 찍으며 즐거워했다. 전예나, 하미래 기자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특위 위원장은 행사를 마친 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후총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사전투표일에 행사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정치를 위해서는 ‘기후시민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무책임한 정치를 만든 것에 시민들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기후시민은 정치를 평가하는 역할을 넘어 기후정치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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