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3.16 에너지전환대회

“이 재난은 13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1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을지로입구역 일대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기후정의동맹 등 8개 단체 주최로 ‘후쿠시마 핵사고 13년: 에너지전환대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800여 명이 참여한 이 대회에서 탈핵부산시민연대 임미화 씨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오염수 방류 등을 통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선언문은 “폐허가 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의 깊은 지하에는 녹아버린, 뜨거운 핵연료가 그대로 있다”며 “그것을 식히느라 쏟아부은 오염수가 작년 8월부터 바다에 버려져 후쿠시마 노동자들이 피폭되고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13년째 진행 중

탈핵부산시민연대 임미화 씨(왼쪽 첫 번째) 등 6명이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에너지전환대회에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최원석 기자
탈핵부산시민연대 임미화 씨(왼쪽 첫 번째) 등 6명이 후쿠시마 핵사고 13주년 에너지전환대회에서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최원석 기자

최경숙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저지공동행동 상황실장은 연설에서 “오염수 안에 세슘137, 아이오딘159, 스트론튬90 등 방사성 물질들이 있다”며 “독은 물로 희석해도 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염수 해양투기를 멈추고 핵발전을 멈추라고, 일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이현숙 대표는 노후화한 국내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걱정했다. 그는 울산의 고리 1·3·4호기가 현재 수명 연장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정부가 40년 된 기계를 10년 더 쓰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며 지역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수탈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법안인데, 지역민의 입장을 무시하고 핵발전소 수명을 연장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 최대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BUND, 분트) 리처드 메르그너 회장과 후버트 바이거 박사도 단상에 올랐다. 지난 12일 후쿠시마를 방문했다는 메르그너 회장은 “1986년 체르노빌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력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너무나도 위험한 기술이라는 교훈을 남겼다”며 일본과 같은 첨단 기술국가도 원전 재앙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독일이 지난해 마지막 남은 원전 3기를 폐쇄함으로써 고도로 산업화한 국가에서도 탈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비결은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버트 바이거 박사는 “독일이 에너지 전환에 실패했다는 ‘가짜 뉴스’가 있는데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성공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욱더 많은 사람이 원자력의 통제 불가능성과 원자력 전체의 유해성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반핵 시민들이)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설 후 <단비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미래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핵에너지보다는 재생에너지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최대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BUND) 리처드 메르그너 회장(오른쪽)과 후버트 바이거 박사(가운데)가 독일의 탈핵과 재생에너지 전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최원석 기자
독일 최대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BUND) 리처드 메르그너 회장(오른쪽)과 후버트 바이거 박사(가운데)가 독일의 탈핵과 재생에너지 전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최원석 기자

기후정치 실종된 총선, 득표에만 골몰하는 후보들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4.10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기후정치가 실종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가) 큰 틀의 전망을 제시하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현재의 정치는 한 사회의 돌봄과 지속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득표, 정치 공약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녹색정의당 비례 2번 허승규 후보도 “지난 정부들과 현 거대 양당이 기후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기후정치가 실종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을 도둑 입법하지 말고,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에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행사를 마치며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퇴출 계획 마련,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 등을 정부와 각 정당에 요구했다.

3.16 에너지전환대회 참가자들이 행사 도중 공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최원석 기자
3.16 에너지전환대회 참가자들이 행사 도중 공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최원석 기자

‘시민은 은퇴가 없다’ 노년층도 결연한 행동

이날 본 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오후 2시부터 대회장 주변에는 에너지 공공성, 재생에너지, 탈석탄, 핵 오염수, 탈핵, 기후정치 등의 주제별 부스가 열려 참가자들을 맞았다. 에너지 공공성 부스 앞에서는 ‘가스 민영화 저지’라는 딱지를 쳐서 뒤집는 놀이가 벌어졌다. 한 참가자가 여러 차례 딱지를 치다 드디어 뒤집자 환호가 쏟아지기도 했다. 부스를 준비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종훈 조합원은 “천연가스는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며 “민영화되어 있으면 감축이 어렵고, 공공화되어야 자연스러운 전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참가자가 에너지 공공성 부스 앞에서 ‘가스 민영화 저지’ 딱지를 뒤집으려 애쓰고 있다. 그는 세 번째 시도에서 딱지 뒤집기에 성공했다. 최원석 기자
한 참가자가 에너지 공공성 부스 앞에서 ‘가스 민영화 저지’ 딱지를 뒤집으려 애쓰고 있다. 그는 세 번째 시도에서 딱지 뒤집기에 성공했다. 최원석 기자

핵 오염수 부스에서는 아이들이 문어 등 바다생물 그림으로 색칠 놀이를 했다.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의 박예진 활동가는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방출하니 시민들이 먹거리에 대한 불신을 갖는 것”이라며 “국내 농어촌 생산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바로 옆 부스에서는 아이들이 종이접기에 빠져있었다. 한 아이는 색종이로 접은 자주달개비꽃을 쥐고 뛰어다녔다. 자주달개비꽃은 원래 보라색인데 피폭되면 분홍색이나 흰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종교환경회의 김혜연(40) 활동가는 “자주달개비꽃은 방사능의 위험을 알려준다”며 시민들에게 자주달개비꽃 씨앗을 나눠주었다.

탈핵 부스에서 핵폐기물 지도 만들기에 참여한 하헌종(65) 씨는 ‘한빛 2호기’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망설이다 진행 요원이 힌트를 주자, 전라남도 영광군에 카드를 꽂았다. 그는 자신을 퇴직 교사이자 경기도 양평에 사는 녹색정의당원이라고 소개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무단투기 중단 피케팅을 홀로 하고 있다는 그는 자식 세대에게 느끼는 부채감을 털어놓았다.

“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성적과 경쟁을 강조했습니다. 그것도 미안한데 핵발전소는 늘어나고, 일본은 핵 폐수를 바다에 버립니다. 아이들의 지속 가능한 삶이 어려워지고 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양재경(68) 씨와 박영신(86) 씨는 행사장 바로 옆 인도의 긴 의자에서 ‘핵 진흥 정책 중단하고 안전한 사회로’라고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다음 해부터 ‘핵없세’(핵 없는 세상)라는 모임을 만들고, 기후위기와 탈핵을 외치는 행사를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박 씨는 “시민은 은퇴가 없다”며 “나이가 들었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목소리를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원내 정당들 10대 공약에 기후 의제 있지만”

국립기상과학원장 시절부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온 조천호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도 현장에 나왔다. 그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득권 정치·경제 세력 때문에 기후 담론이 떠오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 후보는 (기후위기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세상의 흐름 자체에 왜곡된 관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공장을 위해 핵발전을 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며 “기본적인 정보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정치가 문제”라고 말했다.

추진위원으로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지금 정치권에는 막말, 상호 비방, 공천 논란밖에 없다”며 “그나마 기후 이슈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4년 전에 비해 기후유권자라는 단어에 관심이 높아졌다”며 “원내 정당들의 10대 공약 안에 기후 의제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소장은 국민의힘 정책에는 사람이 없고 기술적인 해법만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로운 전환’을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행사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핵 진흥 정책 중단하고 안전한 사회로’ 등이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어 올리고 있다. 현수막에는 탈핵과 기후총선에 관한 참가자들의 다양한 생각이 적혀 있다. 최원석 기자
행사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핵 진흥 정책 중단하고 안전한 사회로’ 등이 적힌 손 팻말과 현수막을 들어 올리고 있다. 현수막에는 탈핵과 기후총선에 관한 참가자들의 다양한 생각이 적혀 있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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