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제21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지난 25일 낮 12시 30분쯤 대구시 북구 엑스코 동관에서 열린 제21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현장. 남녀 관람객 30~40명이 한국의 대표적 태양광 기업인 한화큐셀의 전시공간에서 모듈(태양광전지판)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건축업계 등에서 나온 관람객들은 복잡한 표와 그래프가 가득한 한화큐셀의 홍보 책자와 전시 제품을 번갈아 보며, 성능과 가격 등을 직원에게 질문했다.

한화큐셀에서 50미터(m) 정도 떨어진 라이젠의 전시공간에서는 한국어와 함께 중국어, 영어 대화가 오갔다. 중국의 태양광 셀·모듈 생산업체인 라이젠의 직원 세 명은 10여 명의 관람객에게 자사 모듈의 우수한 성능과 가격 경쟁력 등을 강조했다. 발전효율이 23.9%로 여타 태양광 패널보다 높고, 발전용량은 최대 741와트(W)로 한화큐셀이나 현대에너지솔루션 제품보다 100W 정도 크다는 내용이었다. 김영희 라이젠코리아 지사장은 “중국 태양광 시장은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의 선순환을 갖췄다”고 말했다. 가격이 싸서 제품을 많이 팔 수 있고, 그렇게 번 돈을 다시 기술에 투자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 보조금 받으며 저가로 시장 공략

지난 27일까지 사흘 동안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에 참가한 300여 기업 중 220곳이 태양광 회사였고, 그중 42곳이 중국 업체였다. 그로와트, 제이에이솔라, 진롱솔리스 등 세계 태양광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중국 회사들은 최신 기술로 만든 모듈 등을 선보이며 가격의 이점 등을 홍보했다. 반면 국내 태양광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중국 태양광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한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 등 이중고를 취재진에게 털어놓았다.

지난 25일부터 사흘 동안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1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의 전시장 가운데 라이젠, 굿위, 진롱솔리스 등 중국 태양광 업체들이 모여 있는 구역 모습. 조재호 기자
지난 25일부터 사흘 동안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1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의 전시장 가운데 라이젠, 굿위, 진롱솔리스 등 중국 태양광 업체들이 모여 있는 구역 모습. 조재호 기자

“중국에서 만든 모듈이 잘 판매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싸기 때문입니다. 저희도 (모듈을) 제조하기 때문에 이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제조를 하면서도 저렴한 단가 때문에 중국산 모듈을 팔고 있습니다.”

태양광 모듈 제조‧판매업체인 에스디엔(SDN)의 오형식 태양광발전(PV)사업부장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SDN 전시공간에는 중국 태양광 모듈 제조 기업인 샹량과 아이코솔라의 로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SDN이 판매하는 세 가지 모듈 중 둘이 중국 제품인데, 이 회사가 직접 만드는 모듈 제품 역시 셀은 중국에서 수입하고 조립만 국내에서 한다고 오 부장은 설명했다.

셀은 태양광 패널의 기본 단위다. 태양광 패널을 자세히 보면 격자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그 격자가 만드는 한 칸이 하나의 셀이다. 셀이 모여서 모듈이 되고, 모듈이 모여서 패널이 된다. 셀은 태양광 패널의 성능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다. 지금까지 셀 기술은 태양복사에너지의 약 20% 정도 전력을 생산하는 효율을 냈는데, 중국 기업들이 최근 저렴한 가격에 효율이 더 높은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태양광 모듈 제조‧판매업체인 SDN이 전시한 태양광 모듈. 오른쪽에 있는 두 제품은 중국 태양광 모듈업체 샹량(Shuanglinag)과 아이코솔라(AIKO solar)에서 만들었다. 조재호 기자
태양광 모듈 제조‧판매업체인 SDN이 전시한 태양광 모듈. 오른쪽에 있는 두 제품은 중국 태양광 모듈업체 샹량(Shuanglinag)과 아이코솔라(AIKO solar)에서 만들었다. 조재호 기자

세계 10대 태양광 기업 중 8개가 중국 회사

오 부장은 “중국은 원자재도 자체 조달하고 인건비도 싸니 한국 기업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정부가 태양광 산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기 때문에, 중국 회사들이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며 “태양광 산업 자체가 정책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재정부는 2023년 상반기에만 태양광에너지 분야에 약 4조 7800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중국은 또한 태양광 시장 자체가 매우 크기 때문에, 기업들이 쉽게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게 오 부장의 설명이다. 한국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은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을 240기가와트(GW) 추가했다. 반면 한국은 2.7GW에 그쳤다. 1GW는 최근 건설되는 평균적인 원전 1기의 설비용량에 해당한다.

한화큐셀의 이상윤 프로(직원·간부 통칭)도 “중국 기업은 규모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한화큐셀은 1년에 셀을 12GW 정도 생산하는 반면, 중국의 셀 제조업체인 론지솔라는 50GW를 생산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은 세계 태양광 셀 시장의 85.1%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 태양광 전문기업인 한화큐셀의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내 전시공간 전경. 조재호 기자
국내의 대표적 태양광 전문기업인 한화큐셀의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내 전시공간 전경. 조재호 기자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상위 10개 회사 중 8개가 중국 기업이다. 특히 1위 통웨이부터 5위 진코까지가 모두 중국 회사다. 세계 4위 태양광 모듈제조업체인 론지솔라의 김준석 시니어 매니저는 규모의 경제, 풍부한 자원, 큰 규모의 연구개발(R&D) 이 중국 태양광 기술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그는 “론지솔라는 1년에 연구에만 1조 3천억 원 넘게 투자한다”며 “중국 제품이 가격만 싼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따르면, 현재 원자재 기술부터 셀, 모듈 기술까지 모두 중국이 한국을 앞선다. 2년 전만 해도 비슷하거나 한국이 조금 앞섰는데, 모두 따라잡혔다는 것이다. 론지솔라의 연구개발비는 한국 정부의 신재생에너지핵심기술개발사업 예산(3217억 원)의 4배가 넘는다.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인 신성엔지니어링의 전시공간에도 모듈 4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역시 중국산 셀로 만든 제품들이었다. 김형태 이사는 “원래 셀 제조를 했으나 2021년에 중단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중국에서 수입한 셀을 조립해 모듈만 제조한다. 셀 기술은 발전할수록 개발과 제조에 돈이 많이 드는데, 중국 기업과 경쟁이 되지 않아서다. 김 이사는 “갈수록 제조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웬만한 기업들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인 신성엔지니어링의 전시공간 모습. 이 업체는 국내에서 태양광 셀을 제조하다가 2021년에 중단했다. 전시한 모듈은 모두 중국산 셀로 제작됐다. 조재호 기자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인 신성엔지니어링의 전시공간 모습. 이 업체는 국내에서 태양광 셀을 제조하다가 2021년에 중단했다. 전시한 모듈은 모두 중국산 셀로 제작됐다. 조재호 기자

태양광 시공업체도 “윤석열 정부에서 시장 위축”

태양광 발전소를 직접 짓는 시공업체들은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정책이 바뀌면서 태양광 시장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에스엠전력에너지의 한슬기 차장은 “시공 의뢰가 3~4년 전에 비해 30%가량 적게 들어온다”며 “정부가 (태양광) 목표 보급량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기존의 30.2%에서 21.6%로 낮췄다. 전반적으로 재생에너지에 소극적인 분위기로 전환되니, 이미 의뢰했던 기업들마저 계획을 바꾼다는 것이다.

R&D 예산 삭감도 중소 태양광 업체들에 치명적이다. 정부는 올해 태양광 분야의 핵심기술개발 예산을 전년도 대비 약 27%(약 176억 원) 삭감했다.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모듈을 제조하는 에스케이솔라에너지 주진 과장은 “R&D가 줄어들면서 신제품을 출시하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 R&D 과제를 5개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못 하는 상황”이라며 “타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BIPV 모듈 제조업체 대표는 “원래 (연구개발) 과제 3개를 했는데 개당 1억 원 정도가 삭감됐다”며 제품 혁신이 어려워진 상황을 걱정했다.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에 전시된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모듈. 태양광 모듈을 외장재처럼 만들어서 건물 외벽에 설치할 수 있다. 조재호 기자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에 전시된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모듈. 태양광 모듈을 외장재처럼 만들어서 건물 외벽에 설치할 수 있다. 조재호 기자

엑스포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전력계통 확충’과 ‘토지 규제 완화’를 국내 태양광 산업의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태양광 시공사인 광명에너지의 정진민 과장은 “기본적으로 전력계통이 가장 문제”라고 했다. 전력계통이란 발전소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인데, 농촌 등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생산해도 적자 상태인 한국전력이 전력계통을 제때 늘리지 못해 심하면 5~6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무한접속제도 일몰’도 업계의 걱정거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메가와트(MW) 이하 발전사업자들의 계통 접속을 보장해 주는 무한접속제도를 종료하겠다고 지난 연말 발표했다. 계획대로 올해 하반기에 이 제도가 종료되면 소형 발전사업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 과장은 “무한접속제도가 없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소형 발전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며, “업계는 치킨게임에 들어가고 소규모 업체는 도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시공업체 선웨이의 이미라 매니저는 토지 규제 탓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할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련 법규와 조례로는 가능한 곳임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소를 혐오시설로 보는 시각이 있어 민원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의를 제기해도 내부 규정이라는 답만 반복한다”며 “태양광의 빠른 보급을 위해서는 토지 규제 완화가 가장 급하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목표 올리고 전력계통 신속히 확충해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1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의 전시장 전경. 조재호 기자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21회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의 전시장 전경. 조재호 기자

태양광 투자자와 발전소를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체 에이치에너지의 최희근 이사도 “태양광 수요는 많은데 현실적 여건이 따라와 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토지 규제와 전력계통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들어오는 (태양광발전소) 의뢰 중 90% 정도를 토지와 계통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커지려면 토지와 계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가 보수적이라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말 무한접속제도가 일몰되면 이건 진짜 정부가 태양광 안 하겠다는 뜻”이라고 걱정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기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애플 등 글로벌 거래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2050년까지 알이백(RE100), 즉 생산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100%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국내 태양광·풍력 설비 확충이 늦어 달성이 쉽지 않다. 최근 4년 동안 국내 태양광 신규보급용량은 계속 줄고 있다. 2020년에는 4.7GW가 증설됐으나 2021년은 3.9GW, 2022년은 3.3GW였으며 지난해는 3.0GW 미만으로 떨어졌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량을 줄이면서 한국 태양광 시장이 위축됐다”며 “기본수급 계획에서 보급 목표가 상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량을 늘려야 경제성이 생기고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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