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관치금융(官治金融)
금융권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12일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차기 NH농협금융 회장으로 내정됐습니다. 이 전 실장은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에 있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전 실장의 내정을 시작으로 IBK기업은행과 우리금융지주 최고경영자 자리에도 윤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정부가 ‘관치금융’을 시도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관치금융은 정부가 금융회사들의 운영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금리 결정, 대출, 금융회사의 인사 결정 등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겁니다. 금융 활동이 제도나 시장 원리가 아닌 정부의 입김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한국 금융의 역사는 곧 관치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해서 금융기관을 직접 통제했습니다. 금리 결정, 대출 배분, 금융기관의 인사를 모두 행정부가 결정했습니다. 정부가 어느 기업에 얼마만큼의 대출금을 어느 정도의 금리로 주라고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관행은 군사 정권이 막을 내린 뒤로도 이어졌습니다.
외환위기로 우리 사회가 격변을 겪은 이후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이 커졌습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약화했다는 것입니다. 2000년 한나라당은 금융기관 경영진 낙하산 인사를 금지하는 ‘관치금융 청산특별법’을 약속했지만, 법은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특별법을 반대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후 관치금융은 사라졌다면서 이런 법을 만들면 관치금융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정권은 한결같이 정부가 은행 최고경영자 인선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려대학교와 소망교회 출신 인사가 금융권을 장악했습니다. 모두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서금회’가 있었습니다. 서금회는 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입니다. 이들이 금융권 요직에 임명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출신 금융 인사 모임인 ‘부금회’가 금융권에서 위세를 떨쳤습니다. 전문성보다 인맥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는 합리적 경영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경영을 했습니다. 이는 한국 금융이 국제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윤 정부도 금융권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금융그룹 이사회 의장들을 만나 “최고경영자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각별하게 노력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인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라는 이 발언이 오히려 은행 최고경영자 인사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최고경영자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금융그룹 이사회 의장들 앞에서 인사 문제를 거론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잇달아 최고경영자 후보 물망에 거론되면서 의혹은 더 커졌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정부가 은행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낙하산 인사 논란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최고경영자를 능력이 아닌 파벌 위주로 임명하는 폐단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장에 내부 출신 인사를 낙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김주현 위원장이 김성태 기업은행 전무를 차기 행장으로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은행장 자리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임명제청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대선캠프 관련자 대신 내부 인사를 임명한 것은 정부가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 논란을 의식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는 한 관치금융 논란은 반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의 시사맥(脈), 관치금융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