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안전운임제

지난 1일 오후 인천시 중구 삼표시멘트 인천사업소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이 피켓을 들고 경찰관들과 대치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인천시 중구 삼표시멘트 인천사업소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이 피켓을 들고 경찰관들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지난달 24일 0시를 기해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총파업의 쟁점은 ‘안전운임제’입니다. 안전운임제가 무엇이길래 화물차 기사들과 정부, 운수 사업자의 갈등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화물차 기사들에게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제’와 비슷합니다. 화물차 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안전운임제는 이들에게 최소 적정 운송료와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돈을 벌려고 과로를 무릅쓰고 과속 또는 과적을 감행하는 일을 방지하여, 다른 국민의 안전까지 지켜줍니다.

안전운임제는 2018년 국회에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화물차 기사의 최소 운송료 기준을 정하고, 이를 보장하지 않는 운수 사업자에게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이 제도에는 두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우선, 시장 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최소 운송료 기준이 적용되는 품목을 컨테이너 차량과 시멘트 운반 차량으로 한정했습니다. 또한, 시행 3년이 되는 올해 12월 31일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효력이 자동으로 사라지게 한 법률이나 규제를 ‘일몰제’라고 부르는데, 현재 안전운임제가 이에 해당합니다.

화물연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정부에 요청해 왔습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해서 유지하고, 적용 품목을 더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지난 6월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종료했습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안전운임제의 자동소멸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국회에서 논의할 문제라며 해결을 미뤘습니다. 오히려 애초 합의와 달리 화물차 기사가 아닌 운수 사업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법 개정을 시도했습니다. 이번 파업은 그것에 항의하는 화물차 기사들의 집단행동입니다.

화물연대가 예고한 재파업 돌입 이틀 전인 지난달 22일, 정부와 여당은 '일몰제 3년 연장, 품목 확대 불가'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현행 제도를 조금 더 연장하겠지만, 한시법 규정을 폐지하지도, 품목을 확대하지도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는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안전운임제 영구화 ▲컨테이너·시멘트 외 철강재∙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 지·간선 등 5개 품목으로 적용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쟁점은 임금 보장과 안전 운전의 상관관계입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올해 2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컨테이너 차량 기사의 월 순수입은 373만 원으로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인 2019년(300만 원)에 비해 24.3% 올랐고, 시멘트 운반 차량 기사의 월 순수입은 424만 원으로 같은 기간 2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월 노동 시간은 5~10% 감소했습니다. 과로가 줄고, 수익이 상승했다는 점은 비교적 분명한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덕분에 화물차 사고가 감소했다고 화물 연대는 주장합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시멘트 과적 경험이 30%에서 10%로 떨어졌고, 컨테이너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비율이 29%에서 1.4%까지 낮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소 임금이 보장되면서,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졸음운전, 과적 운행, 야간 운행 등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정부는 안전운임제 덕분에 사고가 감소했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오히려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견인형 화물차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나 사고 건수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제도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물가 문제도 들고 나왔습니다. 화물연대의 요구대로 적용 품목을 확대하면 운송료가 전반적으로 상승하여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정부는 주장합니다. 지난달 22일 국토교통부는 적용 품목 확대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화물연대가 확대를 요구하는 자동차, 위험물 등 다른 품목들은 컨테이너·시멘트 대비 화물차 기사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안전운임제 필요성이 낮다”며 “품목 확대로 국내 주요 산업 물류비가 상승하면 소비자와 국민 부담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배경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파업 참가 노동자를 “고소득층”, 불참 노동자를 “진정한 약자”로 구분했습니다. 외신 인터뷰에서도 “강성노조 문화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 그리고 이에 근거한 집단행동을 불온시하면 대화와 타협, 그리고 합의할 수 없어집니다. 노동 문제를 대하는 대통령의 인식이 지금과 같다면,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화물차 기사들에게 안전운임제는 경제적 생계는 물론 생물학적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거든요. 이 주의 시사맥(脈), 안전운임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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