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8.2.24 토
> 뉴스 > 칼럼 > 상상사전
     
‘비디오 시대’라고 함부로 말하지마
[상상사전] ‘라디오’
2018년 02월 05일 (월) 17:36:50 박수지 기자 wbdjffl514@naver.com
   
▲ 박수지 기자

"혹시 힐링요정..?" 택시기사가 물었다. 방송국으로 가달라는 말에 이것저것 묻더니 내가 자신이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리포터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힐링요정은 ‘힐링이 필요해’ 코너를 진행하던 내 별명이었다. "나 끝 번호 0000이에요. 얼마 전에 짬뽕 먹을지 자장면 먹을지 골라달라고 문자도 보냈었는데." 그의 문자를 소개한 기억이 났다. 나는 얼큰한 짬뽕을 추천했고, DJ는 고소한 자장면을 추천했다.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그래서 결국 뭘 드셨어요?” 그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추천해주신 대로 짬뽕을 먹었는데 맛이 없었죠.”

방송국 앞에 도착했을 때 그가 잔돈을 거슬러주며 말했다. "오늘도 힐링 잘 부탁해요.” “기대해도 좋아요. 대신 문자 좀 많이 보내주세요.” 청취자들을 힐링해주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의 문자와 사연이다. 라디오는 ‘듣는 사람의 이야기’가 주재료인 매체다. 매번 똑같은 연예인과 유명인이 나오는 TV와 달리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인 우리들 이야기로 채워진다. 청취자들은 얼굴도 모르는 남의 사연이지만 자신도 한번쯤 겪을 법한 일이기에 공감하며 듣는다. 위로와 응원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는 “라디오가 수돗물처럼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대화가 가능한 의사소통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취자가 말하게 하고, 그들을 서로 연결한다면 라디오는 가장 환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체계이자 거대한 채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 라디오는 하나의 ‘소통 창구’다. 청취자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TV를 볼 때 우리는 ‘시청자 여러분’에 불과하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을 때는 ‘별밤 가족’, <두시의 데이트>를 들을 때는 ‘두데 가족’이 된다. 숀 무어스는 <미디어와 일상>에서 이를 ‘원격친밀성’이라 표현했는데, 흩어져 있던 대중이 라디오를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교류한다는 것이다.

라디오가 감성만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청취자의 문자와 사연 속에서 주부의 살림 팁과 요즘 갈만한 관광지, 유행하는 스타일과 실시간 날씨 등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오늘도 배달할 물건이 많아 밥도 못 먹고 있다는 택배기사나, 다니기 싫은 학원을 가고 있다는 학생, 며칠째 야근중이라는 직장인 이야기는 팍팍한 우리 사회 현실을 보여준다.

   
▲ 라디오는 청취자들을 서로 연결하고 가족으로 만들어준다. Ⓒ flickr

1979년 버글스는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노래로 히트를 쳤다. 하지만 라디오는 오히려 다른 미디어를 ’흡수‘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했다. ’보이는 라디오‘로 젊은 층을 끌어들였고, PC통신의 ’실시간 댓글‘과 스마트폰 ’어플‘로 소통 수단을 확대했다. 코바코의 ‘2016 라디오 시장 진단'에 따르면 여전히 33% 국민이 라디오를 이용한다. 라디오와 TV를 통틀어 최장수 프로그램인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5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지난 8월 방송 1만 회를 맞이했다. <여성시대>와 <볼륨을 높여요> 등 20년 넘게 방송한 장수 프로그램도 10개가 넘는다.

학창시절 심야 라디오를 듣다 밤을 새웠다거나 DJ에게 엽서를 보낸 경험 등 누구나 라디오에 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는 과거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도 따뜻한 휴식처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러니 혹 힘들고 외롭다면 라디오를 켜보시라. 다양한 이야기꾼들의 사연이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바쁘다면 일하면서 들어도 좋고, 쉬고 싶다면 두 눈을 감고 상상하며 들어도 좋다. 폭넓은 장르의 음악은 덤이다. 운 좋으면 당신의 이야기가 소개될 수도 있다. 비디오 시대인 지금도 라디오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소통과 휴식을 바라는 당신을 기다리며…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송승현 기자

[박수지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부장, 편집부, 환경부, TV뉴스부 박수지입니다.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관련기사
·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잣대
· 당신의 ‘마들렌’은 무엇인가요
· 경상도 말, ‘권좌’에서 물러나야
· 누가 약자끼리 싸우게 해 이익을 얻나
· 힘 빠지게 하는 “힘내세요”
박수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