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장소’와 ‘시간’

▲ 윤연정 기자

한번도 가본 적 없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낯익을 때 느끼는 당황스러움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터이다. 몇 년 전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겹칠 때, 기억 너머로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기억의 소환은 때때로 장소에 의해서, 일기장의 글을 통해서, 비 오는 날 마신 커피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이처럼 우리는 현재의 일상에서 우연한 자극으로 과거의 시간을 마주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으로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찾는 상황을 묘사한다. 잃어버린 행복한 시간이 마들렌으로 소환된 것이다.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현재 우리가 지나간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시간을 담고 있는 마들렌 같은 매개체가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세대에게 이따금 들려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촛불 혁명이 일어났던 ‘광화문광장’과 같은 매개체가 그 예다. 하지만 그 매개체들은 사회 곳곳에서 사라지지 않고 버티기가 쉽지 않다.

▲ 사회를 결속하는 것은 사람들의 집단기억이다. 광화문 광장과 그 장소에 모인 촛불을 든 시민들이 기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 flickr

도시복원사업으로 없어진 종로 피맛골 거리, 4대강 사업으로 수몰된 금강마을을 비롯한 수많은 마을, 철거 요구에 직면했던 전태일 동상,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흔적들은 수난을 겪어온 ‘기억의 장소’들이다. 이는 단순히 마을의 가치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장소와 기록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더는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매개체들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이유다.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는 사회를 결속하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기억이라고 했다. 집단기억은 사회를 형성하는 장소와 사람들의 의사소통, 인식으로 재구성된다.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영겁의 시간으로 쌓아온 역사도 의미가 없다. 과거 시간을 담고 있는 기억의 매개체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켜낸 ‘마들렌’들은 매번 달콤하진 않겠지만 이따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기억을 되살려준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고하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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