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제: 한국사회의 변화와 우리의 역할

“옳은 말 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옳은 말 한번 했다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수도 있죠. 저 하나만 책임지면 될 줄 알았는데, 가족들까지 피해를 볼까 두려움이 생기더군요. 두려움은 당연합니다. 다만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고언(苦言). ‘쓴 말’이라는 한자 뜻을 품은 이 말은 사전에서 ‘듣기에는 거슬리나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언의 무게를 익히 아는 사람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 장관으로 있었으나 고언을 했다가 2014년 갑작스레 면직됐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관련 증언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우리 사회에 단비 같은 고언을 했다.

▲ '한국사회의 변화와 문화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 조은비

정치 적폐가 사회 문제 키웠다

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사회’라 정의한다.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다. UN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추세다. 2017년 8월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다른 국가들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26%인 초고령사회 일본보다도 증가 속도가 빠르다. 2026년에는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며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증가 속도가 빠른 것에 견주어 대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아 혼란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 역시 대한민국을 발목 잡는 요소다. 한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2016년 1.17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보였다. 10년 동안 100조가 넘는 예산이 각종 저출산 정책에 쓰였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여성 인구 지도'는 여성을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만 생각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 Flickr

2016년에는 당시 행정자치부가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가임기 여성 인구 지도’를 내놓아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자체의 저출산 극복정책 추진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국민 다수는 “여성을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만 생각한다”며 국가적 발상을 비판했다.

이렇듯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적 노력이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유진룡 전 장관은 “정치가 사회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고 정치적 문제를 지속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모든 문제의 요인은 ‘양극화’다. 그는 “양극화 심화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본질적인 문제”라며 여러 정치적 문제점을 짚었다.

정치의 또 다른 얼굴: 유착과 카르텔

‘삼성공화국’은 우리 사회 단면을 나타내는 단어다. 삼성과 같은 거대 재벌이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을 좌우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다양한 유착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의 큰 문제점이다. 유 전 장관은 “정치·경제·언론의 유착 관계가 심하다”며 “혼자 벗어나려고 시도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착 관계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카르텔’이다. 정치권에서 만들어낸 이념 프레임을 언론이 실어 나르며 사회 갈등을 양산하는 것이 한 가지 예다. 그는 “정치인들과 그들에 결탁한 언론이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그들뿐”이라고 지적했다.

종교와 정치 사이에 벌어지는 카르텔 역시 지양할 대상이다. 동성애 논란과 종교인 과세 문제가 불거지자 일부 정치인은 보수 기독교계 목소리를 대변했다. 가치 판단에 따른 주체적 정치 행위가 아니라 보수 기독교계의 입심을 무시 못한 결과였다. 유 전 장관은 “모든 카르텔의 결탁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다”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만들어진 색깔론과 한국 정치

지난해 11월 6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전희경 의원이 임종석 실장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고 색깔론을 펼치자 임 실장이 “매우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보인 것이다.

이는 여전히 이념 갈등과 편 가르기가 정치에 만연하다는 증거다. 유 전 장관은 “임 실장이 좀 더 온화하게 대응할 수 있었는데 발끈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할 기회를 차버린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 보수 정권은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과 제창 방식을 두고 논란을 키웠다. 가사가 불온한 노래를 제창으로 모두가 부를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 Flickr

유 장관의 시각으로는 보수와 진보는 정치권에서 파생된 결과물일 뿐이다. 색깔론이 실체이기보다는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뜻이다. 그는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는 사전적 정의와 맞지 않는 엉터리”라며 “정확하지도 않은 개념 규정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례로 2016년 OECD가 발표한 국가별 사회갈등지수 순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멕시코와 터키에 이어 3위다. 그는 “터키는 쿠데타를 통해 독재가 일어나는 나라인데 그런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며 “우리나라가 사회 갈등을 다루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게 국제적 평가”라고 말했다.

▲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OECD 국가 중 최상위인 반면, 사회갈등관리지수는 27위로 하위권이다. ⓒ 조은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절실한 시기

대한민국의 정치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 먼저 유 전 장관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싸우기보다는 함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의 목표가 ‘국민이 행복감을 느끼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목표는 다를 수 없다.

“외국 역사를 보면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자본가를 설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반대로 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면 노동자를 설득합니다. 보수 정권일 때 복지가 확대되고 노동 정권일 때는 과도한 요구가 제재되는 효과를 얻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도 이렇게 바뀌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 지수'는 OECD 국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 유진룡

또한 그는 “정치권의 인식 변화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집권자’ ‘집권당’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러한 표현이 가지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권(執權)’이라는 표현 안에는 권력을 잡는다는 뜻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상 권력은 정치인이 잡는 것이 아닌, 일반 시민이 정치인에게 ‘권한을 맡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권력을 자신이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만해진다”며 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나가서 심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증언을 하자 상대측 변호인이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당신을 임명해준 사람에게 배반할 수 있느냐’며 화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관 자리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맡긴 권한 일부를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한국의 정부와 사법제도 신뢰도는 OECD 국가와 비교하여 낮은 수준이다. ⓒ 유진룡

그는 또한 “정치하는 사람들은 집권하겠다는 생각만 한다”며 “위임받은 권력으로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서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정성이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양극화 해결을 위해 ‘공정성’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정한 사회가 구성돼야 양극화에 따라 삶의 조건이 제약되는 상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지만 사회적, 경제적 민주화 면에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몇백 년이 걸리는 곳들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 5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성숙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면 참고 기다리는 것도 필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다만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해서는 지속해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희진 김한솔 신형철 나영석 이택광 유진룡 김종철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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