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경희대 교수
주제 ① 불한당들의 세계사

“냉전은 단순한 은유가 아닌 실체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그렇습니다. 냉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거죠.”

책 50여권을 쓴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 첫 번째 주제를 ‘불한당들의 세계사’로 잡았다. 불한당은 ‘땀 흘리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지만 ‘행패를 부리며 나쁜 짓을 일삼는 무리’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 교수는 세계에 반공주의를 심은 미국을 ‘불한당’으로 은유하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에 ‘냉전적 주체’가 탄생한 과정을 설명했다.

▲ 이택광 교수는 교통사고로 팔을 다쳤는데도 제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와서 열강을 했다. ⓒ 임형준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일까

“김기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사를 할 때 식칼을 들고 와서 난도질을 한 걸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반미운동가 김기종 씨는 2015년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행사에서 과도로 리퍼트 대사의 얼굴 등에 상해를 입혔고 ‘팀 스피릿 훈련 중단’ ‘한미연합사 해체’ 등을 외쳤다. 이택광 교수는 김기종 씨의 행동은 최근 미국을 방문하려다 실패한 반미단체 방탄청년단이 주장한 ‘평화를 원한다’ ‘미군은 철수하라’ 등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봤다.

▲ 피습 직후 피를 흘리며 행사장에서 빠져 나오는 리퍼트 주한미 대사. ⓒ <워싱턴 포스트> 누리집

“그런데 이 사건이 외국에 비춰질 때는 한국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김 씨가 리퍼트 대사를 공격했을 때 외신들은 ‘한국은 합리적 해석이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외신들은 이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AP통신>은 ‘한국에서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를 공격하는 일은 이례적이지만 정치 분열이 있는 한국에서 극단적 시위는 빈번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 일부 우익 단체는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며 부채춤을 췄다. ⓒ 이택광 블로그

당시 기독교 단체를 비롯한 보수 단체가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추거나 심지어 개고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한국 우파들이 선진국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라며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열심히 주장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좌파든 우파든 정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똑같은 한국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 씨나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추는 기독교단체나 이해할 수 없는 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냉전적 주체의 탄생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이지는 것일까? 이 교수는 냉전에서 기원을 찾는다. 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양쪽 동맹국들 사이에서 갈등•긴장•경쟁 상태가 이어진 대립 시기다.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두 진영으로 나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하나의 세계를 둘로 나누면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일이 벌어진다. 일종의 국시(國是)였던 반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국민이 아닌 존재가 된다. 국가가 보호해줄 필요가 없고 학살을 당해도 책임질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했던 사람이 바로 박정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연구했는데, 대부분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연구를 보면 박정희 체제는 박정희만의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과가 뚜렷한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60~70년대 경제개발을 주도했다고 평가받지만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건설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실행했다고 분석했다. 개인적 능력도 있었지만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봤다. 그러나 그는 “우파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 근대 건설 전체가 박정희 덕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쓸데없는 신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신화’는 세계 곳곳에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지의 ‘박정희’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경제개발을 결합하는 지도자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반공주의야말로 세계체제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냉전적 주체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냉전의 시작은 제주4.3사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빨갱이란 이유로 사람을 죽인 건 제주4.3사건이 최초예요. 그리고 이내 당연한 일이 됩니다. 이게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죠. 저는 진정한 냉전의 시작이 제주4.3사건이라고 봅니다.”

▲ 4.3사건 피해 현장. ⓒ <단비뉴스> TV뉴스 리포트

학계에서는 냉전의 발단을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 한국전쟁 등 여러 가지로 꼽는다. 복잡한 맥락에서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냉전적 주체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진정한 냉전의 ‘입구’는 제주4.3사건이라고 말했다. 반공에 충실한 ‘국민’과 존재를 부정당한 ‘비국민’이 존재하는 가장 극단적 냉전 구도가 이 작은 섬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유럽에서 미소 갈등이 표면화한 사건 중 하나인 ‘베를린 봉쇄’ 당시,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군사적 충돌의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제주지부에는 사회주의자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미국은 그런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아요. 당시 미군은 필리핀, 오키나와, 알류샨 열도를 잇는 ‘애치슨 라인’이라는 방어선을 설정했는데,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오키나와에 아주 가깝죠. 아마 한반도 전체를 내줄 순 있어도 제주도는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당대의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매료된 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의 식민지에 적용되지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레닌의 주장은 달랐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 타파를 통한 공산주의 이행’과 ‘세계 모든 식민지의 해방’을 주창했다. 이 교수는 “제주도의 높은 교육 수준은 사회주의를 더욱 활발히 받아들였던 유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1947년 3월 19일 미군정 정보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정은 제주도민 70%를 좌익 또는 그 동조자로 인식했다. 이런 제주도의 상황이 미국의 방어 전략에는 잠재적 위협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4.3사건이라고 하면 서북청년단이나 이승만을 떠올립니다. 미군은 공식적으로는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돼있죠. 하지만 제주4.3사건기념관에 가보면 사진에 미군이 보입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군을 지휘하는 장면이 나와요.”

남로당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군정경찰과 진압군은 ‘좌익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 학살은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그 기간에 미국은 미군정으로서, 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으로서 제주도에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지휘권을 행사했다. 이 교수는 “4.3사건은 미국의 전후 대아시아 전략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주도 아래 제주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냉전 구도는 전쟁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에 유령처럼 떠돈다.

자유주의 이면에 도사린 반공주의

그렇다면 미국이 이렇게 극단적인 학살을 벌이면서까지 냉전질서를 세계에 이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 자유주의 이념을 통해 세계를 경영하기 전, 세계적으로 강력했던 정치이념은 공화주의였어요. 중국 청나라 말기 사상가인 옌푸만 하더라도 제정을 폐기하고 동등한 인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잖아요. 이렇게 공화주의 이념이 하나의 민족국가의 표상이 되어있는 곳에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적 자유주의란 말을 주장하기 시작해요.”

이 교수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기중심 세계체제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강제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이념이 ‘자본의 제한적 분배’를 강제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통해, 다시 말하면 미국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우리에게 이식된 정치체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이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체제를 둘로 나누는 작업은 필수적이었고, 그것은 곧 하나의 세계를 둘로 갈라서 ‘국민’과 ‘비국민’을 나눠 차별을 제공하는 작업이었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차이화’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는 냉전을 토대로 한 반공주의 체제로 나타났고 그 시작이 제주4.3사건인 셈이다.

▲ 일부 우익 단체들은 반공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집회를 벌인다. ⓒ Flickr

이 교수는 추가적으로 미국이 자유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반공주의나 냉전과 같은, 공동체를 해체하고 둘로 양분하는 작업을 통해 도모하려 했던 것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유럽대륙을 자기들의 이해관계로 관철되는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둘째는 아시아 역시 자기들 경제 블록 속으로 들어오는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네이션빌딩(국가건설)이라는 걸 하게 되는 거죠.” 

서구 자유주의에 앞선 동학과 태평천국의 정치이념

“결국 자유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나 다양성, 이런 것들과 사실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의 어떤 원리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만, 냉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식된 겁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에 정체기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지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교수는 이제 쇠퇴한 자유주의를 대체하고 넘어서는 정치체제를 모색할 때라며 우리나라 동학과 중국 태평천국의 정치이념을 사례로 제시했다. 기독교 가톨릭에서 싹튼 서양의 근대 공화제나 국가체제를 지향하지 않고 그것에 대항해 태어난 동학과 태평천국은 자유주의가 태어나기 전 이미 존재했던 선견지명의 평등주의 사상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이 교수는 동학에서 운영한 지방 각 군현에 설치한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코뮤니즘(공산주의)의 코뮌에 견주었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이 교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 임형준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서양의 좌파 지식인도 인류의 근대적 평등자유라는 개념은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을 통해 최초로 발현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 이전에 태평천국과 동학도 있다는 겁니다. 프랑스혁명이나 독립혁명의 의미도 잘 모르던 한국과 중국에서 동학과 태평천국 같은 평등사상, 정확히 말하면 코뮌사상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이 교수는 실패와 성공을 떠나서 이러한 동학과 태평천국 사례에 비추어, 자유주의를 평등과 자유라는 이념을 인류에 도입한 사상운동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 입장들이 실은 상당히 규범적이고 외래적”이라며 “아직까지 잘 맞지 않는 옷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희진 김한솔 신형철 나영석 이택광 유진룡 김종철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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