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남영동 대공분실’

   
▲ 김미나 기자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987년 6월 광장을 채운 피켓의 문구다. 그리고 30년, 2017년 12월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이 개봉됐다.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물두 살의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숨졌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 공안수사팀이 ‘빨갱이’를 축출해낸다는 명목으로 민주화 운동 인사를 고문하던 곳이다.

▲ 1987년 봄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으로 6월 전국적으로 독재 정부에 대항한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 영화 <1987> 포스터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김치열 내무장관이 발주하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해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남겼다. 일명 ‘공사’를 치던 5층 취조실의 창문은 다른 층보다 매우 좁게 만들어졌다. 이는 남영역 옆에 있어도 그곳에서 자행된 무자비한 일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고, 잡혀간 이들의 투신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취조실은 모두 15개로, 욕조와 수세식 변기, 침대, 고정된 의자와 책상까지 갖춰져 있었다. 고문의 흔적을 감추고, 외부와 단절시키려는 의도가 철저히 반영된 것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고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변명을 내놓으며, 사건을 덮으려 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소설가 서해성은 2014년 1월 18일 <한겨레> 칼럼에서 ‘우리 헌법은 박종철이 죽은 그 욕조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됐다.

▲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청 산하 대공수사기관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의 배경 장소이기도 하다. Ⓒ 위키백과

현재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의 과거사 청산작업의 하나로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반인권’적인 일들이 벌어진 곳에서 ‘인권’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얼핏 보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학습과 탐방의 장’ 구실을 하는 것 같지만 지난 9년간 한국의 인권상황은 후퇴일로에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세력은 여전히 한국의 지도층 구실을 하고 있다.

잔혹한 고문으로 악명 높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몇 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일을 하겠다”며 “고문은 일종의 예술이었으며, 자신의 행동은 애국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회고록을 출판하며 ‘6.29선언은 '민주화'로의 순조로운 이행 과정’이었으며 ‘헌정 사상 최초로 평화적 정권 이양의 선례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언론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가 민주주의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해본 적 없는 나라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나라다운 나라’를 외치며 저항했던 자들의 아픔은 여전히 공간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데….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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