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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과 마주할 용기
[상상사전] ’적폐 청산’
2017년 12월 27일 (수) 20:01:40 나혜인 기자 nahyein8@gmail.com
   
▲ 나혜인 기자

기억은 무의식의 공간에 남아 있던 인상이나 경험이 의식으로 잠시 이동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대개 자의(自意)와는 무관하게 벌어진다. ‘기억해야지’ 마음먹고 어떤 시간을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좋은 추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보통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든다. 기억은 행위라기보다 현상에 가깝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아픈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더 많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그렇다. 아픈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된다. 뇌과학에서 인간은 행복한 기억을 오래 남겨두기 위해 나쁜 일을 먼저 잊는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위험과 불행을 회피하고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도록 설계돼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위험 회피 본능’은 언제나 축복이기만 할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그 반대다. 그간 너무 ‘많은’ 것을 ‘쉽게’ 잊어서 불행해졌다. 해방을 지나 4·19, 5·18,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외쳤던 정의는 항상 패배로 끝났다. 암흑기가 끝나고 찾아온 밝은 날에 취해 어둠을 잊은 탓이다.

인간의 본능이 다시 꿈틀거릴까 봐 두려운 요즘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이라면서 검찰에도 법원에도 출두하지 않고 있다. 보수층 결집을 노려 ‘구치소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인데, 5060 세대 중에는 ‘적폐청산=정치보복’이라는 보수 야당의 프레임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제 그만해도 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것이다.

   
▲ 이번만큼은 1년 전 이 장면을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 ⓒ flickr

지난겨울의 촛불 승리가 영원하려면, 인간의 본능을 이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기억을 ‘언젠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현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적극적인 행위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지난 시간이 불편하고 아프더라도 ‘기억해야지, 기억해야지’ 애써 되뇌어야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어둠에 맞설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적폐를 찾아내 정리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권력을 사유화해 시민의 이익을 해친 이들을 끝까지 단죄하는 일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통합’이니 ‘미래’니 하는 듣기 좋은 메시지에 지난 일들을 잊는다면 아픈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본능적으로 불행한 과거를 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가 인간이라지만, 한편으로는 본능대로만 살지 않아서 인간이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임형준 기자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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