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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글을 쓰려면 나를 돌아보라
[인문교양특강] 정희진 여성학 강사
주제 ②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 주체성, 위치성
2017년 10월 17일 (화) 20:39:50 박진우 서지연 장현석 기자 moolkyul@hanmail.net

“어떤 사람이 ‘기레기’일까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예비언론인들에게 이런 질문으로 말문을 연 이는 서강대에서 여성학·평화학을 강의하는 정희진 선생이다. 그는 이례적으로 <한겨레>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경향신문>에 ‘정희진의 낯선 사이’를 동시 연재해온 글쟁이다. 고정칼럼 말고도 각종 매체와 저서, 다른 저자의 책 추천사까지 글이 있는 곳에 ‘정희진’이 있다.

오랜 기간 고도의 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독특한 사유를 견지해온 그는 최근 칼럼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에서 기존 언어와 다른 본인의 글쓰기를 “3년이 다 되도록 주인공들이 군함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한수산의 표현에 빗대기도 했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적어도 두서너 가지 버전을 쓴다는 그는 이날 강의도 학생들이 기숙사 저녁 식사시간을 놓칠 정도로 장장 여섯 시간 가까이 열강을 했다.

   
▲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정희진 선생. ⓒ 장현석

디지털에 적응하려는 몸부림

“온라인 환경에서 종이 신문의 위기나 공영방송의 근본적 문제에 직면한 당사자가 바로 여러분 아니에요? 그런 고민 안 하세요?”

정 선생은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를 기자(記者: 기록하는 자)가 고민해야 할 화두로 제시했다. 그는 현시대를 “온라인 세계가 오프라인 세계를 삼킨 상태”로 진단했다. 근대의 국가는 학교와 군대를 통해 균질적인 노동자를 만들고, 대중을 창출해냈다. 그러나 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노동자가 더 필요 없어진 현대 사회에서 자본은 개인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었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습관과 몸 자체를 변화시켰다. 그는 칼럼 ’페이스북 시대의 얼굴’<경향>에서 소설가 김영하 씨의 ‘손안의 인터넷, 스마트폰은 ‘시간 도둑’’이라는 표현을 인용했다. 스마트폰을 쥔 성마른 현대인들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회와 문명과 문화의 문제’ 차원에서 다룬 바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 지식과 담론 형성 방식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예를 들면 20년 동안 죽도록 공부해서 책을 한 권 썼어. 그런데 트위터에서 아이디 다섯 개 가진 사람 다섯 명이 이 책에 혹평을 쓰는 거야. 이런 경우 많잖아요. 그러면 누가 공부를 하려고 하겠어요?”

이런 시대에 글은 ‘읽히기’보다는 ‘소비’된다. 정 선생은 인문학이 발달하기 어려운 척박한 토양에서 글쓰기란 ’죽을 만큼’의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선생은 SNS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이 홍보되고 구매되어, 내용보다 저자의 유명세나 제목에 따라 책이 팔리는 점을 셀럽 현상과 연결했다. 과거 유명인사가 명예의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악명이 있더라도 유명인사가 되고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인용한 칼럼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지면에 글이 실린 뒤 ‘(온라인으로) 변화가 싫다는 얘기냐?’, ‘억울하면 당신도 페이스북을 해’ 같은 반응들이 돌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대안제시보다는 질문을

정 선생은 대안적 사고와 글쓰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개방적 논의를 허용하는 광장 정책은 캐러밴으로 이루어진 이동주택 단지의 방식’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개방된 공간에 손님들은 오고 가는데, 그들 중 누구도 그곳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탁현민 씨 비판 칼럼에서 정 선생이 탁현민 선임행정관 개인을 향한 인신공격이나 경질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이유다. 단지 그는 남성연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남성 문화의 놀라움에 관해 썼는데 그 뒤로 제가 겪은 고통과 수난은 정말 펜을 놓게 할 정도였어요. 페미니스트까지 저를 비판했거든요. 논쟁을 아예 할 수 없는 이런 시대에 언론인의 사명은 무엇이에요?”

그녀는 현상을 여러모로 해석하는 기사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연장 선상에서 “객관성이라는 이름 아래 대안이나 양비론으로 끝나는 기사가 많다”면서 “질문으로 끝나는 기사”의 방식을 제안했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경합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보셨죠? 영화의 원작은 <석양의 무법자>로 알려졌습니다. 감독이 원작 속 ‘the ugly’(추한 놈)를 ‘the weird’(이상한 놈)로 바꿨잖아요. 저는 이 제목이 굉장히 탈식민 적(Postcolonial)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인류의 키는 선악이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이들이 쥐고 있거든요. 사람을 평가할 때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 또는 보수나 진보 이렇게 이분법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어요?”

정 선생은 세상의 모든 진리는 경합한다고 전제한다. 진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바뀌거나 경합하거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언명령보다는 ‘간주한다, 인식된다, 생각한다’라고 사고하는 것이, 선악의 구도를 뛰어넘는 포스트휴먼의 모습이다. ‘A와 not A가 아니라 Z 같은 사람’은 그가 생각하는 제3의 기자상이다. 이렇게 정의했을 때 ‘기레기’의 의미는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 저녁 시간을 넘기며 정희진 선생의 특강을 경청하고 있는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장현석

기존의 선악 구도에 머물지 않고 현시대에 맞는 글쓰기를 위한 인식론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 선생은 ‘정체성, 주체성, 위치성’ 세 가지를 자신(내부)과 사회(외부)를 관찰하는 도구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쓰기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기레기인지’에 대한 물음도 세 가지 개념에서 시작된다. 그는 “조금 느슨하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알튀세(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의식을 규정한다), 푸코(욕망이 의식을 규정한다)의 관계를 알면 세 가지 개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체성: 정체성의 정치 또는 저항

“우리가 남이가.”

정체성(正體性)은 한자 그대로 몸이 같다는 뜻, 영어로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말한다.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민족주의’와 ‘여성주의’를 들었다. ‘민족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체성의 정치로 작동해 왔으며, ‘여성주의’처럼 약자의 정체성은 저항의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그는 또 “같은 민족주의라고 해도, 지금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제시대 민족주의는 다르다”면서, “후자에는 저항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집단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 원래대로라면 트럼프를 찍으면 안 되겠죠? 그런데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찍었죠? 브렉시트도 이들이 주도한 면이 있잖아요. 이들은 노동자로서 정체성보다 백인으로서 정체성이 큰 거죠.”

우리는 대체로 동일시 욕망 때문에 살아간다. 욕망의 대상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고 그러기 때문에 ‘정체성’은 인위적이고 위험할 수 있다. 선생은 정체성을 가지는 순간 고뇌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투쟁한다면, 성폭력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을 때가 많다”며 “정체성은 개인을 균질적 집단에 동일시함으로써 차이를 부정하는데 불가능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페미니스트도 선언의 의미로 한 번쯤 말할 수 있겠지만 페미니스트나 막시스트나 예술가나 모두 되어가는 것이지, 그것을 누가 정해주나요? '나 기자야, 진보야’ 하면서 정체성의 정치를 지나치게 하는 순간, 기자도 기레기가 될 수 있는 거죠.”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정체 사이에 위계를 만들거나 외부로부터 배타성을 띠고, 본질주의로 환원하는 등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은 특정·임의의 집단과 동일시할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정체화’한다. 이는 개인이 외부로부터 분리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체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체성: 주체는 타자의 인질

“제가 한 달 전기료가 8000원 나오는 사람이지만,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요. 오늘도 강사료 받고 왔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성차별주의에 완벽하게 자유로울 것 같아요? 아니에요. 호모포비아든 자본주의적 사고든 간에 우리는 그 안에 메여 있다는 거죠.”

‘주체성’은 우리가 ‘진공 상태’에서 살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가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되거나 독립된 사고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뜻에서 주체성이란 영어로 ‘subject’, 종속된 주체로, 북한의 ‘주체사상’의 주체(juche)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는 “흔히 우리는 사회로부터 분리되거나 저항하는 등 독립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자 정치적 인간이라는 뜻이다.

“주체성이라는 것도 잘못 생각하면 위험할 수 있죠. 대상을 고정시킴으로써 스스로 주체(조물주)로 거듭나서는 안 됩니다.”

‘나’라는 주체를 알기 위해 타자와 사회에 대해 탐구를 해야 한다. 탐구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로서 나 또한 사회에 협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상태는 정 선생이 생각하는 성찰적 글쓰기가 가능한 순간이다. 반대로 사회의 종속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도덕적 우월성으로 가득한 진부한 시선과 뻔한 글이 나온다. 종속된 주체로서 기사를 쓰고 의견을 피력하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가 매우 중요한 이유다.

위치성: 세상이라는 ‘지도’에서 나는 어디에?

“이 자리에서 강사라는 위치성을 가지고 있지만, 강의실 밖으로 나가면 제천 지리를 전혀 모르는 어리버리한 승객이 되죠. 그리고 집에 가면 피곤에 지친 노동자가 되겠죠.”

위치성은 영어로 ‘포지션’(position)이다. 위치성은 매 순간 바뀌며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계급과 다르다. 위치성이라는 것은 시공간, 외부에 따라 다 달라지는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 자기 내부와 외부, 내부의 다양한 위치성의 경합에서 글이 나온다. 선생은 대표적 위치성으로 계급(class), 인종(race), 젠더(gender)를 꼽았다.

“만약 내가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치면 남들은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쉽게 말하면 성차별이에요. 오바마는 미국 전직 대통령인데 사람들은 흑인으로 환원합니다. 이것도 인종차별일 수 있죠.”

“제주도 출신에게 남해는 북해”

남해인지 북해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 강력한 서울 중심의 위치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위치성 사이의 권력이 언어를 규정한 것이다. 권력과 지식의 문제가 이곳에서 나온다. 그는 푸코를 들어 “여러 사상가가 자기 사상을 설파하는 데 주력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권력이 되고 지식이 되는지에 대한 문제에 천착한 최초의 사상가”라고 평했다.

“제주도에 가면 ‘쌀 국내산, 고기 제주산’ 이렇게 돼 있어요. 제주는 국내가 아닌가? 성게는 또 가파도산, 가파도는 제주도가 아닌가?”

이처럼 차이는 소구되기도 한다. 선생은 “서울산 흑돼지를 제주도에서 누가 먹겠냐”며 “차이를 드러내야 가격이 되고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고 여러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가 생각할 때, 위치성에 따라서 드러나는 차이는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며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보지 못한 걸 드러내는 힘

“여러분이 자기 포지션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모든 사회적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포지션별로 같은 사건도 기사가 10개는 나올 수 있죠. 사실 그 연습을 해야 합니다."

   
▲ 정희진 선생의 저서 <낯선 시선>과 <정희진처럼 읽기>. ⓒ 서지연

그가 생각하는 창의력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있지만 보지 못한 것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여러 포지션(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다중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럴 때 성찰은 반성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나 기자다, 남자다’ 등 한 가지 인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진보·보수를 떠나 도긴개긴한 시선의 기사와는 ‘다른’ 기사를 쓰는 기자가 훌륭한 기자가 아닐까요?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어디서 진정성과 성실성을 찾겠어요.”

정희진 선생은 강의 중간에,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자주 드러냈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사회에 종속된 주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체화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다양한 위치성을 가지고 경합해야 한다”며 “그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제3의 기자상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희진 김한솔 신형철 나영석 이택광 유진룡 김종철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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