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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對話)
[글케치북] 워낭소리
2017년 12월 04일 (월) 19:33:41 안윤석 PD harrypotter-tam@hanmail.net

“소는 항상 밭일을 마치고 할아버지를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같이 읍내에 나갔다가 할아버지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집이었다.” - ‘워낭소리’

   
▲ 소는 노인의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 영화 <워낭소리> 갈무리
   
▲ 안윤석 PD

망할 놈의 할아범. 어제 그는 날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로 내몰았다. 읍내를 빠져나온 난 평소 같았으면 할아범의 지시에 따라 일터인 왼쪽 길, 집인 가운데 길, 할아범이 할멈 몰래 자주 다녔던 ‘워낭다방’으로 가는 오른쪽 길 중 하나를 택해 고개를 돌렸을 테다. 그런데 오늘 그는 자고 있다. 20분간 뒷발로 수레를 건들고, 꼬리로 할아범의 신발을 가까스로 문질러본다. 할아범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아무 곳이나 가면 되지 왜 이리 떨고 있냐”라 누군가가 의문을 가진다면 그건 바로 ‘잘 죽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래 난 ‘잘 죽고’ 싶다. 목이 잘려 도축되는 운명이 아니라 자연이 내게 준 수명을 그대로 받들며 살다 곱게 가고프단 소리다.

아무 곳도 못가고 세 갈림길 위에서 걱정만 하는 이유는 할아범이 손주에게 읽어준 위인전 ‘김유신’ 탓이다. 어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후 4시경 할아범은 날 외양간에 묶어두고 마당에 앉아 손주에게 <김유신 전>을 읽어줬다. 그런데 그는 미처 몰랐나 보다. 소는 귀가 밝다. 황희 정승이 '내 조상이었던 황소와 검은 소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냐'고 묻자 소가 들을까 봐 귓속말로 이야기했다는 농부의 일화는 유명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위인전 내용이 귀에 박히니 어쩌랴. 난 ‘김유신이 자신의 말 목 자른’ 일화를 듣고야 말았다. 잠든 김유신을 기생집으로 데리고 간 말은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운명을 달리했다.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워낭다방’인 오른쪽으론 가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집에 가는 것을 할아범이 좋아할까 생각하면 그것도 모르겠다. 고민 고민 끝에 가운데 길로 향한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고 눈을 내리깔아 길만 꿈뻑꿈뻑 보며 그대로 서 있었다. 할아범은 그제야 잠에서 깼다. 할아범의 선택을 기다렸다. 그는 날 죽이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가운데 길을 선택한 건 굉장히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한마디가 날 쿡 찔렀다. 그는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나보단 네가 기억력이 더 좋구나. 난 이제 슬슬 가물가물헌디…”라 말하며 내 얼굴을 툭툭 두드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할아범은 많이 아픈 것이리라. 할아범의 토끼 같은 손주가 자주 찾아오는 게 이상하기도 했었는데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어제 손주에게 위인전을 읽어주시고 방에 들어갔을 때 고성이 오가는 걸 들었는데 아마 할아범 성격상 이렇게 말했을 듯하다.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긴 싫다!! 병원에 간다 치자. 그럼 소는 누가 키운대?”

할아범은 오늘 일을 나가지 않았다. 그는 가마솥에서 푹 끓인 짚단을 내 여물통에 놓아주며 “마이 무라”라고 했다. 할아범도 내 앞에서 고봉밥을 퍼다 먹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며 그는 그 많은 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마침 마당으로 TV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인의 생은 마지막 10년 중 절반을 질병으로 앓다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5년 40개국을 대상으로 한 죽음의 질 조사에서 한국은 32위를...” 저 ‘죽음’이란 단어를 듣고 섬뜩해진 난 여물을 먹다 말고 할아범을 쳐다봤다. TV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아범. 한숨을 푹 쉬더니 날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그다. 그는 말없이 옆에 놓인 장수 밤 막걸리를 밥그릇에 따랐다.

막걸리를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더니 할아범이 내게 말했다.

“이봐 워낭이, 우리 참 오래 일했구만... 그쟈? 난 절대루 널 놓고 가지 않을 것이여... 글구 말여. 난 병원도 안 갈기여. 우리 할매도 병원에서 그리 오래 지내다 그렇게 원하던 꽃동산 한 번을 못 보여주고 그리 갔자네. 내 그 꼴은 다시 못 본다. 니도 내도 하늘에서 준 천명(天命)이란 게 있는기다. 인간이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건 거스를 수 없데이. 죽음도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라야 행복한기라. 그게 바로 ‘존엄한’기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구, 밥먹구, 똥도 싸구 그렇게 지내다 가제이. 알았제? 내 황천길은 니가 끌어야 한데이. 웰다잉인가 뭐 신가도 그냥 집에서 해 불자고!!”

망할 놈의 할아범이다. 어젠 날 그렇게 쫄게 하더니만 오늘은 눈물을 흘리게 한다. 고갤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좋다고 외쳐본다. 그 망할 할아범에겐 한낱 동물의 울음소리일 뿐이겠으나 아마 알아봐 줄 것이다.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음메~~”


편집 : 박진홍 기자

[안윤석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장, 전략부, 시사현안부 안윤석입니다.
오늘도 또 다른 another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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