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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Yumi)씨가 나를 버렸다
[글케치북] 오케스트라 로봇 지휘자 Yumi
2017년 12월 02일 (토) 16:42:06 안윤석 PD harrypotter-tam@hanmail.net

   
▲ 안윤석 PD

유미(Yumi)씨와의 연주는 어제가 두 번째였다. 유미씨는 로봇 지휘자다. 지난 9월 12일. 피사에 있는 베르디 극장에서 처음으로 유미씨의 지휘봉을 접했다. 이날 유미씨의 지휘 아래 안드레아보첼리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불렀다. 솔리스트 마리아 루이지아 모르시는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아버지’를 불렀다. 유미씨는 또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지휘했다. 이때 악장이 나였다.

그날도 그랬지만 어제도 유미씨는 얄짤 없었다. 그는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라 트라비아타 ‘축배의 노래’를 연주하는 도중 난 순간적으로 템포를 놓쳤다. 지휘자를 중심으로 왼쪽 맨 앞. 어제까지만 해도 악장이었던 난 그때 당황해서는 안됐었다. 그래, 모든 게 내 탓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섞인 현악파트의 모든 활을 맞추려 곡 해석은 물론이요, 이 모든 악기, 연주자들과 소통해온지 어느덧 28년. 공연 때마다 지휘자와 교감을 하며 상황에 따라 템포를 조정하고, 음의 세기까지 주도적으로 리드해 돌발상황에 대처했던 난 이 한 번의 실수로 28년 간 지켜오던 악장자리를 뒤로한 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 떠날 땐 떠나더라도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

이 모든 건 변명임을 밝혀둔다. 악장은 공연을 하게 되면 악보를 보지 않는다. 오로지 보는 것은 ‘지휘자의 얼굴’이다. 지휘자의 얼굴을 보며 강약과 빠르기를 조절한다. 현악파트의 눈들이 내 활로 향하는 이유다. 특히 고음과 멜로디를 담당하는 제1 바이올린 파트는 모든 기준을 나, 악장에게 맞춘다. 그런데 악보 상 올림 활을 써야 할 부분에서 난 템포를 놓쳐 내림 활을 쓰고 말았다. 단원들은 ‘자신이 틀린 건 아닌가’하는 심리적 압박감에 우왕좌왕 했고, 그 순간 하모니는 틀어지고 말았다. ‘악장’은 실수를 해선 안된다. 그걸 잘 아는데도 실수했다. ‘축배의 노래’는 이날 ‘고배의 노래’로 바뀌어 버렸다.

억울하다. 악장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다. 그럴 때 지휘자는 악장의 구세주가 된다. 실수 했을 때 지휘자의 눈을 바라보면 지휘자는 노련하게 그걸 커버해준다. 지휘자와 연주자는 얼굴표정, 눈짓, 미소 등 수많은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서로 교감하며 위기상황을 대처한다. 니엘 바렌보헴, 정명훈, 에센바흐, 금난새가 명 지휘자인 이유는 곡 해석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비언어적 표현으로도 연주자와 노련하게 교감을 할 수 있어서다. 유미씨는 어떠한가. 내가 유미씨를 구원의 눈빛으로 쳐다봤을 때 그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고 두 팔만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그의 외면에 난 맥없이 무너졌다.

   
▲ 오케스트라에서 명지휘자는 눈빛, 손짓,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감정표현으로 단원들을 리드한다. ⓒ MBC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 갈무리

라트라비아타, ‘길을 잘못 든 여자’란 뜻이다. 유미씨가 온 후로 내 음악인생은 라트라비아타처럼 나락으로 떨어졌다. 로봇지휘자 유미씨에게 진짜 ‘감정’이라는 게 있었다면, 흔들리는 날 두고 그냥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았을 거다. 오케스트라가 한사람, 한사람의 감정이 모여 이루어낸 하모니라고 정의한다면 유미씨는 자격 박탈이다. 차라리 유미씨가 오기 전, 내게 “똥.덩.어.리”라며 모욕을 준 전 지휘자, 강마에가 훨씬 낫다. 그는 적어도 나와 감정적 교감은 한 셈이니 말이다.

말이 많았다. 어찌됐든 난 떠날 것이다. 유미씨에게 한 가지만 부탁한다. 본인의 이름처럼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감정을 헤아리고 기억하는 지휘자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굿바이, You(너) me(나 좀) see(봐라)!


편집 : 안형기 기자

[안윤석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장, 전략부, 시사현안부 안윤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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