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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두 시각
[글케치북] 김영란법
2017년 11월 29일 (수) 23:30:32 이창우 장현석 기자 kintakunte87@hanmail.net

‘갑질에 합법성 부여해선 안 돼’

   
▲ 이창우 기자

일본에는 ‘오미야게’ 문화가 있다. 일본인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레 체득하는 ‘사회적 예의’의 일종이다.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반드시 기념품을 사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게 핵심인데 그 ‘지인’의 범위가 넓다. 같은 학급, 같은 부서 사람들까지는 전원 돌리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귀찮아하면서 의무감에 ‘오미야게’를 살 때도 많다. 한국 사람들도 선물을 주고받지만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때나 명절 때, 그나마도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에게만 선물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일본보다는 선물에 ‘마음’이 담기는 느낌이 있다. 적어도 ‘을’의 위치에 서기 전까지는 그렇다.

대한민국은 ‘을’로 살기 힘든 나라다. 언제든 나의 밥줄을 끊을지 모르는 ‘갑’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을들은 강요받지 않아도 갑에게 밥을 사고 선물을 안겨주며 산다. ‘마음의 표현’이라는 포장도 잊어선 안 된다. 갑들이 부담을 느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대단한 특혜를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다. 뚜렷한 권력 구조 아래서 불필요한 긴장 관계를 만들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려는 마음이다. 갑들은 을이 사는 밥과 선물을 당연시해 왔다. 그들 입장에서는 ‘대가성’이 없으니 ‘뇌물’ 따위가 아니다. 검사가 변호사에게 벤츠를 받고 명품을 받아도 특정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이 나라의 판단이다.

부정청탁방지법, 소위 ‘김영란’법은 은폐된 갑질이 만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는 갑들이 속출했다. 취지를 돌아보면 가장 엄격하게 법이 적용되었어야 할 국회의원들은 재빨리 자신들을 제외한 뒤 법안을 통과시켰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뛴다고 자부하던 언론인들도 “취재처에서 식사·교통편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면 어떻게 취재를 하라는 거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한우의 한숨과 굴비의 비명‘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속내는 뻔하다. 각종 인허가 관련 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음식물 3만 원·선물 5만 원·경조사비 10만 원 원칙은 평범한 국민들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이전에는 아무리 작은 중소기업이라도 상당한 액수를 홍보·접대비에 투자했다. 회사의 존폐가 관련 공무원의 기분에 달린 경우는 흔하기 때문이다. 협박기사를 쓰겠다고 을러대는 기자를 달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부 갑들을 제외한 대부분 국민들이 김영란법을 환호했던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5·10·10으로 법안을 완화하겠다는 말은 ‘이 정도까지의 갑질은 허용한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자발적 을질’은 다른 을들과의 경쟁이므로 합법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마음’을 표시하는 수밖에 없다.

   
▲ 11월 27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정부가 마련한 김영란법 개정안 심의가 이뤄졌다. 3.5.10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이었으나 격론 끝에 부결됐다. Ⓒ SBS뉴스 갈무리

고급 식당가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농·축·수산업 종사자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수익기반이 정의롭지 못한 관행 위에서 뿌리내렸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제 돈으로는 못 먹는 비싼 음식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가에 비해 너무 비싼 선물세트 역시 마찬가지다. 급격히 수익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피해를 보듬는 정책은 분명 따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을 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법의 취지를 무너트려선 안 된다. 분명한 건 선의의 피해자들을 핑계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란법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하는 법이다.

FTA 재협상 국면에서 농민 숨통 트여야

   
▲ 장현석 기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명대사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아마도 ‘큰일에는 희생이 따른다’일 것이다. 스파이더맨에겐 힘 있는 자가 희생을 감내하려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후자에선 힘없는 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무책임만 엿보인다. 부정청탁금지법도 마찬가지다. 부정 청탁을 근절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외면한 법으로 힘없는 자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바로 농축산업계 사람들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법은 좋은 법이 아니다. 현실에 맞게 부정청탁금지법을 고쳐야 하는 이유다.

기존 부정청탁금지법으로 농축산업계는 심각한 피해를 봤다. 동종 또는 이해가 맞닿아 있는 업계 사람들끼리 제공할 수 있는 식사와 선물 가격에 제한을 둔 조항 때문이다. 이런 부정청탁금지법 조항으로 농축산물이 주재료인 외식업계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설날·추석 등의 효자 상품이던 농수산 제품들도 선물 제한 조항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부정청탁금지법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비 심리에 큰 변화가 일었다. 업무 연관성이 없다면 동종업계끼리도 식사와 선물 교환이 가능했음에도 사람들 사이에 ‘더치페이’ 문화가 생긴 것이다. 농축산 제품 관련 소비 시장에 생긴 큰 변화는 농축산 종사자들의 시름을 더욱 깊게 했다. 한국농촌경제원에 따르면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농축산물 수요가 24~29% 감소했다. 연간 농수산업 피해가 연간 2조300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부정청탁금지법이 도모하는 큰일에 큰 희생이 따르고 있음이 명백하다.

   
▲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 올해 설 기간 국내산 신선식품 선물세트 판매액은 전년 대비 25%가량 감소했고, 수산업 피해액만도 1800억원이 넘는다. Ⓒ 연합뉴스TV 갈무리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농축산업계 상황을 고려할 때 개정안 추진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전체적인 소비 감소로 농축산업계는 자연스럽게 공급과잉 상태에 놓였다. 재고는 쌓여가고 팔리지 않으니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값을 낮출 수밖에 없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지만 팔리지 않는 것이 더욱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발 FTA 재협상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값싼 대량의 외국산 제품과만 경쟁하기에도 벅찬 현실에서 부정청탁금지법은 내수 시장까지 목을 죄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맞게 부정청탁금지법 조항을 고쳐 농축산 종사자들의 숨통을 트이는 것이 큰 힘을 지닌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닐까.

   
▲ 한·미 FTA 재협상을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정청탁금지법에 이어 한·미 FTA 재협상까지 겹치면서 국내 농축수산물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 JTBC뉴스룸 갈무리

‘큰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와  유사한 말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있다. 공리주의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 이론은 정의와 관련된 논의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이론이라는 것이며,  한편으론 역설적이게도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희생을 강요하는 건 이론에서도 법에서도 좋지 않다. 부정청탁금지법은 그동안 좋은 취지란 이유로 소수의 농축산 종사자들의 희생을 방관해왔다. 부정청탁금지법이 좋은 취지를 살려 좋은 법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소수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정청탁금지법 개정안 추진이 그 첫 시작이길 기대한다.


편집 : 김소영 기자

[장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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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만약'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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